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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비공개” 약속하고 받은 ‘4·19 피의 증언’ 문화재 된다

연세대의 4·19 60주년 관련 유물 전시회에서 옛 ‘4월혁명연구반’ 주역 김달중·안병준 교수(왼쪽에서 넷째, 다섯째)가 이원규 학예연구사(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세대박물관]

연세대의 4·19 60주년 관련 유물 전시회에서 옛 ‘4월혁명연구반’ 주역 김달중·안병준 교수(왼쪽에서 넷째, 다섯째)가 이원규 학예연구사(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세대박물관]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대통령(4대)·부통령(5대) 선거는 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와 거리가 멀었다. 광주·마산 등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3·15 당일 실종 처리된 마산상고 입학예정자 김주열은 4월11일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다.
 

민주화 시위 속 “격변의 상황 기록”
당시 연세대 졸업반 김달중·안병준
전국 돌며 관련자 185명 면담 조사
대학 자료실에 넘겨 60년간 보관

당시 연세대 정치학과 4학년생이던 김달중·안병준은 “격변의 상황을 기록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일부 교수들이 힘을 실어줬다. 다만 정국이 어찌 될지 모르니 예산 및 공신력 확보 차원에서 연세대 대학원 연구프로젝트로 진행하자고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4월혁명연구반’이라는 단 두사람의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면담자들에게 “10년간 비공개할 것이니 신변 위협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뜨거웠던 4월의 함성·울분·슬픔·희망이 그렇게 수기(手記)로 남았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되는 당시 실태 조사서도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되는 당시 실태 조사서도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은밀하게 채집된 60년 전 ‘피의 증언’들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최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4·19 혁명 문화유산’을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방자치단체 등 추천을 받아 179건의 관련 유물을 발굴했고, 이 중 7건을 등록 우선 추진대상으로 선정했다. 여기엔 연세대 4월혁명연구반 수집 자료 외에 부산일보 허종 기자(1924~2008)가 특종 보도한 김주열 열사 시신 사진도 포함됐다.
 
데모대원과 경찰이 충돌할 때 심정은.
“잔혹하고 가혹한 나머지 나에게 총이 없음이 안타까웠다”(26세 권대홍)
 
연행 도중과 고문, 시위 때 감정은.
“정정당당하나 공산주의라는 누명 씌운 고문이 있을지 두려웠다”(21세 이자평)
 
부상 당시 목격한 그대로.
“데모대가 북마산 파출소를 향할 때 드람(드럼)을 굴리면서 방패 삼아 들어갔다. 이때 총탄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두개골 관통상으로 9일간 의식불명…”(15세 김정희)
 
‘4월혁명연구반’의 기록 일부다. 실제 소속은 김달중·안병준 학생 둘뿐이었지만 이들은 서울과 대구·마산·부산 등의 시위 참가자·목격자 등을 만났다. 작업은 4월 23일부터 7월 초까지 계속됐다. 면담 기록은 부상자·데모사항·데모목격자·연행자·사후수습·교수데모 등 9종 총 185명이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되는 당시 실태 조사서도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되는 당시 실태 조사서도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월혁명연구반은 광범위한 자료도 수집했다. 신문사를 통해 입수하거나 개인으로부터 받은 시위 사진 등이 1100장이다. 계엄사령관 명의의 시책, 명령서도 모았다. 비상계엄포고문 12종, 훈시문 1종, 공고문 3종, 담화문 2종 등 총 19종 인쇄물에, 학생들이 시위현장에서 찬 완장, 벽보 등도 수집했다.
 
연세대 박물관의 이원규 학예사에 따르면 이 자료들을 당시 한미재단을 통해 미국에 넘겨 보관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학내에 두기로 했다고 한다. 장소는 김달중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중앙도서관 귀중본열람실이었다, 일부 담당자만 아는 가운데 기록은 밀봉됐다. 이후 김달중·안병준은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1998년 연세대에 국내대학 최초로 기록보존소(연세 아카이브)가 만들어지면서 귀중본실 자료들이 넘어왔어요. 그때부터 일반 열람이 가능해졌고 연구도 이뤄졌습니다. 아직 국내 기록학이 성숙하지 못해 학술자료화한 성과는 안 나왔어요.”(이원규 학예사)
 
이 학예사에 따르면 이 자료들은 4·19 직후의 것인 데다, 서울과 지방, 연령대로는 10대부터 50대까지 포괄해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앙케트 방식으로 기록했다는 의미가 있다.
 
연세대는 4·19 60주년을 맞아 이 유물을 처음 공개하는 특별전(‘청년학생의 힘’)을 교내 백주년기념관에 마련했다. 지난달 30일 개막 행사엔 80대가 된 김달중·안병준 두 주역도 참석했다.
 
“생명을 바쳐 싸운 사람들의 정신을 기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민주주의를 잘 가꿔야 한다”(안병준) “오늘날 젊은 사람들도 역사의 증인이 돼주길 바란다”(김달중) 등의 소회를 남겼다. 7월까지 전시되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4·19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주요 작품도 전시됐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중략)/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푸른 하늘을’ 중에서)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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