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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60년···그들이 유가 쥐락펴락 하던 신화가 깨졌다

“OPEC은 신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역사가인 줄리아노 가라비니 로마트레대 교수가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난해 『20세기 OPEC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OPEC in the Twentieth Century)』을 발표했다.  

원유 카르텔은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립됐다.
오일쇼크로 세계를 쥐락펴락,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2016년 이후엔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OPEC+로 커졌다.
코로나19란 수요충격에 OPEC+마저 한계 드러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상징인 파란 깃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상징인 파란 깃발

 
가라비니 교수는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글로벌 기름값이 OPEC이란 카르텔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화가 자리 잡았다”며 “하지만 OPEC은 어쩌다 한번 힘을 발휘하는 취약한 카르텔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 초반 8% 급등하다 미끄러져 하락으로 마감!

OPEC과 몸집을 불린 OPEC+(러시아 등 주요 원유수출국 협의체)의 실상이 13일(현지시간) 드러났다. 역대급 감산에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1.5%(0.35달러) 빠진 22.41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 970만 배럴 감산은 2000만 배럴 감산과 같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 970만 배럴 감산은 2000만 배럴 감산과 같다"고 말했다.

 
롤러코스터 흐름이었다. 이날 장초반 WTI 가격이 급등했다. 오름폭이 8% 정도나 됐다. OPEC+가 5~6월 두 달간 원유생산을 하루 97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한 게 힘을 발휘하는 듯했다.  
 
그러나 오름세는 얼마 가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OPEC+ 감산 합의를 상찬하며 “하루 2000만 배럴을 감산하는 효과와 같다”고 특유의 과장법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원유시장 현실 앞에선 힘이 없었다.
 

국제원유 시장에서도 소비자가 왕!

트럼프의 셈법은 OPEC+의 공식적인 추정을 훨씬 웃돈다. OPEC+ 쪽은 “970만 배럴 감산이 1500만 배럴 감산과 효과 면에서 같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감산 효과가 2000만 배럴이라고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낳은 수요 급감을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다. 월가의 투자은행 등이 추정한 하루 공급 과잉이 2500만~3000만 배럴에 이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이저 원유 트레이딩회사인 트라피구라 대표인 벤 루콕이 “원유 소비가 하루 3500만 배럴 줄었다고  분명히 말한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이날 전했다. 루콕의 말대로라면 국제원유 시장엔 하루 2000만 배럴이 남아도는 셈이다(OPEC+ 감산 효과 기준).
 

OPEC 탄생 60년, 드러난 현실!

국제원유 시장에서 산유국이 어찌해볼 수 없는 게 바로 소비다. 소비가 급감하는 시기는 산유국엔 ‘죽음의 골짜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숙명을 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외교관인 후안 파블로 페레즈 알폰소(1903~79년)가 주도해 1960년 9월 OPEC을 세웠다.
OPEC의 아버지인 후안 파블로 페레즈 알폰소 전 베네수엘라 외교관

OPEC의 아버지인 후안 파블로 페레즈 알폰소 전 베네수엘라 외교관

 
알폰소는 수출 목적으로 원유를 개발한 조국 베네수엘라가 국제시장의 수요가 줄면 경제위기를 맞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설득했다. 소비는 조절할 수 없으니 공급만이라도 통제해보자는 것이었다.
 
알폰소의 꿈은 아주 가끔 실현될 뿐이다. 1973년과 79년 두 차례 오일쇼크 때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90년대 초반 역대급 저유가 시대 OPEC의 민낯이 드러났다. 회원국들이 서로 속고 속였다. 뒷편에서 산유량 제한을 어기고 원유를 시장에 쏟아 내놓았다.  
 
미 원유컨설팅회사 래피던의 로버트 맥널리는 기자와 통화할 때마다  “카르텔의 진정한 힘은 몽둥이(stick)에서 나온다”며”OPEC은 게임의 룰을 깬 회원국을 때릴 몽둥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 파악…OPEC+ 구성, 하지만 원유전쟁

OPEC의 또 다른 민낯은 2000년 전후 시작된 수퍼사이클(대세상승기)이 끝난 2009년 이후 드러났다. 수퍼사이클 시작도 OPEC의 뜻이 아니었다. 사이클이 끝난 뒤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OPEC은 생산량을 줄여 원유가격 안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글로벌 산유국 지형이 바뀐 탓이었다. 결국 사우디는 러시아를 오랜 설득 끝에 끌어들여 2016년 감산합의에 이르렀다.
 
바로 ‘빈체제’가 등장했다. OPEC 본부가 있어 ‘원유정치의 센터’로 구실 하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이름을 딴 체제다. OPEC+를 통한 생산량 조절 카르텔이다. 이 또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원유전쟁으로 이어졌다.
산유국의 원유 여유생산능력이 하루 200만 배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산유국의 원유 여유생산능력이 하루 200만 배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원유시장 새옹지마!’

래피던 맥널리 대표는 “고유가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준다면 저유가는 먹구름”이라고 말하곤 했다. ‘저유가→원유개발 투자 감소’라는 사이클이 작동해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는 바람에 셰일 등 원유개발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투자 감소는 전문가들이 2~3년 뒤 유가를 예측할 때 중시하는 여유생산능력(SPC)의 감소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맥널리는 “경기가 되살아나 휘발유 소비가 빠르게 늘면, 급증하는 기름 소비를 산유국이 여유생산능력이 부족해 신속하게 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OPEC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지만, 경제원리에 따른 단기 고유가 시대가 엄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2~3년 또는 4~5년 뒤에!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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