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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이 말한다, "고난은 선물을 주고 간다...두려워 마라"

작은 도넛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김재용 작가. 그는 도넛으로 '희망'을 빚는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작은 도넛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김재용 작가. 그는 도넛으로 '희망'을 빚는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핑크 도넛, 민트색 도넛, 작은 도넛, 큰 도넛…. 전시장 안이 온통 도넛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이건 반칙 아닌가. 달달할 것 같은 색채가 마음을 한껏 설레게 하는데 단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그냥 벽에 걸어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이쁜' 도넛들이다.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흙으로 구운 형형색색 도넛
"두려움 잊고 웃어보아요"

흙으로 도넛을 굽는 김재용(47)의 개인전 '도넛 피어(DONUT FEAR)가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도넛 수는 총 1701개. 그 중에서 작은 전시실의 벽면을 채운 도넛만 1358개다. 그런데도 작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보다 더 많이 구워서 더 채우고 싶었다"고. 

 

그의 도넛에는 사연이 있다  

어쩌다 그는 흙으로 도넛을 굽는 작가가 되었을까. 

"도넛을 굽기 시작한 게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어요. 가족을 위해 창작하는 일을 다 그만두고 진짜 '도넛'장사라도 할까 고민할 때였죠. 결국 작업은 그만두지 못했지만, 그때 결심한 게 있어요. 무엇보다 '내가 즐거운 일을 하자'는 것이었죠. 그것이 제겐 나만의 도넛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어려운 시기를 지나 그가 도넛을 빚으며 정리한 생각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이었고, 둘째는 '그 일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자'는 것이었단다. 
 
전시 제목 '도넛피어'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번 자리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가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 그런데 전시를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며 미술계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시기에…'하며 한탄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예정대로 GO"를 외쳤다. 그리고 전시 제목을 '두낫피어(Do Not Fear)'에서 착안해 '도넛피어'라 지었다. "겁 먹지 말자. 용기내서 가자"라는 뜻이란다. 도넛에 얽힌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색채의 마술사  

[사진 학고재갤러리]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의 대형 도넛. 자랄 때는 색약이라는 사실이 작가의 가장 큰 콤플레스였지만, 지금 그는 색채의 마술사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의 대형 도넛. 자랄 때는 색약이라는 사실이 작가의 가장 큰 콤플레스였지만, 지금 그는 색채의 마술사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레드 도넛츠', 2017,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레드 도넛츠', 2017,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아주아주 큰 노랑 점 곰 도넛',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아주아주 큰 노랑 점 곰 도넛',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사진 학고재갤러리]

도넛 전시에서 화려한 색의 향연을 보았다. 무엇보다 풍부한 색채에 놀랐다. 
"그런가?(웃음) 예전엔 도예 작업을 하면서 가능하면 색을 안 쓰려던 시기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색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다. 색을 칠해 놓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 흰색으로 작업했다." 
 
색에 대한 피해의식이라니.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넌 앞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내가 그린 수채화를 보고 하신 말씀이다. 나중엔 내가 적록 색약이라는 것을 알고 더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선 미대를 가기도 어려웠다."  
 
그럼 언제부터 다채로운 색을 쓰게 됐나.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즐거운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을 바꾸면서다. 표현에 제한을 두니 내 스스로 마음이 힘들었다. 다른 색과 모양을 지닌 작은 도넛 조각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색에 대한 두려움도 잊기 시작했다." 
 
방 하나를 1358개의 도넛 조각으로 채웠는데. 
"2012년에 시작한 '도넛 매드니스!!'연작이다. 뉴욕 작업실에서 평소 좋아하던 도넛을 빚어 벽에 걸면서 내가 위안을 받았는데, 나중엔 작업실을 찾았던 갤러리스트들이 관심을 가지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작품 설치 시뮬레이션에만 두 달, 현장 설치에 2주가 걸렸다. 나중에 가능하면 더 큰 전시실에 더 많은 도넛을 걸고 싶다." 
'도넛 매드니스!!' 작품 앞에 선 김재용 작가. 총 1358개의 도넛이 걸려 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도넛 매드니스!!' 작품 앞에 선 김재용 작가. 총 1358개의 도넛이 걸려 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희망 혹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도넛 

김재용. ''아주 아주 큰 흐르는 노랑 하트 도넛 014, 2020.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아주 아주 큰 흐르는 노랑 하트 도넛 014, 2020. [사진 학고재갤러리]

당신에게 도넛은 어떤 의미인가. 
"처음엔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바람을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만큼 그들이 품고 있는 바람도 다양하지 않나. 하지만 대형 도넛 작업을 하면서는 좀 더 의미가 달라졌다. 점차 커지고 변화하는 욕망이 되었다." 
 
조새미 미술비평가는 "사람들은 '도넛'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했다.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삶이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냈다"고 썼다. 이어 "(김재용이) 삶의 벼랑 끝에서 시작했던 '도넛' 작업은 다른 많은 사람에게 되고 싶은 자신을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김재용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중동 건설현장에 나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이주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아홉 살까지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교 때 조소부에서 활동했으며 미국에서 조각 전공을 하며 자신의 반려견 모모를 모티프로 만든 작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려견 모모의 형상 대신 달팽이가 작업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후에 모티프는 도넛으로 확장됐다. 
 
강아지, 달팽이. 도넛 등 소재가 모두 친근하다.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는 미술은 무조건 심각해야 하는 줄 알았던 시기가 있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미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며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것, 열정을 쏟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강아지 모모를 가지고 작업하면서부터 유머적인 요소를 다루기 시작했다." 
 

고난은 선물을 주고 간다 

청화 채식 기법을 도입해 작업한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 어린 시절 집에 걸려 있던 태피스트리에 대한 기억을 동양 청화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청화 채식 기법을 도입해 작업한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 어린 시절 집에 걸려 있던 태피스트리에 대한 기억을 동양 청화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사진 학고재갤러리]

2000년대 후반 세계금융위기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그때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는 경험을 했다. 도넛을 만들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부터다. 그러고 보면 삶이 참 아이러니컬하다. 이때 위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도넛 작품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난의 시기는 내게 선물을 주었다. " 
 
지름이 100㎝가 넘는 대형 도넛 작품은 제프 쿤스(65)의 '풍선 개' 등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제프 쿤스는 풍선을 닮은 형태로 강아지와 토끼 등의 대형 조형물을 선보인 바 있다.)
"제프 쿤스의 키치적인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저는 아직도 완성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쿤스의 매끄러운 표면은 그의 예술의 핵심이다. 저는 2018년부터 FRP를 재료로 대형 도넛을 만들며 자동차 페인트로 도색 작업을 한다. 나는 나만의 도넛을 만들어가겠다. 어릴 때부터 꿈이 환경조각가가 되는 것이었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내 작품이 공공 공간에 더 많이 놓였으면 좋겠다." 
 
김재용. '핥을거야' , 2012,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사진 학고재갤러리]

김재용. '핥을거야' , 2012,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사진 학고재갤러리]

제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학(서울과학기술대)에서 학생들을 대하며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너무 많이 짓눌려 있는 것을 봤다. 그들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고난 없이 얻는 것은 없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자고 얘기해주고 싶다. 내가 작품을 하는 이유다. " 전시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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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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