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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연설에 감동한 소년, ‘국가 중심’ 경영철학으로 우뚝

[월스트리트 리더십] 사모펀드 ‘칼라일’ 창업자 루벤스타인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의 일부다. 이 역사적 문구는 당시 전 세계인의 애국심을 자극했고, 수많은 미래의 공직자를 낳는 계기로 작용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 되던 날, 소년 데이비드 루벤스타인도 연설을 듣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공직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이었다.  
 

연설 듣고 국가 위해 봉사 다짐
28세에 카터 행정부 정책 자문

워싱턴DC서 창업 후 방산 투자
전관예우 논란에 소비재로 확장
역사 유적 복구 등 통 큰 기부도

루벤스타인은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칼라일’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전 세계 연기금,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를 위해 2240억 달러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루벤스타인은 소년 시절 꿈 꾼 자신의 미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의 이력, 사업 모델 그리고 자선 활동을 들여다보면 모두 ‘국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직의 꿈은 ‘국가 중심 가치관’으로 완성되어 그의 인생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벤스타인은 듀크대와 시카고대 로스쿨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후 뉴욕에서 변호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공직 진출을 희망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1976년 지미 카터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프에 합류하면서다.  
 
그 후 카터의 대선 승리를 계기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국내 정책을 자문하는 중책을 맡았다. 꿈을 이룬 루벤스타인은 투철한 사명감으로 일했다. 밤을 새워 보고서를 작성하는 날도 빈번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하루 평균 4~5시간의 짧은 수면은 70대가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허무했다. 젊은 패기와 투철한 국가관으로 몰입한 그의 공직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루벤스타인도 백악관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나온 루벤스타인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두 가지 뉴스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당시로선 생소한 ‘LBO(Leveraged Buy-Out)’ 성공 사례였다. 한 투자 회사가 인수 자금의 대부분을 대출로 조달해 제조 회사를 인수하고 경영을 개선시킨 후 매각해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루벤스타인은 무엇보다 그 투자의 주인공에 솔깃했다. 과거 닉슨과 포드 대통령 시절 재무 장관을 지낸 윌리엄 사이먼이 주도한 투자였기 때문이다. 같은 고위 공직자 출신인 자신도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두 번째 뉴스는 창업에 대한 기사였다. 통계적으로 첫 창업은 대부분 28~37세의 나이에 하며,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사업 성공 가능성이 급격히 작아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미 그의 나이가 37세, 그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LBO 투자로 방향을 정한 루벤스타인은 1987년 2명의 동업자와 함께 칼라일을 창업했다. 그런데 칼라일이 둥지를 튼 곳은 금융 중심지 뉴욕이 아닌 정치 중심지 워싱턴 DC였다. 이는 루벤스타인의 본거지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루벤스타인과 다른 동업자들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영향권 안에 있는 항공우주 등 방산 업체에 투자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루벤스타인은 전직 고위 관료 영입에도 적극 나섰다.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프랭크 칼루치 전 미국 국방장관, 조지 부시(아버지)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 거물급 인사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칼라일의 초기 사업 모델은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찾아온 국방부의 정책 변화 덕택이었다. 냉전 시기에 주로 초대형 방산 업체와 맺던 계약을 중소 업체에도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소외됐던 많은 기업이 방위산업에 뛰어들었고, 그 와중에 기술력은 갖췄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저평가된 다수의 기업이 루벤스타인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걸프전부터 9·11 테러에 뒤이은 ‘테러와의 전쟁’까지 미국 군수산업이 냉전 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린 덕도 컸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칼라일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전쟁으로 방산 업체 투자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동시에 ‘이해 상충’의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전쟁을 수행 중인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전직 대통령이 고문으로 일하는 투자 회사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러 자금이 칼라일에 유입됐다는 얘기가 나오자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루벤스타인은 사업 모델을 수술대에 올렸다. 고위 관료 출신 경영진과 고문단은 퇴임 수순을 밟았고, 방위산업에 치중된 투자 포트폴리오는 소비재산업으로까지 확장시켰다. 그 결과 렌터카 기업 허츠, 식품 기업 던킨 브랜드, 그리고 명품 패션 브랜드 몽클레어와 골든 구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처럼 투자 대상을 다변화한 결과, 이제 칼라일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방산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칼라일의 사업 모델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기저에 자리 잡은 루벤스타인의 경영 철학은 변함이 없다. ‘국가 중심 가치관’이 그것이다. 사업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칼라일의 경쟁 우위는 ‘규제 산업 투자’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방산 업체 투자의 노하우를 통신·헬스케어·은행 등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산업에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루벤스타인의 ‘국가 중심 가치관’은 최근 그가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자선 활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소외 계층, 환경 등이 자선 활동의 대상인데 비해 억만장자 루벤스타인의 기부금이 향하는 곳은 매우 특이하다. 그 목적지는 ‘국가’다. 루벤스타인은 자신이 처음으로 개척한 자선의 방식인 ‘애국 자선 활동’을 통해 국가를 위한 일에 개인 자산을 기부하고 있다. 국가의 책무라고 여겨지는 사항들에 대해 루벤스타인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렇다고 그의 지갑이 아무 때나 열리는 것은 아니다. 기부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 바로 ‘역사’다. 루벤스타인은 미국 국민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선다. 그의 국가 중심 가치관과 맥이 닿는 ‘애국심’은 높은 역사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자선 활동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에겐 대헌장으로 알려져 있는 마그나 카르타의 사본 1점을 2100만 달러에 사들여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영구 임대한 것이다. 2011년엔 지진으로 파손된 워싱턴 모뉴먼트의 복구비용으로 7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링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등 워싱턴 DC 일대의 많은 역사 유적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코로나 영웅’ 파우치 등 셀럽 인터뷰 진행도
금융인이자 자선가 루벤스타인은 몇 년 전부터 직업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이다. 워싱턴 DC 소재 기업인 포럼 ‘워싱턴 DC 경제 클럽’의 회장을 맡아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숨은 ‘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유머를 섞어 빠른 말투로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은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색다른 진행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2016년부턴 아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쇼’를 블룸버그 TV에서 진행하고 있을 정도다.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루벤스타인의 가치관이 맞물려 필자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방송은 지난해 5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상대로 한 인터뷰다. 인터뷰를 보면 현재 파우치 소장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 리더십의 원천이라 할 전문성과 공직관이 뚜렷이 드러나고, 책임감 있는 관료에 대한 루벤스타인의 존경심도 강하게 묻어난다. 인터뷰를 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난 3월, 루벤스타인은 USA 투데이 특별 기고를 통해 파우치 소장을 ‘코로나 바이러스 영웅’이라고 부르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David Rubenstein)
칼라일 그룹 공동 창업자 겸 공동 회장
출생연도 1949년(71세)
최종 학력 시카고대학 로스쿨(1973년 졸업)
개인 자산 30억 달러(2020년 4월 기준, 포브스),
미국 275위(세계 743위)
칼라일 그룹 (The Carlyle Group)
설립연도 1987년
설립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외 2인
업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운용 자산 규모 2240억 달러(2019년 9월 기준)
사무소 32개(2019년 9월 기준)
직원 수 1775 명(2019년 9월 기준)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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