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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전투가 끝나도 전쟁은 남는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2차 대전 말기인 1944년 12월, 수세에 몰린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회심의 대반격에 들어갔다. 라인강을 향해 다가오는 연합군을 벨기에 삼림지대인 아르덴에서 격파한다는 계획이었다. 주력 기갑부대는 물론 동부전선 정예 병력까지, 남은 자원을 긁어모아 펼친 총공세였다. 바로 ‘벌지 전투’다.
 

2차 대전 독일 승부수 ‘벌지 전투’
무작정 전력 쏟았다 패망 앞당겨
‘선택의 고뇌’는 비상시 리더의 몫

헨리 키신저가 코로나19 사태를 벌지 전투에 비유했다. 바이러스가 초래한 21세기 초현실적 풍경을 70여 년 전 자신이 참전한 아비규환 전장과 중첩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위 전쟁이다. 2차 대전 중심국이었던 영국의 총리가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는 뉴스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그저 비유가 아님을 느낀다. 노상에 방치된 관, 실업급여 창구 앞에 늘어선 줄, 땀에 전 의료진의 옷에서도 전쟁을 읽는다.
 
‘전쟁’은 선거 분위기를 바꿨다. 정권을 흔들던 심판론은 맥이 빠졌다. 조국·경제·외교·안보 등등 보수 야당이 벼르던 이슈들이 코로나19에 묻혀 버렸다. 방역 전선에서 분투하는 의료인과 공무원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국가에 대한 기대와 섞였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이 저지른 실수도 대비 효과를 이뤘다. 이번 총선은 중간 평가가 아니라 능력 테스트가 됐다. 누가 더 잘할 것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코로나19는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엄혹한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지긋지긋한 진영 논리는 생존의 문제 앞에 무뎌질 것인가. 리더십에 대한 소구도 이념형에서 문제해결형으로 바뀔 것인가.
 
프레임 변화에 보수 야당은 헤매고 있다. 여당이 짜놓은 틀에 걸려들기만 한다. 소득 하위 70% 지원금 지급을 매표라고 비난하더니, 갑자기 전 국민에게 더 큰 돈을 주자고 나섰다. 여당은 ‘불감청 고소원’이라는 듯 낚아챘다. 보수 야당의 정체성도, 목소리도 잃었다. 야당은 어떤 대안이 있는가. 불신과 의심이 중도층을 파고든다.
 
그렇다고 여당은 이 전쟁을 잘하고 있는가. 야구에서 서툰 외야수는 타구 궤적을 놓치고는 뒤늦게 달려가 간신히 공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고는 미기(美技·파인 플레이)라며 박수를 받는다. 집권 이후 숱한 시행착오와 아집으로 서민의 삶을 헤집어 놓았던 여당에 코로나19는 반전의 기회가 됐다. 위기 속 국론 결집 효과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선수의 출전 기회는 어쩌다 나온 박수가 아니라 평소의 경기 통계가 결정한다.
 
전쟁 지휘관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독배다. 모두 같이 살자는 말은 힘이 되지만 공허한 위안이기 쉽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지휘관이라면 계획이 있어야 한다. 누구를 희생해 전체를 살릴 것인가. 한정된 병력과 군수품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지금 상황이라면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전 국민 현금 나눠주기는 효과적 전략인가? 쌓이는 국가 채무는 어떻게 하나? 줄여야 하는 예산 항목은? 한계 기업 처리는? 지금 전선에 선 지휘관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의 무게를 감당할 생각이라도 있는가.
 
벌지 전투 초기 독일의 작전은 먹히는 듯했다. 그러나 40일 만에 전투는 중지됐다. 전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곧바로 동서 양쪽 전선이 무너지며 독일은 4개월 뒤 항복했다. 벌지 전투는 연합군의 발을 6주일 묶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 패망을 6개월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투는 독일 서부전선 총사령관의 이름을 따 ‘룬트슈테트 공세’라고도 명명되지만 사실 유능한 군사 전문가 룬트슈테트는 작전을 반대했다. 그를 몰아붙인 것은 정치인 히틀러였다.
 
키신저는 “보건 위기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정치·경제의 격변은 세대에 걸쳐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투가 시작됐지만 전쟁의 끝은 짐작도 할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을 남긴 요기 베라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미래는 지금껏 봐왔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런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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