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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트라우마에···대재앙 코앞인데, 일본은 아직 논쟁중

"바이러스에 죽임을 당할까, 살아남을까의 여탈권을 국가에 전면적으로 맡긴 것인가…권력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정보망으로 감시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감시에 동의한다. 개인 정보를 통째로 국가에 제공하고 감염자 정보를 공개해온 한국은 코로나에 이긴 듯하지만, 지금은 총선거가 한창인 때다…코로나와의 싸움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자유로운 권리다."
 

아베 총리 긴급사태선언 임박
"국가가 왜 통제하나" 거부감 여전
"과거 군국주의 경험이 트라우마"
한국식 정보 제공과 동선 공개 불가
검사 실적 둘러싼 논란도 진행중
현실은 풍전등화, 논쟁은 구름잡기

도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가 하루 세 자리에 육박하며 긴장감이 높아진 지난 4일 일본의 유력신문에 실린 칼럼의 일부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건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 개개인의 각성과 예방 노력'이라는 게 글의 취지다. 하지만 칼럼 곳곳에는 국가 주도와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배어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빠르면 7일 인플루엔자특별법에 근거한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빠르면 7일 인플루엔자특별법에 근거한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다른 진보계열의 유력지는 지난 2일 자에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시와 통제를) 당연시한다", "특히 건강과 관련된 이슈에서 권력은 국민을 쉽게 통치(통제)할 수 있다", "긴급사태 선언이 포함된 특별법이 불과 3일 만에 처리된 건 야당이 너무 권력을 배려한 것"이라는 대학교수 인터뷰를 1개면 전체에 소개했다.  
 
도쿄의 감염자는 4일 118명, 5일 143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과 유럽의 대재앙이 일본으로 옮겨붙을 것이란 관측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여전히 인권과 전염병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인플루엔자대책 특별조치법'에 기초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긴급사태 선언이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논란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해당 지역 광역자치단체장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출 자제를 요청할 수 있다. 또 학교나 영화관 등의 사용 정지나 제한을 요청 또는 지시할 수 있다. 의료시설을 만들기 위해 토지와 건물을 소유자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개인의 사적인 권리가 제한당할 수 있지만, 외출 자제령의 경우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처럼 벌금을 부과할 수도 없다. 
 
도쿄도가 외출 자제를 요청한 5일 명품점이 즐비한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 고급 상점가의 텅 빈 모습. 서승욱 특파원

도쿄도가 외출 자제를 요청한 5일 명품점이 즐비한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 고급 상점가의 텅 빈 모습. 서승욱 특파원

 
외출 금지와 사회적 격리, 의료시설 확보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일부 국민 사이엔 심리적인 거부감이 여전하다.   
 
일본 유력 일간지의 간부는 "과거 전쟁 당시의 경험, 군국주의에 대한 트라우마로 일본 사회는 국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데 대한 저항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확진자 동선에 대한 정보 공개 문제도 아직 논쟁 중이다. 프라이버시와 인권의 침해 가능성에 더해 확진자가 다녀간 점포나 상점에 미칠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일본 정부는 정보 공개에 지극히 소극적이다.
 
심지어 신주쿠의 환락가 가부키초(歌舞伎町), 롯폰기와 긴자 유흥가의 술집에서 확진자가 줄줄이 확인되는 상황에서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밤 외출을 자제해달라"고만 했다. 
 
밤업소 손님들이 줄지 않자 그제야 "바, 나이트클럽, 라이브하우스, 노래방에 가지 말라는 것, 술집에 가지 말라는 얘기"라고 속내를 드러냈지만, 확진자가 확인된 업소의 이름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업소들에선 "차라리 동선을 모두 공개하라, 이러다간 손님이 줄어 모두 다 죽겠다”며 아우성인데도 말이다.
   
일본 도쿄의 최대 유흥가인 신주쿠구 가부키초 입구.[중앙포토]

일본 도쿄의 최대 유흥가인 신주쿠구 가부키초 입구.[중앙포토]

 
검사 실적을 둘러싼 논쟁도 아직 진행형이다. 산케이 신문은 6일 자 1개 면을 털어 "다른 나라에 비해 검사 건수가 적다는 비판을 의식해 정부가 태세 강화에 돌입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적은 검사 실적이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유명인들조차 증상이 나타난 뒤 2주일이 지나서야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대응이다.
 
'감염자와 진한 키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만원 전철 출퇴근을 이어가며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코로나에 감염될지 모르는 공포에 떨고 있다. 
 
3월 하루 평균 검사 수가 1500건에 불과한 일본 내 현실이 이런 상황을 부추겨왔다. 
 
하지만 ‘무증상자나 가벼운 증상의 확진자라도 전원 입원시킨다’는 원칙에 발목이 잡힌 일본 정부는 “검사 수를 늘려 확진자가 늘어나면 의료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진보계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평론가인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고베여학원대 명예교수는 최근 슈칸분슌(週刊文春) 기고문에서 "코로나가 종식됐을 때 일본의 방역 대책은 ‘선진국들 중 최악’에 가까운 평가를 각오해야 한다. 이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는’ 일본인 자신들이 초래한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썼다. 
 
일본의 현실은 풍전등화인데, 논쟁은 아직 뜬구름을 잡고 있는 느낌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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