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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요양병원 '은밀한 술배달'···칼부림 60대 범행전 소주4병

체포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체포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한밤중 수백 명이 잠든 요양병원에서 동료 환자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한 60대 치매 환자가 검찰에 송치됐다. 해당 남성은 범행 전날 낮부터 병원 안에서 소주 4병을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추적]
경찰, 살인 등 치매 남성 檢 송치
흉기 휘둘러 1명 사망, 1명 중상
치매·우울증 앓아 석 달 전 입원

'시끄럽다' 따진 환자와 말다툼
만취 상태서 흉기 휘두르며 위협
간호사 자리 비우자 연거푸 범행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는 5일 "살인과 살인 미수 혐의로 A씨(62)를 구속기소 의견으로 지난 3일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2시 2분에서 7분 사이 전주의 한 요양병원 6층 복도에서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이던 B씨(66)의 옆구리를 흉기로 한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에 이어 같은 층 다른 병실에서 혼자 잠자던 환자 C씨(45)의 목과 옆구리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치매와 우울증을 앓는 A씨는 석 달 전 해당 요양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대체 요양병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범행 직전 병실에서 B씨와 말다툼했다. B씨가 '왜 이 늦은 시간에 잠도 안 자고 시끄럽게 하냐'고 항의하면서 서로 시비가 붙었다. 해당 병실은 3인실로 A씨와 B씨 말고도 환자 1명이 더 있었다.
 
 고성이 오가자 6층을 담당하던 남자 간호사가 두 사람을 말렸다. 이에 A씨는 호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간호사와 B씨를 위협했다. 간호사는 곧바로 1층으로 몸을 피해 "환자가 흉기를 들고 행패를 부린다"며 112에 신고했다.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달이 났다. A씨는 6층 복도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B씨의 옆구리를 흉기로 한 차례 찔렀다. 병원 폐쇄회로TV(CCTV)에는 흉기에 찔린 B씨가 휠체어를 놔둔 채 걸어서 7층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찍혔다. 병실에는 CCTV가 없지만, 복도를 비추는 CCTV는 있었다.
 
 CCTV에는 A씨가 B씨를 흉기로 찌른 다음 복도 대각선 맞은편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도 담겼다. 경찰은 이때 A씨가 2인실을 혼자 쓰던 C씨를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간호사의 신고를 받고 6분여 만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흉기에 찔린 B씨는 비슷한 시각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가 전북대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건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 전날부터 병원 안에서 500ml 페트병에 담긴 소주 4병을 마셨다. 낮에는 다른 환자 1명과 마시고, 저녁엔 혼자 마셨다. A씨는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술판을 벌였다.
 
 A씨는 병원 인근 단골 상점에서 소주를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전화로 주문하면 상점 주인이 의료진의 감시가 심한 정문 대신 후문 쪽 셔터 틈으로 술을 배달하는 방식이다. A씨는 평소에도 이런 은밀한 방식으로 병원 안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에서 "술에 너무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A씨와 숨진 C씨 사이에 악감정을 품을 만한 일은 없었다'는 동료 환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조사에 나섰지만, 살인 동기는 밝히지 못했다. 다만 A씨의 폭력 성향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는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수년 전 동거하던 여성과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형제 등 가족은 있지만, 왕래가 뜸했다고 한다. A씨는 거동이 불편하지 않고,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초기 경찰과 병원 측은 부상자 B씨만 파악했다. 사망자 C씨는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발견됐다. B씨가 후송된 전북대병원에 동행한 간호사가 요양병원에 돌아와 오전 4시쯤 6층 각 병실을 둘러보다가 C씨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재차 신고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찰의 초동 대처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건 초기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사건을 목격한 일부 환자에게 '괜찮냐'고 확인했고, 최초 신고자인 6층 간호사에게도 '다른 병실은 이상 없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쉬운 점은 있지만, 경찰 출동 당시 복도에는 핏자국이 없었고 밤이라 병실 문이 모두 닫혀 있었다"며 "환자들이 잠을 자고 조용히 안정을 취하는 상태여서 경찰이 일일이 방문을 열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범행 당시 병원 측의 안이한 대응도 비판을 받았다.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 6층에는 병실 7곳에 환자 33명이 입원해 있었는데, 현장에 있던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A씨가 연거푸 환자 2명을 흉기로 찔러서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요양병원의 환자는 모두 200명가량이다. 사건 발생 당시 병원에는 간호사 3명과 의사 1명 등 의료진 4명이 있었지만, A씨의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경찰은 의료진이 환자 관리와 보호 의무를 소홀히했는지 처벌 여부를 검토했지만,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아무도 입건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형법으로 책임을 묻기에는 어렵다고 봤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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