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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코로나 방역, 박정희의 유산을 발견하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프랑스의 젊은 자유주의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35년 미국여행 보고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내놓았을 때 유럽 지성계에는 파문이 일었다.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에서나 존재했던 요원한 이상향이었던 당시 대서양 건너편 황무지에서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민주주의가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시민·방역시스템 세계 찬사
의료보험 만든 박정희 공 인정을
상대 무시 정치론 민주주의 불가
‘복수의 옳음’ 딜레마를 수용해야

미국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쟁취하고도 제정과 왕정복고, 공화정을 오가는 혼돈 상태였던 유럽과 너무도 달랐다. 정부 개입 없이 시민 스스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뉴잉글랜드의 타운제도는 유럽이 가야 할 미래였다.
 
하지만 코로나19에 포획된 오늘의 미국은 이상국가가 아니다. 백악관은 최소한 수십만 명이 희생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질서정연하고 풍요롭던 월마트는 공포에 질린 사재기 광풍에 초토화됐다. 미국 중간상인들은 웃돈을 주고 마스크를 가로채는 ‘해적질’로 국제사회의 성토 대상이 됐다.
 
세계 제일의 경제·군사 강국이지만 역병에 맞서야 할 의료시스템은 부실하다. 병원 문앞에도 못 가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5년 도입하려던 의료보험은 이익단체의 로비에 막혔고 위헌 판결을 받았다. 전 국민을 가입시켜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려 한 오바마 케어는 트럼프 집권 이후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각자도생 방식으로는 역병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역사서에나 존재했던 2500년전 아테네 민주주의를 더 완전하게 복원시켰던 최고의 문명국가 미국의 위엄은 사라졌다.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은 조기에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자랑한다. “미군이 바이러스를 중국에 가져왔을 수 있다”고 했다. 진실의 은폐·축소는 민주주의 부재(不在)의 결과다. 미국은 중국 무역 협상단을 코로나19의 전파자로 지목했다. 위기를 합심해서 풀어야 할 두 강대국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한국 방역시스템은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진단키트를 선제적으로 개발해 세계 최고의 속도로 검진해 확진자를 찾아냈다. IT 기술을 이용해 동선을 공개하고, 감염 확산을  차단했다. 미국을 위시한 80여 국가에서 진단키트 등 방역물품 수출을 요청하고 있다.
 
대구는 초기 집단발병의 중심지였다. 중앙정부가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정세균 총리가 오기 전까지의 골든타임 7일간의 대구 컨트롤타워는 민관협력 네트워크였다. 대구 의사들은 자가격리된 환자들을 시가 지급한 발신전용폰으로 화상통화를 통해 관리해 중증환자를 찾아내고 사망을 막았다. 공동체에 대한 윤리적 헌신이 방역체계의 붕괴를 막았다. 대구에는 유럽·미국 등 세계 각국 의료진과 연구소의 정보 공유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의료진과 기저질환자·노약자를 위한 ‘마스크 안 사기 운동’도 대구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대구는 동학 교조(敎祖) 최제우가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41세에 참형(斬刑)을 받은 곳이다. 그의 영혼이 오늘의 대구를 본다면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인 후천개벽의 세상이 여기에 있다”고 감격할 것이다. 주권재민의 미국 민주주의에 열광했던 토크빌도 시민적 교양의 핵심인 ‘탐욕의 절제’를 보여준 한국인에게 경의를 표시할 것이다.
 
코로나 방역의 일등공신인 한국 건강보험은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서민들은 싼 비용으로 양질의 진료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돈이 없어도 한국에만 가면 산다”고 한다. 의료 천국이 따로 없다. 낮은 수가를 견뎌내는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 많은 돈을 내는 부자의 기여가 한국 건강보험의 원동력이다.
 
1977년 ‘근로자 사회의료보험’을 도입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서강대 경제학 교수 김종인이 제안했지만 경제 관료와 보건사회부가 반대한 것을 밀어붙였다. 자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복지는 곧 안보”라면서 빈자(貧者)를 위해 인류 최초의 의료보험을 도입한 비스마르크의 결단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 박정희의 도움을 단단히 받고 있다.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는 죄목과 박근혜의 추락으로 불명예를 뒤집어 썼지만 그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진보정부의 가용 자산이 풍부해진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방역의 성공을 야당이 폄하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민주주의라는 구조물에서 야당은 ‘반대하는 당(opposition party)’으로 설계된 방이다. 집권당(ruling party)이 집단사고에 갇혀 독단에 빠지는 걸 막아주는 장치다. 부당해 보이는 공격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선의가 깔려 있다. 이걸 무시하면 이판사판의 전쟁이 벌어진다.
 
역병의 고통 속에 모처럼 시민의 역량이 분출됐다. 정치도 달라져야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단 하나의 정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복수의 옳음’이라는 딜레마를 수용해야 ‘완전한 코끼리’를 가질 수 있다. 형식적 민주화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된다. 포스트 코로나가 가져다준 후천개벽의 기회를 살리는 길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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