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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스무 살 어진이의 육아스트레스

기자
배은희 사진 배은희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1)

 
어진이가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호박전, 김치전, 계란말이, 주먹밥을 해놓고 배시시 웃었다.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찡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와, 그냥 먹기 너무 아깝다.”
사진을 찍고 나서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었다. 어진이의 예쁜 마음이 입 안 가득 씹혔다. 지인들에게 자랑도 하고, 어진이가 조금씩 어른이 돼가는 것 같아 나도 뭔가를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어진이가저녁을 차려 놓았다. 호박전, 김치전, 주먹밥, 계란말이. [사진 배은희]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어진이가저녁을 차려 놓았다. 호박전, 김치전, 주먹밥, 계란말이. [사진 배은희]

 
어진이는 스무 살이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혼자 수능을 준비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5년 만에 다시 학교에 가는 거라 얼마나 설레며 기대하는지 모른다. 정말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대학 입학식이 연거푸 미뤄졌다. 은지도 유치원 입학식이 미뤄져서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내가 출근하고 난 후엔 어진이가 은지를 돌보고 있다.
 
어진이는 사골국물에 떡국을 끓이고, 딸기를 으깨 딸기 우유를 만들어 준다. 은지가 심심하다고 조르면 동네 놀이터에 잠깐 나가고, 집에 들어오는 길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은지는 전보다 더 언니를 따른다. 팔에 매달리고, 다리에 매달리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언니를 부른다. 어진이는 은지 엉덩이를 닦아주고, 은지가 먹다가 만 밥을 먹는다. 이렇게 지내길 한 달 째다.
 
“아휴, 스트레스! 은지 없는 데서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엔 어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무 살의 육아 스트레스라니…. 미안한 마음에 같이 바닷가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은지랑 어떻게 했는지, 어진이가 기분이 어땠는지를 물어본다.
 
스무 살 어진이가 육아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해서 바람 쐬러 바닷가로 나갔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은지부터 챙기는 어진이. 둘이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이제 진짜 현실 자매가 됐구나 생각했다.

스무 살 어진이가 육아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해서 바람 쐬러 바닷가로 나갔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은지부터 챙기는 어진이. 둘이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이제 진짜 현실 자매가 됐구나 생각했다.

 
어진이는 은지를 끔찍이 예뻐하지만 좀 떨어져 있고 싶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은지하고만 지내는 건 갑갑하고 지친다고. 마치 은지 엄마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어진이 심정이 이해됐다. 육아라는 게 몸과 마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스무 살 어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짐이겠지. 간혹 저녁을 차려주고, 청소를 해주는 것만도 대견하고 고마운 일인데.
 
바닷가에 도착하자 어진이는 은지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이제 진짜 자매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진이랑 은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정말 서로를 위하고 아낀다. 위탁가족이 되기 전엔 상상도 못 했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처럼 산다는 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도 육아에 지쳐서 막막했던 날이 있었다. 자주 한계를 느꼈고, 자주 돌이키고 싶었다. ‘뭐가 아쉬워서 이러고 있나’, ‘내가 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은지를 보면 너무 예쁘다. 씻기고 입힐 때마다 쑥쑥 자라나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나를 알아보고, 팔을 벌리고, 코를 찡긋하며 웃을 땐 나도 따라 웃으면서 힘을 얻는다.
 
육아는 결국, 나를 기르는 일이었다. 은지를 기르면서 조급한 나, 무책임한 나, 이중적인 나를 발견한다. 가끔은 은지보다 더 어린 내가 성숙한 척, 한결같은 척 연기할 때도 있다. 그렇게 만 5년이 지나갔다. 이제는 좀 솔직해져도 되지 않을까? 어진이랑 은지도 진짜 자매가 됐고, 나도 은지를 보면서 내가 낳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니까.
 
어진이 뒷모습.

어진이 뒷모습.

 
오늘도 힘들고 버거운 육아지만 하나는 분명히 안다. 이게 나를 기르고 있다는 걸. 티격태격, 좌충우돌, 오늘도 여느 평범한 집의 일상이 펼쳐지지만 잘 버티기만 해도 우린 성장할 것이다. 어진이도 알까? 지금 어진이가 자라고 있다는 걸?
 
어진아, 우린 선물을 받은 거야. 육아할 수 있는 선물. 어진이가 더 자랄 수 있는 선물. 내가 더 신경 쓸 게. 더 자주 바닷가로 나가자. 그리고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자.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진인 멋진 어른이 돼 있을 거야. 
 
고맙고 사랑해. 파이팅!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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