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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서로의 간극 존중해주는 사람과 살고 있나요?

기자
박혜은 사진 박혜은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71)

 
내 안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들이 때로는 내 옆의 누군가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 순간 올라오는 감정들을 상대에게 쏟아 부어버리곤 합니다. [사진 pxhere]

내 안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들이 때로는 내 옆의 누군가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 순간 올라오는 감정들을 상대에게 쏟아 부어버리곤 합니다. [사진 pxhere]

 
창밖의 날씨는 점점 좋아지고 아이러니하게 코로나19로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든 요즘입니다. 맑아진 하늘과 더불어 창밖의 날씨는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데 맘 놓고 봄바람을 맞기 힘드니 괜히 마음도 움츠러드네요.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많은 것들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있지만 가족은 그럴수록 더욱 대면의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붙어 있게 되니 이래저래 생겨난 불편한 감정이 괜히 상대에게 튀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찾았던 전시회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유나킴 작가의 ‘강신주의 감정수업으로부터’란 제목을 가진 작품으로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 테이블 위에 스티로폼에 담긴 푸릇푸릇한 식물이 있고, 그 옆에는 작은 물병들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병 하나하나에 질투, 연민, 사랑, 미움, 희망, 동정 같은 다양한 감정과 관련된 50여개의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끌리는 감정의 물병을 골라 식물에 물을 줄 수 있습니다.
 
병에 적힌 감정들은 수시로 우리 마음을 왔다 갔다 하는 것들입니다. 많은 관객들은 한참을 바라보다 어렵게 하나의 감정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 물을 주고 나서도 한참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나에게서 사라졌으면 하는 감정 단어를 골랐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단어를 골랐을 겁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식물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의 단어를 골랐을 수도 있을 겁니다.
 
유나킴 전시작. [사진 박혜은]

유나킴 전시작. [사진 박혜은]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말합니다.
 
‘…… 나는 개인과 개인이 관계 맺기를 위해 선택하는 어떠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관계 맺기가 주는 다양한 감정들이 왜 발생할 수 밖에 없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공기와도 같아서 언제든지 허물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작가는 작업을 진행하며 너무 당연해서 등한시했던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는 간극〉을 머리와 가슴으로 인지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극이란 단어를 다시 찾아봅니다. 간극은 ‘사물 사이의 틈, 시간 사이의 틈, 두 가지 사건이나 두 가지 현상 사이의 틈’입니다. 공기조차 통할 수 없이 딱 붙어 있으면 어떨까? 얼마나 답답할까? 음식이라면 금방 썩어버리기도 하겠지요. 관계도 그러할 겁니다.
 
나는 작품 속 식물이 남편 혹은 아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단어가 적힌 물병을 집어 들게 될까요? 지금 작가의 작품이 옆에 있진 않지만, 머릿속에 떠올려보세요. 이 글을 읽는 지금 어떤 감정의 단어가 생각나세요? 떠오른 그 순간 잠깐 멈춤!! 하고 내가 왜 이 단어를 떠올렸을까 생각해보세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이 때로는 내 옆의 누군가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한 번쯤 “이 인간을 내가 안 만났더라면…” 하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을 테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 순간 올라오는 감정들을 상대에게 쏟아 부어버리게 됩니다. 이게 다 너 때문인 것 같은 거죠.
 
유나킴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며 생각합니다. 그러한 순간 나는 남편에게 '너는 날 사랑한다면서 너는 왜 나일 수 없어’를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더불어 조금 지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SNS (체인지 그라운드 / 윤충희 PD) 속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한 아내가 인터넷 게시물에 글을 올립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죠.
 
“남편이 참기름 간장밥을 좋아하는데요. 제가 스파게티랑 떡볶이를 만들어도 참기름간장밥이랑 같이 먹고요. 찌개를 해줘도 참기름간장밥이랑 먹어요. 오늘도 간장밥만 세 그릇 먹더라고요. 무슨 중독 증상이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매일 먹을 수 있는 건지…”
 
그러고 그 아래에 한 남편의 댓글이 달립니다.
 
“저랑 똑같은 것 같은데 저는 참기름고추장밥을 많이 먹는데요. 아마 님 요리가 너무나 맛이 형편이 없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먹는 것 같습니다. 내 요리가 맛없냐고 물어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그러자 처음 글을 남긴 아내는 이제야 알겠다는 내용의 답을 달았죠. 설마 모를 리가 있을까 싶지만 몰랐으니 인터넷에 글까지 올렸던 것이겠죠. 글을 쓴 아내를 이해해 보면서 아내가 상처받을까 말하지 않아 참아준 남편의 인내심도 떠올려 봅니다. 살아가며 때때로 느끼지만 세상 많은 일이 정작 나의 일이 되면 절대 모를 일들이 되곤 합니다. 나의 일이 되는 순간 객관적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부부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벗을 수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벗지 못하는 사이는 아닐까 싶습니다. 부부가 '서로 간의 간극을 인정하며 장점을 닮아가는 사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 pexels]

부부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벗을 수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벗지 못하는 사이는 아닐까 싶습니다. 부부가 '서로 간의 간극을 인정하며 장점을 닮아가는 사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 pexels]

 
감사하게도 남편은 장점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참을성과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죠.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은 아내에게 불만도 있을 텐데 쉽게 내뱉지 않습니다. 밖에서 일하다 보면 좋지 않은 일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에도 집에 와서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점이 감사하다 생각하고 살면서도 가끔은 궁금하거나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씩 남편이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올 때면 살살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죠. 알겠다 하면서도 남편의 생각과 감정들을 확인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반면에 저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과 말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보니 사사로운 감정들을 들키기도 하고 알아달라는 듯 드러내기도 합니다. 너의 좋은 점은 감사하지만 나는 잘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밖에서는 강의도 하고 상담도 해주면서 정작 나도 '나와 너의 간극'을 존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부부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벗을 수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벗지 못하는 사이는 아닐까 하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어린왕자의 대사를 떠올려봅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부부란 ‘서로 간의 간극을 인정하며 장점을 닮아가는 사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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