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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돈만 말고 정책 리셋도 속도 내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가 심상찮다. 기업은 공장문을 닫고, 일자리도 요동친다. 전국 고용센터에는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실직자로 넘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에서 최대 2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이마저도 낙관적인 수치”라며 “수많은 위기를 봤지만 이번 위기가 가장 두렵다”고 토로했다.
 

박지순 고용노사관계학회장 인터뷰
자율 막는 정부의 꼰대 짓 안 돼
틀어쥔 규율, 사업장에 넘기고
무급휴직도 실업급여 받게 정비
실업부조제로 안전망 리셋 필요

그럼에도 한편으론 노동시장과 사회안전망의 체질 개선을 서두를 기회라는 얘기도 나온다. 근로자에겐 실직 위험을 줄이고, 생계를 보장하면서 기업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뜻이다. 위기에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휘청이다 못해 무너지면 안 된다는 자각이다.
 
박지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긴급 수혈은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자금지원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위기 국면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정상 국가로 우뚝 섰다. 그런데 유독 노동시장만은 그렇지 못하고, 국제기관 평가에서 꼴찌그룹을 못 벗어나고 있다. 언제까지 1970~80년대 제도에 갇혀 돈만 뿌리는 땜질정책을 고수할 건가. 정책 리셋과 리콜이 필요하다. 코로나 극복은 성숙된 시민과 전문가에게 맡기고,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뒤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정책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박지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일자리 감염 사태를 최소화하고, 고용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용 역량을 만들 수 있게 정책 리셋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긴급 지원금으론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겠지만 한시적 대책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우상조 기자

박지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일자리 감염 사태를 최소화하고, 고용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용 역량을 만들 수 있게 정책 리셋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긴급 지원금으론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겠지만 한시적 대책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우상조 기자

결국 위기 극복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는 얘긴데.
“돈만으로 안 된다. 노동법 규정 때문에 기업활동이 주춤하면 위기는 장기화한다. 근로시간 문제가 그렇지 않은가. 정부가 일일이 연장근로를 인가하는 건 꼰대 짓이다. 노사정이 합심해 포괄적 인가를 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연장이 절실한 기업은 한 달간 자율적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가동률이 높아지면 위기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사회안전망도 손 봐야 하지 않을까?
“실업급여제도부터 다듬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무급휴직을 하는 곳이 많다. 해고보다는 낫다. 한데 무급휴직을 하면 근로자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이 경우 구직급여 지급사유로 인정해야 한다. 다만 무한정 무급휴직이 길어지면 곤란하니 이를 제어할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해고되면 다시 취업하기 힘들다. 따라서 해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휴직을 권장하되, 실업급여로 생계를 지원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는 일자리를 보전하고, 생계난도 덜 수 있다. 기업은 숙련공을 보호할 기회를 얻게 된다.
 
박 교수의 말은 이어졌다.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지원이 가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한국형 실업부조제(국민취업지원제도)의 도입을 이번 기회에 서둘러야 한다. 돈을 허투루 쓰는 게 아니라 실직자의 생계를 보전하면서 취업을 돕는 아주 효율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 지난해 이 제도와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매우 효과적인 코로나 실업대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를 단축하고, 정상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노동정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는 말로 들린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 3부작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전격 단축,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를 초단시간 근로자와 같은 더 열악한 근로자로 전락시켰다.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정부가 사용자를 대신해 임금을 지급하는 시장 왜곡까지 감행했지만 막지 못했다. 오히려 고연봉 근로자가 승자라는 말도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은 아무런 보완책도 준비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행해 계도기간이라는,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편법을 정부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차별 해소라는 근본적이고 과학적인 치료보다 정규직화라는 감성 자극 방식의 정책이다. 비정상적 신분화 갈등만 조장했다.”
 
그런 정책을 리셋할 방향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등 비용 상승 요소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또 이런 위기에선 일자리 유지가 핵심 과제인 만큼 앞서 얘기한 안전망 이외에 산업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이 경험을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정부가 노동존중이라는 미명 하에 생산성을 가로막는 꼰대가 되면 안 된다. 가능한 많은 자율 권한을 사업단위의 노사에 넘겨야 한다. 정부가 모든 근로조건을 틀어쥐고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원시적이다.”
 
박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이념과 명분을 내려놓고 실리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이념적, 운동적 이론을 접을 때라는 얘기다. “오로지 노동시장의 활력을 생각하는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게 그의 당부였다.
 
지칠 때 당분이 필요하지만 무작정 계속 섭취하면 당뇨로 고생하기에 십상이다. 돈으로 쉽게 성과를 내려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재정만 소모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단기적으론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뿌린 돈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다. 그게 국가 경제에 대한 건강 식단 아닐까.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박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위원회, 산재보상예방심의위원회, 고용보험위원회 등 고용·노동과 관련된 각종 정부 위원회 공익·전문위원. 제30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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