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미국인 헐버트가 본 글로벌 한국
![지난해 8월 열린 호머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뉴시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b38c3e10-7e78-4147-926b-0ac8f74616ef.jpg)
지난해 8월 열린 호머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뉴시스]
영문잡지 ‘한국평론’서 올찬 활동
“이방인 사랑하는 다정한 한국인”
한국에 대한 외국의 오해 비판해
1975년 서울의 매력 그려보기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고대 로마 유리그릇.
유럽인의 한반도 인식에서 이정표가 된 문헌은 『몽골제국 여행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은이 기욤 드 루브룩은 1254년 몽골 궁정에서 솔랑가의 외교사절을 만났는데, 솔랑가 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피부가 검고 갓을 쓰고 다닌다고 기록했다. 그는 카울리 이야기도 전해 들었는데, 섬나라 카울리는 겨울이면 주변 바다가 얼어붙어 타타르인의 침략을 받았으며, 평화의 대가로 매년 막대한 금은을 바친다고 기록했다. 솔랑가와 카울리는 옛 몽골에서 고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라 황남대총서 나온 로마 유리그릇
![헐버트가 한국인을 가르치는 모습. [뉴시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6856fb06-4cf3-442b-8bf1-f7504998e679.jpg)
헐버트가 한국인을 가르치는 모습. [뉴시스]
한반도를 직접 체험한 유럽인이 없지는 않았다. 네덜란드인 하멜이 13년간 조선에 억류됐다가 탈출해 자바섬의 바타비아 총독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1668년 네덜란드에서 출판됐다. 세칭 『하멜 표류기』라 하는 이 책은 곧 프랑스·독일·영국에서도 번역돼 한반도 지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지형이 험준하고 맹수가 우글대는 폐쇄적인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판본에 따라서는 악어 삽화와 함께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악어 이야기까지 들어갔다. 올해를 예견하고 백악기의 원시 악어로부터 조선 악어를 상상한 것일까.
개항 이후 조선에 찾아왔던 서양 사람들조차 이국적인(?) 조선을 전달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하다. 각종 견문기에서 조선에 관한 그릇된 인상,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기가 일쑤였다. 조선에서 다년간 체류하며 조선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서양인의 조선 견문기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다. 서양인이 조선에 관해 지은 책도 드물지만, 그마저도 조선에 관한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표지.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827c3053-2bd2-4ed1-814b-b479e6abc575.jpg)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표지. [중앙포토]
헐버트가 1901년 발간한 영문잡지 ‘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리뷰’라는 제목에 걸맞게 당시 한국에 관한 지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평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월간지였다. 한국에 관한 견문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 지식의 평론에도 힘썼던 근대 한국학의 주요 발신지였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이 조선에서 농사를 지은 덕분에 조선에서 비로소 벼농사가 도입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벼농사는 이미 서력기원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됐고, 일본은 조선에서 벼농사를 배웠다고 반박했다.
“일본은 조선에서 벼농사 배워갔다”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기사.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cdebb349-b1ed-4f03-8d93-f30831f68c88.jpg)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기사. [중앙포토]
헐버트의 ‘한국평론’은 당시 영문으로 유통된 한국의 견문 지식과 역사 지식을 적극 리뷰하고 힘껏 교정한 매체였다. 그러나 한국 상황의 획기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인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잡지 1906년 4월호 기사 ‘A Visit to Seoul in 1975’(1975년 서울 방문기), 곧 1906년 시점에서 약 70년 후의 한국을 상상한 미래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7b143248-784e-4958-bbce-9bae32fe0b70.jpg)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
올해는 2020년.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그 해로부터 다시 45년이 지났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지구의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슬기로운 국내 대처가 주목받고 있고 모범적인 국제 협력이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한국과 새로운 한국인의 자각은 이에 합당한 글로벌 지식을 지향한다. 식민지와 냉전의 논리로 편제된 낡은 한국 지식을 혁신하는 새로운 헐버트를 꿈꾼다.
한국의 수수께끼도 수집한 헐버트
![사민필지. [뉴시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26/03617623-9dde-4eb5-a56e-1ced15850f62.jpg)
사민필지. [뉴시스]
‘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한국학 연구자로 저명한 그가 편집한 잡지인 만큼 여기에는 한국에 관한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수수께끼다. 언젠가 한번은 헐버트가 한국인 두 명에게 한국 수수께끼를 수집해 오라고 시켰다. 서양 같으면 책이나 신문을 참조해야 할 텐데, 이들이 그런 것을 참조하지 않고도 단 이틀 만에 뚝딱 모은 수수께끼가 중복된 것을 빼고 무려 175개나 된다고 감탄했다.
여기서 잠깐 몇 개 소개해 본다. ‘늙어가면 살찌는 것 무엇이오’ ‘입은 하나라도 목구멍은 셋 있는 것 무엇이오’ ‘삼시 목욕하는 것 무엇이오’ ‘짐 실으면 가고 안 실으면 안 가는 것 무엇이오’.
그렇다면 정답은? 만약 이 수수께끼를 모두 맞힐 수 있다면 1900년대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에 상당히 친숙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정답은 차례대로 담벽, 아궁이, 사발, 신발이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