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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저축보다 소중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작은 사치'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3)

요즘같이 집에서만 있는 시간엔 청소도 답이다. 옷장이며 창고정리를 하다 보니 버릴 것이 너무 많다. 손수레로 몇 번이나 오가며 버렸다. 헌 옷에서 만 원, 천 원짜리 지폐도 몇 개 나와서 다시 쓰레기봉투를 열어 주머니를 다 뒤지기도 했다. 일본의 어느 쓰레기 집하장에서 가끔 돈다발이 쓰레기에 섞여 나온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올라온 걸 봤다. 기억력이 깜박거리는 우리 이야기 같다.
 
겸연쩍은 것은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거기에 버려져 있는 쓸 만한 것을 다시 주워들고 온다는 것이다. 이곳 시골 동네 쓰레기장에도 활용할 것이 많으니 도시에선 얼마나 더 많을까나…. 오늘은 커다란 도자기 화분이랑 유효기간도 많이 남은 딱지도 안 뗀 화장품과 세제 세트가 버려져 있었다. 유명 메이커이고 돈으로 치면 값나가는 것인지라 지폐를 주운 듯했다. 아마 취향에 안 맞는 것을 누가 선물로 줬나 보다. 그런 건 메시지를 써 붙여 쓸 사람이 갖고 가게 해주면 좋을 텐데…. 그날, 수고한 보람으로 창고와 방 한 칸이 깔끔하게 다 정리됐다. 
 
한 90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쓰레기로 버리려고 내놓은 수십 년 된 이불 속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말해주는 이천 만원이 넘는 지폐가 고무줄로 묶여 발견되었다고 한다.[사진 pxhere]

한 90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쓰레기로 버리려고 내놓은 수십 년 된 이불 속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말해주는 이천 만원이 넘는 지폐가 고무줄로 묶여 발견되었다고 한다.[사진 pxhere]

 
한때 독거 어르신 돌봄을 하며 어르신의 죽음을 통해 지폐 이야기를 해본다. 조용하고 점잖으신 한 어르신이 마당에서 넘어져 엉덩이뼈를 다치는 바람에 자리에 누우셨다. 연세가 많아도 마실도 다니고 잘 지내셨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회복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90대에 넘어지면 건강하게 살다가도 그냥 돌아가신다.
 
그 어르신은 자식을 많이 낳아 전쟁 통에 병치레에 다 잃고 아들, 딸 하나씩만 살아남았으니 평생을 아들 바라기로 사셨다. 가끔 편찮으실 때 아들에게 연락하려 하면 걱정한다고 못 하게 했다. 대신 딸을 불러 달라 부탁하곤 했다. 그 마음을 아는 가까이 사는 딸이 자주 들렀다. 이번엔 아무래도 못 일어나실 것 같아 아들에게 전화하니 바로 모시러 내려오겠다는 응답을 주었다.
 
며칠 후, 동네 어르신 몇 분이 그분의 병문안을 간다며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어르신은 서울 올라가는 도중에 문제가 생겨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 간병은 착한 딸이 또 맡았다. 병문안을 가보니 갑작스러운 상처와 충격으로 모든 기억도 잃어버리고 대화도 못 하셨다. 며칠 후 어르신은 돌아가셨다.
 
훗날 딸과 만나 할머니 집을 정리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짐을 정리하며 쓰레기로 버리려고 내놓은 수십 년 된 솜이불, 그 속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말해주는 2000만원이 넘는 지폐가 고무줄로 묶여 발견된 것이다. 오래된 지폐부터 새 지폐까지 만 원짜리로만 들어있었으니, 안 그래도 무거운 솜이불인데 더 무거워 뜯어보았단다. 딸이 말하길, 생전에 눈을 뜨나 감으나 아들 걱정이셨으니 당연히 아들 몫으로 주었다고 한다. 욕심 없는 착한 딸이니 망정이지 형제가 많았으면 싸움 날 일이 아닌가.
 
 
자식에게 남겨줄 것이 없는 게 어쩌면 다행일 것 같다가도 부모 짓도 못하는 인간이란 생각이 몇 번씩 교차한다. 적은 월급을 쪼개 저금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늘 안 하기로 다짐을 한다. 대신 친구나 지인들이 힘들고 지칠 때, “밥 먹자. 나와”라며 밥 사는 작은 사치를 부리며 산다. 돈을 주체 못 하는 큰 부자 말고. 애써 모은 돈이 있다면 살아 있을 때 잘 이야기해 줘야지. 꼭꼭 숨겨 놓고 기억까지 흐릿해지면 아무도 못 써보고 종이 쪼가리로 쓰레기장에 버려질지도 모른다.
 
내가 즐겨 읽는 어느 수필가의 글 속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아 베껴서 적어본다.
 
“돈은 행복해지기 위해 써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에 써야 하고, 전 인생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하는 데 써야 하고, 죽는 순간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게 좋다. 그리고 큰돈과 좋은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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