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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코로나가 일깨운 두 개의 불편한 진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 세계가 한국의 탁월한 코로나19 진단 능력에 놀라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지난 20여년간 바이오 벤처들에게 국내 시장은 척박한 불모지였다. 온갖 위원회에 포진한 민주노총·참여연대·환경단체·종교 원리주의자들이 신제품이나 새 서비스의 발목을 잡았다. 바이오 벤처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는 수없이 규제가 느슨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동남아·일본 등에 수출을 했고 임상실험도 그곳에서 했다.
 

그동안 바이오 벤처 구박하고
사내유보금 압박하지 않았나
이제 정치·진영논리 벗어나
시장과 기업의 자율 보장해야

국내 업체들은 지난 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번지자 곧바로 진단 키트 개발에 착수했다. 오래전부터 중국·동남아에 예민한 비즈니스 촉수를 세워온 덕분이다. 돌아보면 민주당은 10년 넘게 민주노총·참여연대와 함께 바이오 업계에 어깃장을 놓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손잡고 의료기기 및 바이오 규제완화에 결사 반대했다. 그런 바이오 벤처가 결정적 순간에 문재인 정부를 구원한 것이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은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갑자기 구국의 영웅으로 대접받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사내 유보금 논란도 코로나 사태를 통해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586 운동권들은 툭하면 “재벌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투자해 고용을 늘리자”고 압박했다. 2015년 당시 문재인 야당 대표도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 1%만 줄여도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는 달러화 확보에 혈안이다. 펀드 환매와 함께 기업의 현금 부족이 큰 원인이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미국 기업들은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주었다. 전문경영인 입장에선 주주의 환심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내유보금을 탕진한 끝에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자 ‘Rush for Cash(현금만이 자산)’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지난 주말 구제 금융을 요청한 보잉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사내유보금을 든든히 쌓은 아마존은 가장 돋보이는 기업이다. 창업 이후 26년간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고 자사주 매입도 딱 한 번에 그쳤다. 그 결과 애플·구글 주가가 32%씩 주저앉았지만 아마존은 13% 조정받는 데 그쳤다. 지금 아마존은 사내유보금 35조원으로 몸값이 반 토막 난 알짜 기업들을 어떻게 사냥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만약 삼성·현대차·SK·LG도 문재인 정부와 좌파의 압력에 굴복해 사내유보금을 탕진했다면 끔찍한 재앙을 맞았을지 모른다. 소름이 돋는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여전히 경제를 정치의 하부 개념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코로나 추경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정부안에 없던 저가항공사(LCC) 지원 등에 2418억원이 편성되고 똑같이 피해를 본 대형항공사는 쏙 뺀 것이다. 경제 위기 와중에도 내 편만 챙기는 진영논리가 어른거린다. 지금이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릴 한가한 상황인지 의문이다. 어제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자금을 100조원으로 늘려 불안한 대기업에도 인공호흡기를 댔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했다. 실제로 두 가지 이유에서 더 위험한 게 사실이다. 우선, 외부에 기댈 언덕이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위기 해법으로 한·미 통화스와프와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자랑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바로 4조 위안(775조원)에 달하는 중국의 초대형 경기부양이었다. 중국의 9~10% 고성장 덕분에 우리도 곁불을 쬘 수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미국·유럽·중국 경제가 순항하면서 우리 수출이 급속히 회복됐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이 10년 호황의 끝물이고 중국 경제 역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 경제에 아주 불리한 환경이다.
 
또 하나,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금융과 실물경제가 동시에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복합골절이다. 당장은 주가와 환율이 곤두박질치는 가격 조정이 끔찍하지만, 앞으로 더 길고 잔인한 기간(期間) 조정이 기다리고 있다. 곧 마이너스 성장, 실업률 폭등 등 암울한 실물 지표들이 꼬리를 물 게 분명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전 세계 기업의 10~15%가 도산 위기에 빠질 것”이라 경고했다. 참혹한 지표 때마다 시장은 다시 엄청난 경련을 일으킬 것이다. 위기가 장기화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2년을 더 끌고 가야 한다. 코로나 위기를 오롯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하지만 대통령 주위에 경제 전문가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상조 정책실장, 경제부총리를 대놓고 위협하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갑자기 긴급재난소득을 들고나온 김경수 경남지사 등 이념형 정치가들만 설치고 있다. 하지만 경제는 실리다. 또한 경제는 심리다. 이제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내려놓고 시장을 믿고 기업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에 바이오 벤처들이 구원투수로 등판하고 주요 그룹들이 든든한 사내유보금으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마스크 대란에서도 정부는 시장의 보완재이지 결코 대체재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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