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아래의 아래에서 살다간 서정태 시인

 
 
 
서정태 3/25 서정태

서정태 3/25 서정태

“시집 하나만 더 내고 가면 좋겠구먼.”
서정태 시인이 나를 볼 때마다 얄궂은 웃음 머금고 한 말이다.
그는 미당 서정주의 아우이며 시인이다.
그는 우리 나이 여든일곱부터 고창 질마재가 한눈에 보이는
미당 생가 옆에 조그만 흙집을 짓고 홀로 시를 쓰며 지내왔다.
그가 아흔이던 2012년 봄 처음 만났다.
 
처마 밑엔 ‘우하정(又下亭)’이란 당호가 있었다.
두어 평 방에 싱크대와 찬장, 앉은뱅이책상과 누울 자리가 다였다.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싱크대 위엔 고사리와 취나물이 있었다. 딱 한 줌씩이었다.
세간이며 먹거리조차 넘침이 없었다.
아흔의 시인이 다 버린 채 홀로 지내는 까닭이 이랬다.
“요 앞 질마재에 부모님과 형님 내외 산소가 있소.
문만 열면 보이지. 예서 시묘 살이 하는 셈이지요.”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그가 장난기 밴 말투로 들려준 우하정의 의미는 이랬다.
“미당 생가 아래 있으니 우하요. 미당의 아우니 또 우하지.
하하, 사실은 모든 것의 아래, 또 아래라는 의미요.”
사실 미당의 아우라는 게 시인으로서 그에겐 늘 벽이었다.
도저히 넘어 설 수 없는 미당의 시,
그런데도 미당의 허물까지 품으며 아래의 또 아래에 든 게다.
백수(白壽)를 앞두고서도 당신을 붙들고 있는 건 언제나 시였다.
언젠가 그가 넋두리처럼 내게 고백을 했다.
“미당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고,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미당이요.”
시묘 살 듯 ‘우하정에서 우하’로 사는 이유였다.
지난 11일 그가 아흔 여드레 삶을 마치고 아래에서 하늘로 올랐다.
끝내 마지막 시집을 내지 못한 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