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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낙천과 선의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한 문학잡지에서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되었던 시편들을 권말 특별부록으로 실어서 그것들을 요즘은 읽고 있다. 『진달래꽃』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난 김소월 시인이 1925년에 펴낸 시집이다. 김소월 시인은 1934년에 젊은 나이로 작고했지만, 시집 『진달래꽃』에 실려 있는 시편들은 지금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통의 때도 머잖아 지나갈 터
선의의 사연들에 큰 감동 받아
내게 덜 필요한 것 양보했으면

봄의 때라 그런지 계절감이 느껴지는 시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김소월 시인은 시 「수아(樹芽)」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섧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텄어라!” 이 시의 제목 ‘수아’는 나무의 새순을 의미할 테다.
 
우리의 삶은 마치 갈 곳 없는 처지처럼 서러운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봄이 다시 돌아오니 묵은 가지에 새순이 돋는 것을 눈여겨보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길을 잃고 사랑을 잃은 심정을 김소월 시인은 자주 노래했지만, 봄의 우주적 기운이 만들어내는 생동(生動)의 흥취는 그도 억누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시 「낙천(樂天)」도 이번에 새롭게 읽은 시였다. 짧은 네 행의 시였다.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고 난관이 닥치는 때가 자주 있다. 참으로 살기에 쉽지 않은 때가 있다. 그러할 때 시인은 조금은 낙천적인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염세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즐겁고 좋은 때가 곧 오겠거니 기대를 가지고도 살아볼 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꽃 지고 잎 진” 때는 어떤 하강의 국면일 테지만, 꽃도 잎도 없는 가지에 바람이 설령 불어오더라도 살기에 어려움이 지극히 많은 때를 지금 통과하고 있다고, 이 역경의 시기도 머잖아 지나가리라고 조금은 스스로를 위로도 해 볼 일인 것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어느 때보다 무력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에서도 우울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에만 머무르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생기고 활력이 떨어진다는 불편을 말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을 한곳에서 만나는 일을 꺼리게도 된다. 심지어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면 과도하게 공포에 휩싸이게도 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심이 아닐까 한다. 서로서로가 그물처럼 연결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내가 당장에 감당하고 있는 불편보다는 다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더 큰 무게를 보살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가족과 이웃 가운데 병을 직접 앓는 사람이 있고, 또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내 것을 내주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방호복을 입고 간호한 30대 손자의 사연은 감동적이었다. “내 능력으로 도울 수 있는 한계입니다. 힘들 내세요”라고 쓴 쪽지와 함께 파출소에 자신의 마스크를 놓고 간 시민의 이야기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신을 기초생활 수급자 70대 노점 상인이라고 소개하며 마스크 40장과 현금 100만원을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아 경찰에게 건넨 후 황급히 자리를 떠난 분도 있었다. 이러한 선의의 나눔과 양보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곳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시단의 어른인 김남조 시인이 근래에 발표한 시 「성주(城主)」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 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 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 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 당신의 고독은 깊어간다//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 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 재물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 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겸허히 기도하라”
 
이 시는 우리 모두가 성주, 즉 자기 삶의 우두머리이며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너무 남보다 탁월하려고만 하거나 행복한 일만을 추구하려고 하지 말고, 재물이 과도하게 쌓여있지 않게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고독을 감내하고 자신을 낮추고 비운 채 기도하면서, 많은 이들의 인생이 감미롭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갖고 있는 물질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일도 선한 일이다. 많은 이들의 감미로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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