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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체력은 이미 바닥났다···맞벌이 비상경영 ‘육아 품앗이’

66만6163개. 국내에 있는 기업체 수(2017년 기준)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셈입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중앙일보의 새 디지털 시리즈인 [기업 딥톡(Deep Talk)]에선 대한민국 기업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꿈ㆍ희망ㆍ생활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기업딥톡] 재택에 개학 연기돼 골치 아픈 맞벌이 직장인


지난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초등학교에서 운영중인 긴급돌봄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 떨어진 채 학습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초등학교에서 운영중인 긴급돌봄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 떨어진 채 학습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3월2일이었던 개학이 다음달 6일로 한 달 이상 미뤄지며 맞벌이 직장인들은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가느라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이례적인 상황이란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과 육아의 병행은 ‘각자 도생’에 가깝다는 현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모여있지 말라지만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시행 중인 재택근무의 취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다. 하지만 돌봄 공백이 길어지면서 맞벌이 직장인들은 지인끼리 아이를 함께 돌보는 ‘육아 품앗이’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박 모 씨는 “매일 할 일을 보고하고 부서장에게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아이를 보면서 제대로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재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인 그는 결국 처지가 비슷한 직장 지인들과 함께 공동 육아를 하기로 했다. 돌아가며 상대방 집에 모여 박 씨가 일할 때는 동료가 박 씨의 아이까지 봐 주고, 동료가 일할 때는 박 씨가 동료의 아이를 돌봐주는 식이다. 최근엔 품앗이 멤버가 4명까지 늘었는데 이 중엔 아이만 맡기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엄마도 있다. 박 씨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노니까 오히려 돌보기가 편한데다, 일을 하기 위해 계속 TV나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잇단 개학·개원 연기로 직장인 방, 맘카페 등에 맞벌이 직장인들이 올린 고충 사연글 화면. 독자 제공

잇단 개학·개원 연기로 직장인 방, 맘카페 등에 맞벌이 직장인들이 올린 고충 사연글 화면. 독자 제공

 
아예 노트북 PC를 챙겨 친정 부모나 자매 집으로 출근하는 ‘재택 이주민’도 생겨났다. A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일주일 정도 혼자 재택근무를 해보니 5살 아이를 보면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며 “민폐인 줄은 알지만 아이와 함께 전업 주부인 언니 집으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재택 근무를 집에서 쉬엄쉬엄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씁쓸해 했다.  

올해부터 ‘돌봄 휴가’ 생겼지만…

“D-데이(어린이집 개원일)가 9일로 연장됐다가, 23일이 되고 이제 다음달로 넘어갔잖아요. 계속 ‘육아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다시 세우고 있어요.” 
 
6세 아들의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는 최 과장 부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대표 사례다.  
사실 올해부터 맞벌이 직장인이 자녀를 위해 쓸 수 있는 제도가 꽤 다양해졌다. 대표적으로 1년에 열흘짜리 ‘가족돌봄 휴가’가 생겼다. 기존의 가족돌봄 휴직(연 90일)이 가족의 질병·사고·노령만 사유로 인정됐다면 돌봄 휴가는 ‘자녀 양육’도 사유에 들어간다. 기간도 하루 단위로 쓸 수 있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사람은 육아휴직 1년과 별도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1년도 쓸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서 근로시간을 하루 1~5시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맞벌이 부부가 연차휴가를 더하면 한두 달 정도 ‘비상 양육’도 가능해 보인다.  
직장인들이 쓸 수 있는 육아 관련 휴가·휴직.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직장인들이 쓸 수 있는 육아 관련 휴가·휴직.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급이냐 무급이냐…비용도 큰 부담 

문제는 늘 그래왔듯 실효성과 돈이다. 돌봄과 관련한 제도들은 대부분 ‘사정이 있는 경우 회사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고, 회사·부서장과의 합의가 필수다. 최 과장 부부 역시 유통 분야라는 회사 사정상 재택 근무가 어렵고 휴가를 길게 쓰기도 여의치 않다. 처음 1~2주 어린이집 개원이 미뤄졌을 때에는 ‘부모님 찬스’를 썼다. 월·수·금은 친가에, 화·목은 외가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방학이 길어지면서 연령이 높은 부모님의 체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최 과장은 “만약 또 다시 개원이 미뤄지면 그 땐 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더 아끼고 더 벌려는 셈법도 복잡

가족돌봄 휴직과 가족돌봄 휴가는 무급이고, 근로시간 단축도 하루 1시간이 넘어가면 임금이 깎인다. 연차는 사실상 ‘미래 수당’을 포기하는 건데, 연차를 아끼자고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을 구하거나 돌봄 시간을 연장할 경우 시간당 추가 비용이 최소 1만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 당장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도 용돈은 필수다.
 
국내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B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데 나도 아내도 재택근무가 어렵다. 일주일에 나 하루, 아내 이틀씩 연차를 쓰고 나머지는 이모님을 더 써서 막고 있는데, 비용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교 후 오후 4~7시까지만 봐 주시던 걸 하루 종일로 며칠 더 돌리면 거의 월급 수준 금액이 들어가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가족돌봄 휴가자에게 1인당 하루 5만원씩 최대 5일간 특별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맞벌이의 경우 부부가 각각 5일 동안 25만원씩, 총 5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이미 지원금 신청사례가 나흘 만에 1만 건을 넘어섰다.

마스크처럼 ‘도시락’도 필수 

코로나19 사태 이후 맞벌이 가정이 겪고 있는 의외의 고충이 있다. 바로 식사 챙기기다. 마케팅 기획업체 에스피랩의 하영아(45) 실장은 “매일 도시락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며 웃었다. 정부 권고로 휴원에 들어갔던 학원들이 잇달아 다시 문을 여는 가운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식당이나 배달음식을 자제하고 도시락을 지참해 달라’는 학원 측 권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 실장은 출·퇴근 시간 틈틈이 장보기 배달을 시키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은 뒤 학원에 다니는 자녀를 위해 매일 새벽 점심·저녁 도시락을 싼다. 그는 “개학을 해도 학교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 보낼 거란 주변 전업 주부들의 얘기를 들으니 당분간은 계속 도시락을 써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종합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 중인 정 모 씨 역시 초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을 위해 ‘아점’을 준비하고 출근한다. 바빠서 챙기지 못한 날엔 점심 시간을 이용해 집에 들러 식사를 챙겨주고 다시 나가기도 한다. 임상병리사 신 모(43)씨는 퇴근 후 저녁 식사에 다음 날 아이들이 먹을 식사, 간식까지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주방에 남는 날이 많아졌다. 
 
송인한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과거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난제”라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난제 해결의 책임이 개인에게 미뤄지고, 시간·돈·인맥 같은 개인이 가진 자원과 운에 따라 격차가 크게 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로자 복지 제도의 존재 이유가 ‘함께 살아가기’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회사와 근로자가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비상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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