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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

김규항 작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작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성숙한 시민의식과 의료 노동자들의 헌신 덕분에 코로나19의 기세가 조금은 수그러든 듯하다. 세계적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지만, 여하튼 이 사태도 결국 끝날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특히 세계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것은 높은 전파력 때문이다. 다음번 바이러스는 높은 전파력과 높은 치사율을 갖고 올 수도 있다.
 

희망 주는 인간 행동이 감동 선사
한계 보인 현 문명 방식 고민해야

지금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중세가 아니다. 콜레라·장티푸스·홍역처럼 오랫동안 인간을 위협하던 전염병도 잠재운 21세기다. 동물과만 관계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거듭 공격한다는 것은 인류 문명이 생태 환경과의 관계에서 최종 경계선을 무너뜨렸음을 의미한다. 최후의 원시림과 소농 경작지가 파괴되고 대도시들은 축산 산업의 일부가 됐다. 연속되는 바이러스는 호주 산불과 아마존 산불, 기후 위기라 불리는 거대한 상황의 일부다. 현재 인류 문명을 구성하는 보편적인 방식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문명의 독특함은 그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본이, 자본의 이윤 추구와 축적 운동이 문명의 동력이자 주체다. 대개의 현실에서 그런 속성이 완전히 발현되진 않는다.
 
그러나 케인스주의 종식 이후 지난 30여 년 이상 자본주의는 견제와 조절을 벗어난 상태로 일관했다. 인류 문명은 거의 전적으로 자본의 의지로 구성됐다. 인공지능(AI) 시대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것들이 직업과 고용을 없앤다고 공언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항의도 질문도 없이 단지 적응하고 살아남을 궁리만 한다. 이런 사실은 현재 문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 문명은 또한 문명의 기초인 노동을 무너뜨렸다. 불안정 비정규 노동의 일반화를 넘어 기존의 노동권을 철회하는 플랫폼 노동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된다. 그에 따라 정치는 제 이념과 사회 전망을 잃은 채 진영 간의 이전투구로 전락했다. 교육은 인간의 성장이 아니라 인적자원을 생산하는 산업이 됐다.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유한 질문을 접고 인간의 가격과 효용 증진에 봉사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인류니 문명이니 하는 이야기는 거창하고 추상적인 것으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하이에크가 말한 ‘사유재산권의 자유로운 처분에 기초한 경쟁 체제’가 최선이라고 강변하긴 어려워 보인다.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 중 변하지 않는 부분을 겨냥한 보편적인 백신 개발이 이미 가능했음에도 나오지 않은 것부터가 자본주의 원리 때문이다. 대부분의 거대 제약회사들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심장약·발기부전치료제에 집중하느라 그 일을 방기해왔다.
 
충격과 혼란 속에서도 인간의 위엄을 되새기고 희망을 안겨주는 태도와 행동을 목격하는 건 감동적인 일이다. 그 태도와 행동은 이윤이 아니라 인간, 경쟁이 아니라 협동, 사유가 아니라 공유의 원리를 좇고 있음을 우리는 생생히 확인한다. 가장 어렵고 곤란할 때 훌륭한 게 가장 훌륭한 것이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옛 사회주의로 돌아가자는 건가”라고. 현실 사회주의 역시 생산력 주의와 산업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의 변종이었을 뿐이다. 좌우, 진보와 보수는 해체되고 재구성돼야 한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그와 관련한 정치적 관심이 늘고 있다. ‘조국 수호 진보’나 ‘반공주의 보수’까지 포함할 순 없겠지만, 우리는 현실 정치의 모든 장면이 갖는 나름의 의미를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인류 문명에 대한 거시적 안목 없이는 현실 정치나 미시적 사회 의제들에서 안목을 갖기 어렵다. 인류의 일원으로서 문명을 구성하는 현재의 방식이 생태의 차원에서 노동의 차원에서 한계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고민하고 사유해야 한다.
 
김규항 작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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