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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의 파킨슨병, 그리고 '휜 소나무'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 수목원 '쉼의 언덕'에서 '기적'이라는 이름의 소나무 앞에 섰다. 울퉁불퉁한 구릉 지대인 쉼의 언덕은 한 대표가 제일 먼저 조성한 수목원 지역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 수목원 '쉼의 언덕'에서 '기적'이라는 이름의 소나무 앞에 섰다. 울퉁불퉁한 구릉 지대인 쉼의 언덕은 한 대표가 제일 먼저 조성한 수목원 지역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목원은 봄이 오지 않았다. 축령산 비탈에 들어선 수목원은 아직 활기가 돌지 않아 채도가 낮았다. 아침이어서 고요하면 다행이겠는데, 해마다 100만 명이 찾았다는 수목원이 요즘은 평일 100명 채우기가 빠듯하다는 설명에 대꾸를 찾지 못했다. 꽃모종 심느라 부산한 직원들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무 서둘렀을까. 아니다. 소식을 들은 지 넉 달이 지났다. 개나리 진달래 피길 기다리는 건 지나친 욕심일 테다. 하루가 다른 게 어르신 건강인데. 마침 춘분(3월 20일)이다. 밭 갈러 가는 날이다. 겨우내 기다렸던 농사를 개시하는 날이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70) 대표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병을 얻은 건 오래됐다. 2004년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꼿꼿이 버텨내 수목원 바깥 세상은 잘 몰랐다. 병세가 나빠진 건 지난해 여름 이후다. 위독한 건 아니라 하여 봄꽃 피는 날을 기다렸다. 삭풍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내력 깊은 병 털고 일어선 당신을 보고 싶었다. 하필이면 올해는 수목원을 연 지 25년이 되는 해다.
 

“나무는 상처를 받으면 휘어요. 이 소나무는 크게 세 번 휘었어요. 밑동에서 크게 꺾였고, 잘 자라다 다시 휘었고, 가지 앞에서 또 돌아갔어요. 이 나무를 보면서 내 인생을 돌아봐요. 태어나자마자 한국전쟁을 겪었고, 20대 땐 월남전에서 죽을 뻔했고, 수목원을 열고선 IMF 외환위기를 맞았어요.”

 
“지금 바이러스 위기는요?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하다는데요.”
 

“아직 안 끝났잖아요. 나무는 시련을 이겨낸 다음에 휘어요. 상처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거죠. 저기 향나무는 죽은 줄기와 산 줄기가 엉켜 있어요. 죽은 줄기가 산 줄기를 지탱해줘요. 그렇게 향나무는 천 년을 살았어요. 사람 사는 것도 같아요. 휘어진 가지에서 꽃이 핍니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목격한 봄 풍경. 봄이 일러 야외 정원에서 꽃은 드물었지만, 봄이 오는 기척은 분명 있었다. 이를테면 버들강아지에 내려앉은 꿀벌 같은 장면에서 말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목격한 봄 풍경. 봄이 일러 야외 정원에서 꽃은 드물었지만, 봄이 오는 기척은 분명 있었다. 이를테면 버들강아지에 내려앉은 꿀벌 같은 장면에서 말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당신은 또박또박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지만,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사진을 찍으러 지팡이 짚고 정원으로 나온 당신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든 웃어 보이려다 실패한 뒤 팔다리의 떨림이 심해졌다.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병 하나 친구 삼아 구슬리며 사는 거지요.”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가 지목한 제 인생을 닮은 소나무. 밑동 바로 위에서 휘었고 한참 큰 뒤에 다시 휘었고 가지 앞에서 또 휘었다. 이 소나무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가 지목한 제 인생을 닮은 소나무. 밑동 바로 위에서 휘었고 한참 큰 뒤에 다시 휘었고 가지 앞에서 또 휘었다. 이 소나무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부쩍 안 좋아지셨다고 들었습니다.
파킨슨병이란 게 아무도 나았다는 사람이 없어요. 난치병이고 불치병이지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병 하나 친구 삼아 구슬리면서 사는 것도 인생이겠구나. 작년 이맘때 먹어야 하는 약을 절반으로 줄였어요.
 
아니 왜요?
아픈 건 나니까. 내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의사는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환자를 가장 잘 아는 건 환자 아니겠어요? 약을 줄이고 나니까 의식이 깨어났어요. 사고가 분명해졌어요. 그 대가로 떨림이 심해지고 거동이 더 불편해졌지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안 좋아졌다고 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던데.
뉴스를 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른들이 죽는다고 하니까, 그래도 인생을 살 만큼 산 사람들이니까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사람이 죽으면 나이 든 사람이 미안하잖아요.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감격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와 이영자 원장. 수목원은 부부가 손수 일군 터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대표와 이영자 원장. 수목원은 부부가 손수 일군 터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상경 대표는 원예학자다. 90년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여러 수목원을 둘러본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고요수목원에 평지가 드문 건 한 대표가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이 비대칭 곡선에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비대칭 곡선이 주는 편안함을 그는 후미진 산자락 3만 평(약 10만㎡)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1994년부터 아내 이영자(68) 원장과 수목원을 일궜고, 2004년 삼육대 원예학과 교수를 퇴임했다. 대학에서 물러날 때 병에 걸렸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96년 수목원을 열었으니까 25년이 됐습니다. 소회를 여쭌다면.
처음 드는 생각은… 참 좋은 시절을 보냈다,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감격스러운 세월을 보냈다. 가난한 대학교수가 너무 넘치는 꿈을 꿔 인생이 고달프지 않았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
 
돌아보니 행복한 경험뿐인가요? 고생도 많으셨잖아요. 
수목원 만들 땐 수목원법 같은 게 없었어요. 화전민이 흑염소 놓아 기르던 데 나무를 심었어요. 황무지에 나무를 심고 꽃을 피운 것인데, 공무원에겐 다르게 보였나 봐요. 농지 불법전용, 산림 훼손 이런 거로 고발을 당했어요. 정면돌파했어요. 법 논리에 의지하지 않고 내 신념을 주장했어요. 내가 여기서 나무 심고 꽃 심은 것, 이게 내 신념이다. 2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아냈어요. 그게 제일 힘든 일이었네요. 
 
이제 수목원 경영은 아드님(한정현 본부장)이 하지요?  
제가 서 있는 위치가 좀 어정쩡해요. 눈치가 보여요. 사람은 보람과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보람을 느끼며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데…. 내가 다 쓰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서글픈 거야(직원의 설명은 조금 달랐다. 아직도 어느 나무를 어디에 심는지는 한 대표가 결정한단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천년향'이라는 향나무 앞에서 한상경 대표. 어떻게든 웃음을 지으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 얼굴이 웃는 표정과 가장 가까운 얼굴이었을 터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천년향'이라는 향나무 앞에서 한상경 대표. 어떻게든 웃음을 지으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 얼굴이 웃는 표정과 가장 가까운 얼굴이었을 터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파킨슨병은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굳는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루게릭병과 증상이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노령 인구가 늘면서 발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2017년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대화가 30분이 넘어가자 한 대표의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고, 침을 삼키지 못해 휴지로 닦아냈다. 손이 떨리더니 팔이 떨리고 다리가 떨리고 끝내 머리도 흔들렸다. 볼펜을 내려놓고 당신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졌던 그의 마지막 말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옮겨 적는다. 
 

이다음에 하늘에 가서 ‘넌 뭐하고 왔느냐’ 물으면 ‘전 나무 심다 왔습니다. 나무를 심고, 또 심고, 또 심었습니다….’ 많은 나무를 심었더니 많은 사람이 고맙다고 그러더라고.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젊었을 땐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말을 바꿨어요. 첫인상을 믿지 말아라.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슬픈 거야….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가’ 보다는 ‘무엇이 내게 유리한가’ 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더라고.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도. 그러다 보니까 병들고 아파하고,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떨리는 건 괜찮아요. 이 증세를 감수하는 거니까. 맑은 정신과 교환한 거니까…. 저는 곡선이 있는 휘어진 나무를 좋아합니다. 모진 풍파를 겪은 나무에요. 휘어진 가지, 그런 데서 꽃이 피어요. 휘어진 가지에서 열매가 더 잘 열려요. 아팠던 나무가 휘어져요. 휘어진 나무는 펴지지 않아요. 그러나 꽃은 피울 수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형이 아팠어요. 어머니가 형을 더 챙겼어요. 형은 아프니까…. 대한민국 사람들이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너무 모질어진 것 같아. 그래도 버릴 순 없잖아. 포기할 순 없잖아. 아프니까….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 속에 이미 피어있기 때문이다……. 그만합시다.

 
그의 긴 독백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겨우 울먹이고 있었다. 외람된 고백이나, 위로를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들으려 찾아뵀었다. 온 세상이 시름에 빠진 지금, 평생 나무만 심고 산, 나무처럼 꼿꼿이 평생을 산 어른의 말씀이 궁금했었다. 그래도 몰랐었다. 쥐어짜듯, 가쁜 숨 몰아쉬며 제 인생을 죄 털어놓을 줄은. 이다음에 나는 하늘에 가서 “나무를 심고, 또 심고, 또 심은 사람을 만나고 왔습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건강하시라, 당신.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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