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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택시 피한 돈 1조3500억원 해외로

국내 모빌리티 산업 불확실성이 원인… “국내엔 데이터 못 쌓는 아날로그 택시 산업만 남아” 지적

미래 막힌 차량호출 서비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근 3년여간 해외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업체에 1조3449억원 넘는 돈을 투자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네이버 등은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싱가포르 차량 호출 서비스 ‘그랩(Grab)’ 한 곳에만 6000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렌터카 기반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가 지난해 1월 500억원 투자 유치에 그친 것과 대조된다. 모빌리티업계 관계자는 “택시업계 거센 반발과 규제, 불법 논란으로 국내 차량호출 및 승차공유 서비스시장의 성장이 완전히 멈추면서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기업의 10억원 이상 해외 투자를 조사한 결과, ‘모빌리티 혁신’에 나선 현대자동차그룹이 가장 적극적인 해외 투자를 진행했다. 현대차그룹은 2017년 12월 그랩 투자를 시작으로 총 5개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업체에 6922억470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업체 투자 규모의 51.4%를 차지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승차공유·차량호출 서비스는 현대차가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기업으로 혁신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사업 분야”라고 평가했다.
 
 

차량호출·승차공유 국내 투자는 해외 대비 1%

SK그룹 역시 자율주행기술에 방점을 찍고 1654억원을 투자했다. SK가 2017년 9월 미국 개인 간(P2P) 승차공유 1위 업체인 ‘투로(TURO)’에 397억2800만원을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위해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펀드를 조성해 2018년 중국 승차공유(카풀) 업체 ‘디디추싱(Didi Chuxing)’에 2800억원을, 그랩에 1750억원을 투자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자율주행기술 고도화를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운행 데이터가 필요하다”면서 “향후 기술 협력을 위한 투자”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국내 기업들의 돈이 돌지 않고 있다. 타다를 운영하는 쏘카는 지난해 1월 500억원을 투자받은 게 고작이다. 2015년 쏘카에 투자해 지분(23.87%)을 확보했던 SK마저 2018년 쏘카와 세운 말레이시아 합작법인에서 더 많은 지분(60%)을 챙겼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2년간 국내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인 KST모빌리티(50억원)와 제이카(10억2000만원)에 총 60억2000만원을 투자한 데 그쳤다. 현대·기아차가 그랩이나 인도 ‘올라(Ola)’ 등 해외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에 투자한 금액의 1%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 집중은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국내 모빌리티산업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는 이유다. 예컨대 현대차는 2017년 국내 카풀 스타트업인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6개월 만에 철회한 뒤 그랩으로 투자처를 옮겼다. 승차공유 규제가 해소되지 않아 데이터 확보 차질 가능성이 커진데 더해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관계자는 “당시 택시업계가 럭시 투자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현대차의 차량을 택시로 쓰지 않겠다며 압박해 해외를 택했다”고 말했다.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회와 택시업계가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주도하며 카풀 운행을 하루 4시간으로 제한해 사실상 카풀 업체에 대한 투자가 막혔다. 지난 10월 발의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그나마 유지됐던 렌터카 기반 차량호출 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어려워졌다. 앞서 국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에 예정됐던 6000억원 수준 추가 투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발의로 계약 직전 무산됐다. 카풀 서비스를 추진했던 카카오 모빌리티 역시 2017년 5000억원 유치 이후 현재까지 외부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향후에도 해외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에만 투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 여력이 있다고 해도 국내에는 굳이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국내 기업이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도로에 차선이 어떻게 좁아지는지, 다른 운전자는 주로 어떻게 이 차선에 진입하는지 등 실제 운행과 관련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기술을 고도화하고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머지않은 미래의 택시는 자율주행차를 불러 타는 형식이 될텐데 정작 국내에는 운행 데이터를 쌓지 못하는 아날로그 산업 택시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 ‘고젝(Gojek)’에 323억원을 투자해 지분 0.3%를 확보했다. 2010년 설립된 고젝은 스마트폰 앱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호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약 12조원)에 이르는 등 인도네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 대표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만도 관계자는 “향후 자율주행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고젝이 확보한 운행 데이터 활용 및 기술 협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 본격화할 수도 

현대차(2260억원), 기아차(851억원), SK(810억원), SK텔레콤(305억원), 네이버-미래에셋대우(1750억원) 등 국내 기업들의 투자만 5977억원가량이 몰린 그랩은 싱가포르, 필리핀 등 8개국 336개 도시를 아우르는 동남아 최대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로 성장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이응압푸 그랩 성장·인공지능 부문 대표는 최근 “보이지 않지만 모빌리티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은 AI”라며 “AI 고도화로 이미 호출 이후 승객 승차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했다.
 
국내 기업의 투자를 받은 해외 차량호출·승차공유 서비스 업체들이 국내로 역진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택시 면허를 매입할 경우 차량호출 및 승차공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다. 디디추싱은 이미 국내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차량호출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국내 차량호출·승차공유 업체들은 택시업계에 밀려 고사하고 있다”면서 “해외 업체가 면허를 매입해 사업에 나서기 딱 좋은 시기인데다 국내 기업도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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