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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리는 해부학자, 시신 단면 찍어 3D 인체지도 제작

[J닥터 열전]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정민석 교수

정민석 교수는 20년간 시신을 이용한 인체 절단면 3차원 영상 제작에 몰두했다. 낮엔 해부학자, 밤엔 만화가로 살아간다. 김경빈 기자

정민석 교수는 20년간 시신을 이용한 인체 절단면 3차원 영상 제작에 몰두했다. 낮엔 해부학자, 밤엔 만화가로 살아간다. 김경빈 기자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게 꿈이에요.” 교수는 남달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동료나 학계, 학생 그 누구에게도 자극을 줄 수 없다면 교수로서 생명력을 잃은 것이라고 믿는다. 해부학자이자 의사 만화가로 알려진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정민석(58) 교수 얘기다. 그는 의사 사회에서도 개성이 강한 인물로 통한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만 찾아 집요하게 파고든다.
 

0.2㎜ 간격으로 절단, 3차원 영상화
만화 기반 해부학 교과서 6월 출판
홈페이지 자료 보려 전 세계서 접속

“의학도들, 남 다 하는 일 좇지 말고
조금 두려워도 내 것 찾는 도전을”

전공 선택부터 그랬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게 좋아서 임상의학 대신 기초의학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의대의 논산훈련소로 불리는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의대생이 맨 처음 배우는 게 해부학이에요.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내용이라 독하다 싶을 정도로 가르칩니다. 학생들에게 두루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점이 해부학의 또 다른 매력이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
 
교육과 함께 열정을 발휘한 분야는 연구다. 특히 2000년부터 시작한 한국인 시신을 활용한 3차원 인체 지도 ‘비저블 코리안’(Visible Korean) 프로젝트는 그의 소명과도 같은 일이다. 관련 연구로 논문(SCIE급)을 60편 가까이 썼고 12편이 표지 논문에 실렸다.
 
비저블 코리안 프로젝트는 뭔가.
“얼린 시신을 절단기로 0.2㎜ 간격으로 잘라 그 단면을 촬영하고 이를 3차원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해부학자와 컴퓨터학자를 중심으로 영상의학, 기계공학, 사진학 등 여러 분야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 영상을 만든다.”
 
이 영상의 장점은 뭔가.
“일반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 사진은 흑백인 데다 화상도가 낮은 편이다. 반면에 시신의 3차원 절단면·구역화 영상은 상당히 정밀해 인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한국·미국·중국 세 나라가 좀 더 정밀한 영상을 만들려고 선의의 경쟁을 한다.”
 
주로 어디에 활용하나.
“대개 교육용으로 쓰인다. 3차원 영상에 각종 해부학적 지식을 추가해 교육 도구로 개발할 수 있다. 시신의 절단면 영상을 CT·MRI와 합칠 수 있는데, 환자 몸에 딱 들어맞는 영상이 만들어져 모의 수술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영상 자료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anatomy.co.kr)에 무료 배포하고 있다.”
 
정민석 교수의 『해랑 선생의 일기』 중 ‘머리를 박박 깎아서 좋은 점’ 발췌.

정민석 교수의 『해랑 선생의 일기』 중 ‘머리를 박박 깎아서 좋은 점’ 발췌.

2000년은 그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선 해다. 바로 만화 그리기. 그는 만화 키드였다. 커서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접었다. 이후 의대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멀어졌다가 2000년 다시 펜을 들었다. “처음엔 해부학 학습만화 위주로 그려 누구나 볼 수 있게 홈페이지에 올렸어요. 그런데 만화의 기본인 재미가 빠져 반응이 시원찮았죠. 그래서 농담과 재미를 가미한 의학 명랑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간혹 의사와 교수 체면을 깎는다고 욕을 먹지만 의사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죠.”
 
그의 만화는 단순한 그림체에 간결하면서도 맛깔난 글솜씨 덕에 입소문을 탔다. 해부학 만화에 글을 보태 책을 내고, 건강상식 만화를 그려 신문에 연재하고, 명랑만화를 올린 개인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그린 학습만화의 교육 효과를 담은 논문은 2017년 국제학술지(해부과학교육) 표지를 장식했다. 지난해부턴 대학의학회 영문학술지에 만화 사설을 싣는다. 각종 의료계 이슈와 전문 의학 지식을 만화로 선보여 큰 호응을 불렀다. 그 덕에 그의 홈페이지는 더 유명해졌다. 만화와 각종 해부학 자료를 보러 날마다 미국·중국·브라질·캐나다·일본·헝가리·호주·영국 등에서 접속자들이 오간다.
 
정 교수가 요즘 가장 공들이는 건 교과서 집필이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만화와 단순 그림 기반의 해부학 교과서다. 오는 6월 세계적인 의학 출판사인 엘스비어에서 신경해부학 교과서가 나온다.
 
교과서 출판을 앞두고 있다.
“지금 영어 교정 등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한국 사람이 의학 분야의 전문 책을 영어로 출판한 적은 있어도 의학 분야의 교과서를 출판한 적은 없는 거로 안다. 큰 출판사에서 펴내는 교과서는 영향력이 커서 세계에서 이름나기 쉽다. 논문이나 전문 책과 달리 교과서는 수많은 학생이 본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다르지 않으면 좋은 교수라 생각 안 해”
 
다른 교과서와 어떤 점이 다른가.
“신경해부학은 공부하기 어려운 분야다. 설명 그림을 단순화하고 만화 컷을 넣어 학생들이 외우기 쉽고 공부에 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여서 출판 계약이 성사된 것 같다.”
 
앞으로 집필 계획은.
“만화를 기반으로 한 책을 계속 쓰고 한글·영어 강의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할 생각이다. 정년이 지나서 직업 작가로 남는 게 인생 목표다.”
 
정 교수는 20년째 해부학자로 세계에서 이름나겠단 다짐을 그만의 방식으로 이뤄가고 있다. 원동력은 “남다른 색깔이 없으면 좋은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이다. 학생들에게도 늘 도전하고 한 우물을 파라고 당부한다.
 
“요즘 의대엔 수재들이 들어옵니다. 사회를 이끌고 의사가 될 사람들이니 남다른 책임감이 필요하죠. 남이 다하는 일만 좇지 말고 조금 두렵더라도 내 것을 찾는 도전과 훈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세계에서 이름난 한국 의학자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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