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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선] 의사와 택배기사가 한국을 살렸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지금 대한민국이 나름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건 ‘사’자 달린 두 직업, 그러니까 의‘사’와 택배기‘사’ 덕분이 아닐까 싶다. 속물적인 계층 피라미드라는 잣대로만 보자면 두 직업은 평소엔 맨 꼭대기와 맨 아래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선 의사와 택배기사가 두 축을 이루며 대다수 국민이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의사는 최전선에서 코로나와 직접 싸우며 국민 생명을 지키고 있고, 택배기사는 후방에서 코로나와 멀어지려고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낮은 코로나 치사율은 의료진 덕
사재기 없는 매대는 택배기사 공
한국 받치는 두 축 덕에 정상국가

의사는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분명 선망의 직업이긴 했지만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산대 의전원 부정 입학 의혹 사례에서 보듯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자식에게 의사 면허를 쥐여주겠다는 부모는 대한민국에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존경하는 직업군에서는 소방관과 환경미화원에도 뒤졌다. 상존하는 감염의 위험은 차치하고 몇 년 전 임세원 교수의 비극적인 죽음이 말해주듯 병원 내 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된 극한 직업이다. 그런데도 박리다매로 굴러가는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를 현실화해달라는 요구를 하면 돈에 눈먼 이기주의자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위기에 진면목이 드러난다더니, 코로나 때문에 의사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확진자 폭증으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하는 위기를 맞았을 때 분연히 일어난 건 평소 돈만 밝힌다고 오해받던 이름 없는 의사들이었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 회장이 지난 2월 25일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 내가 먼저 제일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겠다”는 호소문을 띄우자마자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을 시켜 달라”며 수백 명의 의사가 코로나 전쟁터로 달려갔다.
 
이런 헌신은 비슷한 상황을 맞은 다른 나라 의료진과 비교할 때 더욱 돋보인다. 과거 사스(SARS) 피해가 컸던 탓인지 홍콩 의사들은 국경 폐쇄와 보호장구 확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했고, 이탈리아 의사들은 효율성을 높인다며 노인 환자를 버리고 젊은 환자에 치료를 집중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파업하는 의사는 돌팔매를 맞고, 노인을 포기하겠다는 의사에겐 살인마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한국 의사들은 비단 이런 비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나이 불문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겠다며 오늘도 분투 중이다. 그게 이탈리아와 한국의 코로나 치사율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택배기사도 코로나 국면에선 의사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이 요즘 한국에서 가장 감탄하는 건 아마 어딜 가나 사재기 없이 꽉꽉 채워진 매대일 것이다. 가깝게는 홍콩에서부터 멀리는 유럽·미국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벌어진 사재기가 왜 한국에선 없었을까. 초반 확진자 폭증으로 방역망이 무너져버리다시피 했던 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사재기는커녕 이동 금지 명령 같은 강력한 정부 지침 없이도 어떻게 다들 자발적 격리를 택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여기엔 택배기사의 공이 적지 않다.
 
지금 한국에선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생필품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배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언제든 스마트폰만 열면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에 굳이 사재기하러 마트로 달려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깔아놓은 인프라가 아니라 민간기업 쿠팡이 구축한 전국적 배달망이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 전인 지난 연말 하루 평균 220만~230만 건이던 배송물량은 올 1월 28일 창사 이래 최대치인 330만 건으로 최고치를 찍은 후 지금도 300만건을 유지하고 있다. 주로 대구 경북에서 많이 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기업가치가 높은 아마존조차 의료용품과 응급 물품을 제외하고는 발송을 중단했지만 쿠팡은 정부 요구로 신천지와 관련된 일부 아파트 등에 배송을 중단한 걸 제외하면 추가 고용과 인상된 인건비를 감당하며 지금도 대구를 비롯한 전국 모든 곳에 배송을 이어가고 있다. 쿠팡 뿐 아니라 책부터 음식까지 기업과 소비자를 이어주며 배송을 직접 담당하는 택배기사가 있기에 나라가 굴러간다.
 
사정이 이런데도 굳이 의사와 택배기사 공을 가로채고 싶은 사람들이 최근 눈에 많이 띈다. 대체 그래서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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