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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는 원금 깎고, 예금엔 수수료…우리가 맞이할 제로금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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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UBS는 지난해 11월부터 잔고가 200만 스위스프랑(약 26억원)을 초과하는 개인계좌에 대해 연 0.75%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뉴스분석]

 
#2
덴마크 3위 은행 유스케(Jyske)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이자를 주는 대출 상품을 내놨다. 주택담보대출(10년 만기 고정금리)을 받으면 매년 0.5%씩 원금을 깎아주는 형태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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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을 맡겼는데 보관료를 내고,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를 준다니 상식에 반한다. 마이너스(-) 금리가 자리 잡은 나라에선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스위스·독일·일본 등 전 세계 10여 개국은 현재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다. 16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75%로 인하했다.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1%대에 진입한 지 5년 만이다.  
 
부르기 나름일 뿐 초저금리, 제로금리, 마이너스금리는 맞닿아 있다. 그래서 0.75%의 의미는 작지 않다. 한국이 일본의 길, 유럽의 길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신호음이다. 고성장, 고금리에 익숙했지만 이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할 때가 됐다. 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 1%? 원금 두 배 만들려면 70년  

저금리로 갈수록 자산증식에 걸리는 시간은 가속적으로 느려진다. 예금에 가입해 원금을 두 배로 불리려면 금리가 5%일 땐 14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4%면 18년, 3%면 23년, 2%면 35년이다. 1%라면? 무려 70년이 걸린다. 돈 불릴 방법을 찾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부자는 자산을 현금화하고 버티겠지만 어중간한 중산층이 문제다. 통상 자산소득은 근로소득보다 소비성향이 높다. 씀씀이를 줄이는 것 말고 별도리가 없다. 
대출금리가 낮으니 부채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과 맞물려 돈은 부동산으로 몰린다. 무엇이든 몰리면 가격이 오른다. 경쟁적인 금리 인하로 유럽 주요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1%를 밑돈다. 최근 독일 뮌헨·프랑크푸르트와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많은 대도시는 집값 상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높은 월세를 못 이겨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이 늘면서 갈등도 커졌다. 이렇게 집값에 거품이 끼는 사이 가계부채는 늘어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출발했다.
 
한국은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는 전세제도와 관련이 깊다. 목돈(보증금)을 고금리로 굴리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 시장 붕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어쩔 수 없는 처방”이라면서도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지면 월세와 임대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재산이 집밖에 없는 경우라면 서둘러 월세로 전환할 게 확실하다. 월급처럼 꼬박꼬박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입자는 가뜩이나 부족한 근로소득의 일부를 월세로 쪼개내며 살아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부의 격차, 생활 수준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 동작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동작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뉴스1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벌이는 줄고, 씀씀이는 커진다. 금리가 낮아지면→가계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줄고→소비와 투자가 늘고→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가계소득이 증가하면서→나라 경제가 성장하고→다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다. 이게 잘 통하지 않는다. 이종우 이코노스미트는 “고금리 환경에서 금리가 오르락내리락할 땐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너무 낮으면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리를 낮췄는데 갈 곳을 찾지 못한 부동 자금(머니마켓펀드)만 늘고, 화폐 유통속도는 떨어진다. 소비가 늘지 않으니 기업은 일감을 찾아 해외로 떠난다. 일자리가 준다. 성장 정체가 불가피하다. 물가가 제자리걸음이면 금리를 올릴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자꾸 위기는 찾아온다. 또 금리를 내려 버티는 일이 반복된다. ‘R(경기침체)의 공포’ 속에 마땅한 반전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고정소득 중요성 커진 시대 …일자리 안전망 확보가 핵심 

성장을 덜 하면 세수도 줄어든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출을 늘려야 한다. 이미 한국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를 마주했다. 저출산·고령화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양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할 게 확실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은 11.1%다.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아도 40년 후엔 이 비율이 27.8%로 뛴다. 사회안전망을 유지하는 비용 또한 늘 수밖에 없다.
 
[그래픽] 머니마켓펀드 설정액 추이. 연합뉴스

[그래픽] 머니마켓펀드 설정액 추이. 연합뉴스

이 모든 변화는 상상이 아니다. 옆 나라 일본이 20년 넘게 겪은 일이다. 그래도 일본은 버텼다. 한국도 그러려면 장기간 버틸 경제 체력을 비축하는 게 관건이다. 새 성장 동력을 찾고, 재정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건 필수다. 초저금리 환경에선 고정소득, 즉 일자리의 중요성이 커진다. 저금리, 저성장이 고착화하는데 고용마저 흔들리면 긴 불황의 늪으로 빠진다. 유럽이 그랬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자산 증식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목돈을 향하고, 투기 수요가 급증한다. 노동의 가치가 위협받는 시대다. 우선 구조조정 관련 분쟁을 최소화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적재적소에 인력을 공급할 미래지향적인 직업훈련 틀을 마련하는 것도 급하다. 근로자의 사회안전망 역시 촘촘하게 다듬어야 한다. 당장 일자리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정부가 좀 더 창의적으로 일해야 한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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