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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쓸만한 아파트도 재건축, 그 이유 중 하나는 이것

기자
손웅익 사진 손웅익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 이야기(34)

 
우리는 전통적으로 공유문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철저히 개인문화인 서구화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우리의 의식주에 여러 가지 문화충돌이 발생했다. 형식과 격식이 정해져 있는 서양식탁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식사 자체가 불편하다. 부담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크기가 다른 포크, 나이프, 스푼이 크기별로 죽 놓여있으면 더 신경 쓰인다. 그와 반대로 서양식 식사격식을 잘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격식을 이탈한 행동을 보면 자꾸 신경 쓰인다. 함께하는 식사 자리라 하더라도 지극히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먹는다. 서양식과 달리 우리는 함께 또는 나누어 먹기 좋은 문화다. 비빔밥은 식문화에 있어 공유의 백미를 보여준다.
 
언젠부턴가 서구식 가구가 우리의 주거공간을 점유하면서 자유공간 개념은 구속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사진 Pxhere]

언젠부턴가 서구식 가구가 우리의 주거공간을 점유하면서 자유공간 개념은 구속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사진 Pxhere]

 
우리의 주거문화도 이와 비슷하다. 서구식 구조로 바뀐 주택은 설계 단계에서 가구배치가 중요하다. 가구배치가 방의 크기와 구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구배치는 출입문이나 창문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가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효율적인 가구배치에 익숙하지 않으면 주택설계를 하기 어렵다. 간혹 가구배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설계로 집을 짓고 나서 가구를 방에 들여놓기 힘들어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정해진 용도의 가구가 제 자리에 늘 자리하고 있는 서구식 공간과 달리 우리의 주택 공간은 비어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서류가방과 보자기의 쓰임새와 비슷하다. 서류 가방은 정해진 용량만큼 서적이나 서류뭉치 등을 넣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보자기의 융통성과 비교가 안 된다. 서류가방에는 수박을 넣을 수 없으며 그것을 보자기처럼 머리에 쓸 수도 없다. 서류가방과 같은 서양식 주택은 그래서 공간을 한정하고 그로 인해 공간에 사는 사람의 행동을 통제한다. 우리의 비어 있는 공간은 침실이 되기도 하고 거실이나 식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서구식 가구가 우리의 주거공간을 점유하면서 자유공간 개념은 구속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우리의 주거공간이 한정공간, 구속공간으로 일거에 변해버린 근본적인 원인 중에 아파트의 벽식 구조 방식을 들 수 있다. 지금 지어진 대부분 아파트, 다세대, 다가구주택은 경제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벽식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있어 기둥과 보로 구성된 소위 철근콘크리트 라멘조는 기둥만 남겨놓고 벽을 없애거나 벽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벽체 자체가 구조역할을 하는 벽식 구조는 벽에 개구부를 만들거나 벽의 위치를 변경할 수 없다. 즉, 벽식 구조로 지어진 기존 대부분의 아파트, 다가구, 다세대주택은 라이프사이클의 변화에 전혀 대응이 안 되는 한정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형 아파트가 인기가 많았지만 고령화와 1인가구의 증가로 요즘은 소형아파트 수요가 많다. 대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에 이제 나이가 들고 자녀들은 독립하여 남는 공간이 있는 경우 그 공간을 활용하는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다. 즉, 대형 아파트를 작은 규모로 쪼개서 세를 놓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고 표준 디자인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기존 아파트는 욕실이나 주방을 두 세대로 분리하기가 불가능한 구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내력벽을 건드릴 수 없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수십 년을 더 살아도 구조적으로 지장이 없는 집인데 지은 지 30년만 되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경제적인 수혜자들의 무리한 요구도 있겠지만 구조변경이 불가능한 벽식 구조도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
 
집의 수명이 연장되려면 라이프사이클의 변화에 주거공간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 구조가 장 수명 주택의 핵심이다. [사진 Flickr]

집의 수명이 연장되려면 라이프사이클의 변화에 주거공간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 구조가 장 수명 주택의 핵심이다. [사진 Flickr]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장 수명 주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장 수명 주택은 구조적 안전성, 설비배관, 전기배선, 내구적인 마감재료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기존 아파트와 같은 벽식 구조를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집의 수명이 연장되려면 라이프사이클의 변화에 주거공간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 구조가 장 수명 주택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전통한옥의 가구식 구조는 모든 공간의 쓰임새도 다양하고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자유로이 넓히거나 줄일 수 있는 장 수명 주택이다. 그동안 경제성을 최고 우위에 두고 마구잡이식으로 지어진 벽식 구조 아파트로 인해 우리의 주거문화는 한정되고 변질되었다. 이제 우리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다. 장 수명 주택이 필수적인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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