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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걸려있어 방법 없었다" 연동형 비례제 불순한 출발

단식, 점거, 밤샘농성, 그리고 고소·고발.
 
지난 1년 여의도 국회의 최대 이슈는 단연 선거제 개편이었다. 게임의 룰을 만드는 선거제를 두고 여야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막장 다툼을 일삼았다. 결국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을 뺀 ‘4+1’ 연합체의 주도 속에 선거제 개편안은 통과했다. 그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득표율과 의석수를 가급적 일치시키면서 다당제의 첫발을 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의 위성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비례연합정당 창당에 나서면서 사실상 연동형 비례제의 본래 의도는 산산조각이 났다는 평가다. 오히려 양당제의 구도로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연동형 비례제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시작부터 무너진 대전제=“전문가 주장도 들어야 하지만, 국민의 요구가 훨씬 더 강하고 소중합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원정수가)300명을 절대로 넘지 않는 선에서 당론을 갖고 있다”고 못을 박으면서다.
 
당초 연동형 비례제의 전제조건은 의원정수의 확대였다. 심지어 연동형 비례제를 택하고 있는 독일·뉴질랜드 등에선 초과의석을 인정하고 있다. 2018년 11월 국회 정치개혁특위 공청회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전 국회와 비교할 때 (의원정수가) 대폭 증가돼야 한다”고 했고,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360명으로 증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같은 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합의문에는 ‘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라는 문구가 포함됐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은 국민 여론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한국당은 아예 의원정수를 10% 줄이는 개정안을 냈다.
 
결국 의원정수 확대는커녕, 현역 의원들의 반대로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늘리지 못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는 당초 안에서 한참 후퇴했다. 여기에 ‘연동형 캡’(47석 중 30석만 연동형)으로 더 옹색해졌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연동형 비례제는 비례대표 의석의 대폭적인 상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효과가 없다. 애초에 디자인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27일 김종민 국회 정치개혁특위 1소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소위 회의에서 김재원·정유섭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27일 김종민 국회 정치개혁특위 1소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소위 회의에서 김재원·정유섭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②예견됐던 위성정당 출현=“예를 들어서 한국당이 자기 우당(友黨)을 만들어요. 비례한국당을 만듭니다.”
 
정유섭 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정개특위 1소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선거법 법안심사자료에는 ‘정당 간 담합과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에 의한 불비례성이 증가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음’이란 대목이 담겼다. 정 의원은 이 점을 들어 위성정당 창당 가능성을 물고 늘어졌지만,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이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담합을 원천적으로 못 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자고 하면 된다”고 했을 뿐 심도 있는 대안 논의는 없었다.
 
비슷한 시기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정당학회에서 ‘50%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작동원리와 문제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알바니아·레소토·베네수엘라 등에서 연동형 비례제 도입 후 위성정당이 출현한 사례가 소개됐다. 연동형 비례제에 반대한 한국당은 논문 내용 등을 인용하며 ‘비례한국당’ 창당을 공언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치고 의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치고 의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③위성정당은 막지 못해=“(위성정당을)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최종 결론이 났어요.”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18일 당 의원총회에서 한 말이다. “한국당이 협상에 참여하지 않는 건, 이미 비례한국당을 하겠다고 내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중앙선관위와 2주 전부터 논의했지만, 정당 설립의 자유(헌법 8조)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했다”면서다.
 
선관위가 지난달 13일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등록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법적 검토에 따른 결과였다. 당초 선관위는 지난 1월 13일 ‘비례○○당’ 명칭 사용을 불허했는데, 그 근거로 유사 명칭의 사용을 금지한 정당법 41조를 들었다. 그러나 ‘비례자유한국당’이란 이름이 ‘미래한국당’으로 바뀌자 선관위는 “요건을 충족했다”며 정당 등록 신청을 수리했다. 선거법 88조가 금지하는 다른 정당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왼쪽)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례연합정당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 [뉴스1]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왼쪽)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례연합정당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 [뉴스1]

④민주당의 위성정당 가세=“저희는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기 위해서 추진을 하고 있고요.”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비례연합정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지난 12~13일 전당원 투표 결과(찬성 74.1%, 반대 25.9%)에 따른 것이다. 민주당은 자체 후보를 후순위에 배치해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겠다고 하지만, 민생당·정의당 등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민주당만의 위성정당이 될 공산이 크다.
 
100% 연동형→50% 준(準)연동형→연동형 캡 30석 순으로 연동률을 줄이는 데에는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탓이라는 평가다. 오히려 민주당 안에서는 선거법을 지렛대 삼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세였다. 지난달 26일 ‘마포 5인 회동’에서도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반박이 나왔다.
 
하준호·석경민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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