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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각자도생의 최종병기

이훈범 중앙일보 컬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컬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그야말로 ‘아포리아(απορία)’가 이런 건가 보다. ‘막다른 골목’ 또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난관’을 뜻한다는 그리스어 말이다. 가뜩이나 마스크 너머 숨이 가쁜데, 이 땅의 위정자라는 인간들이 제 국민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퍼펙트스톰 앞에 내몰린 국민
대통령은 희망 바이러스 말뿐
생존 바이러스 찾는 건 국민 몫
심판 매워야 다음 도생이 쉽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바이러스는 감염자들만 위협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구한 마스크 하나에 위태로운 안전을 담보하고 있는 국민들도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위축되고, 이로 인해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 항공과 정유 등 주요 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실물경제가 빈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이것이 곧 금융 부실로 이어져 사상 초유의 금융·실물 복합 위기가 우려된다는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퍼펙트 스톰’이란 무시무시한 용어조차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에는 발린 말을 달고서, 눈은 정권 유지라는 잿밥에만 향해 있다. 그러니 말은 비수가 되어 국민 가슴에 박히고, 길 잃은 발길이 국민 목을 지르밟는 것이다.
 
바이러스 확산의 주요 고비 때마다 예언이라도 하듯 짜파구리 파안대소나 “곧 종식” “세계가 평가” 같은 봉창 두드리는 발언을 하는 신공을 보여준 대통령은,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날 “희망 바이러스”로 화답해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언제나처럼 그럴듯한 말만 있을 뿐 ‘어떻게’가 없는 허무 개그로 국민 무력감의 면역력을 강화시켰다. 그런 대통령 밑에 “바이러스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 “의료진 마스크 부족은 넉넉히 쌓아두고 싶은 그들의 마음 때문”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의 보건장관이 있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옳다거니 잘됐다, 멀리 있는 종교집단에 책임을 돌리려다가 바로 눈앞 콜센터를 보지 못한 서울 경기 지자체장들도 있으니 말 다했다.
 
선데이 칼럼 3/14

선데이 칼럼 3/14

이런 와중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뭔지도 모르고 상대 선수 빼고 선거 룰을 바꿨다가 뒤늦게 “의병” 운운하며 선거를 코미디로 만드는 집권당의 후안무치, 비례대표의 중요성을 그렇게 역설하더니 정의와 공정이 뭔지 헷갈리는 인물을 비례대표 1번으로 세우는 정의당의 위선을 말하는 건 공연히 입만 아프다. 속만 더 터질 뿐이다.
 
사실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지금이 최악의 상황도 아니다. 더 큰 위기도 많았다. 위기는 늘 위정자들이 만들었고, 위기를 극복하는 건 늘 백성들 몫이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위기극복 유전자로 말이다. 이름하여 ‘각자도생 DNA’다.
 
각자도생이라는 말 자체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순수 국내산이다. 총 8억자에 달한다는 지식의 만리장성,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없는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9번 보인다. 한자도 상황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각자도생(各自逃生)’ 두 가지가 혼용된다. ‘각자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와 ‘각자 달아나 스스로 목숨을 구한다’는, 다르면서도 같은 뜻이다. 대부분 선조와 인조, 즉 왜란과 호란을 당했을 때와 어지러웠던 조선 말에 쓰였다. 결국 우리 민족의 위기 극복 노하우다.
 
“경기 동쪽과 강원 북쪽에 통솔할 장수가 없어 그곳 백성들이 각기 살길을 찾아 골짜기에 모여있는데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대책이 없어 매우 미안합니다.” (선조 25년 11월 17일)
 
“종실(宗室)은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할 사람들인데 난리를 당하자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 (인조 5년 10월 4일)
 
“(극심한 가뭄으로) 금년 여름에는 논과 밭 모두 이앙하지 못했으니 (...) 처음에는 나물을 베어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버텼습니다만 지금은 고향을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순조 9년 12월 4일)
 
지난해 직장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가 각자도생이었던 것도 뜬금없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희망 바이러스를 찾는 것은 국민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것의 진짜 이름은 희망 아닌 ‘생존 바이러스’지만 말이다.
 
역사가, 그리고 현실이 말해주지만 우리 국민의 각자도생은 나 혼자만 살면 된다는 게 아니다. 초근목피조차 나눠 먹었던 게 난리 통의 각자도생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태달라며 보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성금 행렬이 오늘의 각자도생이다. 정부와 위정자들이 제시하지 못하는 살길을국민끼리찾아 나서는 게 각자도생이란 얘기다.
 
왜란 2번, 호란 2번을 겪고도 무능한 왕조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이 착한 백성들도 이 시대에는 새로운 각자도생의 무기를 가졌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무기를 현명하게 사용해왔다. 투표권이다.
 
한 달 후 우리 국민은 또 한 번 그 최종병기를 쓸 것이다. 정부와 집권당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만큼, 그것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제 욕심 좇느라 헛발질만 해댄 만큼 심판을 할 것이다. 그 심판이 참으로 매서웠으면 한다. 아니 매서워야 한다. 그래야 다음 (역시 뻔히 예정된) 각자도생의 길이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까 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컬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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