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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광장의 시오니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뒤죽박죽·엉망진창·좌충우돌. 도대체 한국의 도시 경관은 왜 이 모양이냐. 힐난의 탄착점은 건축가들이다. 무능력·무신경·무책임. 그런데 거기 건축과 무관하되 신기한 풍경이 하나 추가되었다. 무대는 서울의 광장이다. 구국시위의 군가 속에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한 것이다. 성조기는 동의는 못해도 이해는 하겠다. 미국은 20세기 한국의 메시아 국가였으니. 그런데 이건 어떤 메시아.
 

건축은 사회의 물리적 반영
야심따라 건설, 파괴된 건물들
광장을 채운 열기와 절규
신기한 한국사회의 도시풍경

다비드의 별은 시오니즘의 상징이었다. 시오니즘을 거슬러 올라가면 처연한 노래를 하나 만난다.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왕이 예루살렘을 파괴하며 잡아온 유대인 포로들의 노래다. “바빌론의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페르시아제국을 세우고 이 지역을 접수한 사람이 키루스대왕이다. 키루스는 바빌론에 끌려온 이국 노예들을 모두 해방시켜 돌려보냈다. 일제 강점기 두 배 정도 시간의 유배였다. 키루스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로 칭송되었고 한글 성서에는 ‘바사의 고레스’로 표기되었다.
 
페르시아를 간단히 살펴볼 차례다. 자신들이 설정한 국제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손봐주는 게 제국의 원칙이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은 에게해 너머에서 새 질서를 이해 못하는 그리스인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스로서는 존망사활의 절박한 전투들이었다. 결국 패한 것은 페르시아 원정군이었고 역사는 이 전투를 올림픽 마라톤으로 아직 기억하고 있다. 후대의 크세르크세스왕은 직접 그리스로 쳐들어가 그들의 성지 아크로폴리스를 파괴함으로 제국의 위엄을 과시한다. 그러나 살라미스해전을 분기점으로 원정은 다시 실패한다.
 
그리스의 페리클레스는 아크로폴리스 재건이라는 건설 사업으로 승전을 기념한다. 지금 유럽인들이 건축사의 최고 성취로 치는 파르테논신전이 탄생했다. 페르시아로서는 한낱 지방 전투로 국세가 기울면 제국의 수치였겠다. 다리우스는 전투와 무관하게 제국 영화 과시의 화려한 궁전 건립에 착수했고 크세르크세스가 이를 완성했으니 이게 페르세폴리스다. 아크로폴리스는 이에 비하면 소박했다. 그러나 역사는 여전히 꿈틀거리는지라 후에 거꾸로 에게해를 건너온 그리스 왕이 있었다. 관광이 아니라 정복전쟁 목적이었다. 알렉산더가 페르세폴리스를 지나칠 리 없었고 과연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 지금의 페르세폴리스는 돌기둥 몇 개 남은 폐허다.
 
바빌론유수 후 약 삼백 년간 문서에서 사라졌던 유대인들은 동방의 페르시아인 현자 세 사람이 어떤 신생아를 알현하는 순간 역사에 다시 등장한다. 한글 성서는 이들을 ‘동방박사’로 번역했다. 성년이 된 그 아이를 메시아로 추앙하는 이들도 생겼으나 대개의 유대인들은 동의하기 어려웠겠다. 키루스와 이력서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예수는 끔찍한 처형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 당했다, 유대인들에 의해.
 
그러나 그의 죽음은 결국 세계를 얻었다. 그 배경에 사도 바울의 긴 편지들이 있다. 막상 예수를 만난 적도 없는 그는 시오니즘을 버렸다. 이방인도 예수를 부활한 메시아로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믿음 덕에 예수는 메시아로 부활했다. 바울의 전도여행지에 아테네가 있었다. 그의 목격담을 보면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지금의 한국인들만큼이나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바울은 여기는 왜 이리 잡신들이 많냐고 개탄한다. 그는 이름 모를 신을 모시는 높은 단에 올라갔다는데 그건 분명 아크로폴리스였겠다. 아테네에서 높은 단은 거기 밖에 없으므로. 파르테논 신전은 17세기에 침략한 베니스군의 포격으로 파괴되었다. 돌 한 조각 무게도 안 나가는 범부의 문장은 세상을 쌓았으되 수만 명이 땀으로 쌓은 야심의 건물들은 돌무지로 무너져 내렸다.
 
한국의 읍 규모도 안 되는 작은 마을, 이란 남서부 파사르가대 외곽 광야에 키루스의 소박한 돌무덤이 덩그라니 서 있다. 기독교 메시아는 생사부활로 이천 년째 논쟁 대상이다. 그러나 이 페르시아인 메시아는 그저 인간이었다고 이 무덤의 침묵은 증언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찬미가 민망하게 막상 키루스 본인은 조로아스터 교도였다. 땅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믿음대로 그의 무덤은 석단 위에 조성되었다. 우리 표현으로 풍장이었다. 키루스의 묘비명을 플루타르크는 이렇게 전한다. ‘그대가 누구고 어디서 왔더라도, 나는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다만 내 뼈에 덮인 흙먼지가 과분하다고는 말아주게나.’
 
키루스의 사후 2500년 정도 지났다. 그의 뼈에 가라앉았던 흙먼지는 바람에 다시 비산했겠다. 고비 사막을 거쳐 황사의 오명을 쓴 채 날아와 대륙 동쪽 끝에 떨어진 먼지도 있겠다. 말세위협·영생보장·불신지옥을 내세운 선지자·예언자·메시아의 재림·부활·환생 현장이다. 믿거나 말거나. 날아온 먼지는 광장의 열기와 절규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인지 유대인인지 메시아를 추종하는 깃발이 광장에서 사라진 건 신종 바이러스 때문인데, 그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된 건 엉뚱하게 토종 신종교주이고, 그래서 광장의 고요가 평화인지 전투인지도 도대체 모호하니…. 이리 심심할 틈도 없고 두서도 없는 사회의 도시 풍경이 가지런하면 그게 오히려 신기하겠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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