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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전화해도 안된다···심상찮은 빈살만·푸틴 ‘유가 혈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스트롱맨(Strongman)’이 촉발한 유가 전쟁이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확전이냐, 아니면 휴전이냐.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공포 일색이었던 세계 원유 거래 시장에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9일 배럴당 31.13달러까지 추락했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다음 날 34.36달러로 10.4% 반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한 통이 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한몫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핵심 관계자 2명의 전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가 전쟁을 논의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유가 전쟁의 발단은 지난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OPEC플러스)’ 회의다. OPEC+는 중동 지역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다른 주요 산유국이 함께 참여하는 연합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서 일일 60만~10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할 것을 주장했다. 대부분 OPEC+ 회원국이 여기에 찬성표를 던졌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번지면서 전 세계 석유 수요가 줄 테니 앞서 생산량을 줄이자는 안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가가 내리막을 타고 있는 만큼 가격 하락 속도를 줄여보겠다는 주요 산유국들의 계산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이런 감산 방안에 러시아가 반기를 들었다. 석유시장에 코로나19가 끼칠 영향을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논리였다. 세계 석유 패권을 좌지우지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견제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반대로 이날 감산 협상은 결렬됐다.
 
협상이 결렬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로 러시아를 향한 응징에 나섰다. 감산 주장을 갑자기 뒤바꿨다. 8일 일평균 970만 배럴 수준이던 원유 생산량을 1000만 배럴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석유 생산량이 급증하면 유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9일 국제 유가가 30% 이상 폭락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검은 월요일’로 얼룩졌다.
 
그러다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로 중재에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국제 유가 배럴당 30달러 선 붕괴란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던 정유업계와 투자자들은 한숨 돌렸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긴커녕 판돈을 키웠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다음 달부터 하루 평균 1230만 배럴을 생산해 공급하겠다고 발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원유 생산시설.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원유 생산시설. 연합뉴스

 
러시아도 맞불을 놨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이 일평균 원유 생산량을 1130만 배럴에서 1180만 배럴로 50만 배럴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패를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시 받았다. 아람코는 1200만 배럴대인 일일 원유 생산량을 1300만 배럴까지 올려놓겠다고 11일 성명을 냈다.  

석유시장은 다시 혼돈으로 돌아갔다. 국제 유가는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전해졌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3000억 달러(약 360조원) 규모 급여세 감면안에 대한 의구심까지 겹치며 시장 충격을 더 키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패권은 빈살만 왕세자가 쥐고 있다. 2017년 왕세자로 임명된 그는 경쟁자였던 다른 왕자 11명을 포함해 500여 명의 왕실 관계자를 호텔에 구금하는 ‘철의 통치’를 단행한다. 2018년엔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카슈끄지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의 철권 통치는 석유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가 또 다른 철권 통치의 상징, 푸틴 대통령이란 점이다. 지난 10일 푸틴 대통령은 2024년 종료되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개헌안을 지지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초장기 집권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푸틴은 이번 ‘유가 혈투(血鬪)’에서 물러서기 어려운 입장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 1위의 산유국은 미국이다. 원유 생산량에서 세계 시장의 16.2%를 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3.0%, 러시아는 12.1%다. 1등 미국과 격차를 두고 2등 사우디아라비아와 3등 러시아가 간발의 차이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원유 증산을 통해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모두 피해를 본다. 그런데도 두 국가가 ‘치킨 게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가 급락을 통해 경쟁국의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이를 틈 타 석유 패권을 차지하려는 목적이다.
  
이미 2014~2016년 미국이 썼던 방법이다. 셰일가스 증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내려 이란 등 경쟁 산유국 경제를 수렁에 빠트렸다. 이를 통해 석유 패권을 공고히 했다. 
 
다시 터진 유가 전쟁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아직 내놓고 있진 않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유가 하락은)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빈살만 왕세자와의 통화를 통해 중재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계산은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모두 중국처럼 맘껏 때려도 되는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빈살만 왕세자는 동지이자 적”이라고 짚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량의 무기 구매로 미국에겐 ‘현금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란과 미국의 대립 속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게 중동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하지만 뉴스위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이 쥐고 있는 석유 패권을 위협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크게 다를 게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간단히 말해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선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 ‘스트롱맨’의 예측 불가 행보에 세계 경제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얘기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 속에 유가 시장은 물론 전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안 그래도 어려운 세계 경제가 유가 전쟁이란 변수까지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도 악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수익성 악화로 셰일 석유 업체의 연쇄 도산 등 미국 경제의 축인 석유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 유가 전쟁을 두고 “모두가 패자인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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