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권석천의 시시각각] 마스크로 사회주의를 한다고?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난파선의 고양이’. 미국 언론인들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언론진흥재단)에 나오는 이야기다. 1910년대 한 뉴욕 신문의 옴부즈맨이 선박 사고 기사들을 읽다가 공통점을 발견한다. 난파선이 기사화될 때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는 스토리가 들어간 것이다. 담당 기자는 이렇게 경위 설명을 했다.
 

정부 대응 비판받아야 하지만
비난은 ‘정책 실패’ 증발시킬 뿐
사실과 의견의 분리 고민해야

“난파선 기사에 고양이 얘기가 한 번 등장한 뒤로 기사에서 고양이가 빠지면 에디터들에게서 심한 질책을 들었다. 이후 배 사고가 나기만 하면 우리는 항상 고양이를 집어넣는다.”
 
난파선 고양이 역할을 지난해 여름 한·일 관계 악화 땐 ‘유니클로’가, 8월부터는 ‘조국’이 해 왔다. 기사에 이 키워드들만 들어가면 PV(조회 수)가 치솟았다. 최근에는 ‘코로나+문재인’이 고양이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그만큼 가독성 높은 기삿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감염병이 확산될 때 정부 대응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정부의 대응 잘못으로 문제가 커졌다면 그 일거수일투족은 검증 대상이 돼야 한다. 문제는 일련의 파생상품이다. 그중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있다. 문 대통령 취임사에 있던 이 구절은 코로나19 대응을 다룬 글들에 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솔직히 이젠 좀 지겹다.
 
‘사회주의’는 그나마 따끈따끈한 키워드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과 우체국에 길게 줄을 서자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급받는 줄 알았다”는 시민 멘트가 기사 제목에 올랐다. 이번 주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면서 ‘사회주의식 땜질 처방’ ‘문재인 사회주의’ 같은 표현들이 제목에 뜨기 시작했다.
 
마스크 배급제로 사회주의 실험을 한다는 뜻일까. 매점매석 등 시장의 실패에 정부가 개입한 것 아닌가. 앞서 배급제를 실시한 대만을 모범 사례로 꼽는 보도는 또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한 사례일 따름이다. 세상엔 사실 보도와 가짜뉴스,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고양이 기사’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비판받아야 한다. 정부와 보건 당국은 사태 초기 마스크 쓰기를 강조했다가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말을 바꿨다. “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통령이 “머지않아 조기 종식”을 말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장관과 정치인들은 엉뚱한 발언으로 시민들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은 사실과 논리의 힘으로 변화를 촉구한다. 비난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이어 붙여 혐오감을 덧칠할 뿐이다. 후련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소모적 논란의 먼지 속에 정책 실패는 증발해 버린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 보도와 논평의 구분은 한국 언론의 오랜 숙제였다. 그간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금은 사실과 의견을 먹기 좋게 비벼 만든 스트레이트가 PV를 올리는 ‘효자 상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데스크의 지적을 받을 기사들이다. 팩트가 있을 자리엔 제목으로 쓰일 멘트가 있다. 그 결과 편향된 사실 보도를 하고, 그 보도를 바탕으로 다시 편향된 논평을 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뉴스가 진화하는 거라고?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을 압도하는 이 현상을 ‘긍정의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저널리즘의 특징은 회의적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수용자의 선입관을 그대로 긍정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 지지 세력이든, 반대 세력이든 그들의 반감(反感)을 조장하고 퍼 나르는 건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권력 비판은 언론의 임무지만 언론 스스로 권력이 되려는 것이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가짜뉴스에 맞서 사실 보도를 지키겠다면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자기편이 아닌 목소리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보도할지는 모두의 고민이다. 그렇다 해도 내용 없이 표현만 갖고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