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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장부,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장부 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임시정부를 살린 윤봉길 의거
부와 가족·생명을 바친 최재형
오늘날엔 역병과 싸우는 의병들

‘장부,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말입니다.
 
1930년, 스물세 살의 청년 윤봉길은 이 글귀를 남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열여덟 살 때 시집 세 권을 발간했습니다. 좋은 시절에 살았더라면 큰 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1931년, 중국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국무령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1932년 4월 29일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전승 기념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백범일지』는 거사일 아침의 정경을 이렇게 전합니다.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 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주며 ‘이 시계는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에 기념으로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 군에게 주었다. 윤 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준다. ‘자동찻값 하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멘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당일 11시 50분,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윤봉길은 물통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으로 던져 상해 파견군 총사령관과 상해 일본 거류민단장을 즉사시키고, 총영사와 제3함대 사령관, 제9사단장과 주 중국 공사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윤 의사의 의거로 빈사 상태의 임시정부는 장제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태어난 최재형의 아버지는 노비였으며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로 갔으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포시예트 항구에 쓰러져 있다가 러시아 선장에게 구출됩니다. 선장 부부에게 교육을 받고, 세계를 돌며 무역을 배웠습니다. 군수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는 조선인을 고용하고 한인 마을에 무려 32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연해주 한인들은 그를 만나면 늘 따뜻하였다 하여 벽난로 ‘페치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유인석 의병을 성능이 뛰어난 소총으로 무장시켰고, 안중근을 만나 손가락을 잘라 맹세하는 단지동맹을 맺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고 하자 안중근에게 최신형 권총을 사주고 자신의 집에서 사격 연습을 시켰습니다. 거사 후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받도록 계획하고, 러시아인 변호사도 준비했으나 안 의사가 일본 법정의 불법 재판 끝에 순국하자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처자들을 보호하였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고 대한국민회의 외교부장과 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선임됐으나 1920년 일본군에 의해 총살됐습니다.
 
영화 ‘항거’를 보다가 눈시울을 적신 장면이 있습니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해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힌 유관순은 3·1 운동 1주년 옥중 만세를 일으킵니다. 그 대가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일제가 유화책으로 특사를 할 때도 나가지 못합니다. 오빠 유우석과 기생 출신 김향화가 면회를 오자 자신을 부축하던 간수의 손을 뿌리치고 웃는 얼굴로 “언니, 많이 예뻐졌네. 역시 밖이 좋은가 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였습니다. 그 며칠 뒤 유 열사는 순국합니다.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윤봉길·최재형·안중근·유관순, 이들은 어찌 그리 한결같이 풍부한 인간성과 높은 정신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한국인이라면 벅찬 감동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3월을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내습으로 기막힌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온 국민을 방역 전문가로 만든 정부. 방역의 가장 기본인 발원지 입국 봉쇄를 머뭇거리다 이제는 애꿎은 국민들이 매일 죽어가는 현실. 마스크 대란이라는 후진성. 해외여행을 나가면 한국 여권이 인기이니 분실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말을 녹음처럼 들었는데, 이제는 세계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의 입국을 기피하는 악몽. 병도 병이지만 집에 갇힌 채 무너져내린 국민들의 자존심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전 정권의 무능에 절망했던 국민들은 그때나 다를 것 없는 현 정권의 위선적 민낯을 목도하자 망연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위정자들 믿고 살았습니까? 나라를 지켜온 것은 민초요, 의병들이었습니다. 오늘도 대구로 달려가는, 도처에서 역병과 싸우는 흰 가운과 방호복의 의료진. 그들이 오늘의 윤봉길이요, 최재형이요, 안중근이요, 유관순이요, 의병들입니다. 조국(祖國)을 갖는다는 것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야 할 가치 있는 일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3월입니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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