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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읍·면·동까지 쪼갠 '걸레맨더링’…“고양이에게서 생선 뺏는 게 답”

화성 선거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화성 선거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읍·면·동을 분할해 선거구를 만드는 것은 게리맨더링 우려가 있어 불가능하다.”

2주 전(지난달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가 내린 유권해석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끝내 한 개 읍을 ‘리’ 단위로 쪼개 4·15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7일 새벽 본회의를 통과한 획정안에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을 분할해 각각 화성갑·화성병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있다”는 특례조항을 삽입하면서다. 읍 분할은 4년마다 진풍경을 반복한 획정사(劃定史)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선관위 제동마저 무력화한 20대 국회에 “나쁜 선례”(권칠승 민주당 의원), “새로운 편법”(황정근 변호사) 등 혹평이 쏟아진다. 아예 “걸레맨더링”(통합당 김진태 의원)이란 말도 등장했다. 김 의원 지역구 춘천은 기준 인구수(28만574명)가 여야 합의 상한(27만8000명) 이상이다. 하지만 자체 분구가 무산되면서 6개 읍·면·동(신북읍, 동면, 서면, 사북면, 북산면, 신사우동)을 떼어 인근 지역(철원·화천·양구)에 붙여주게 됐다. 춘천 시민들은 “도시 일부가 분리, 적출됐다”고 분노한다.
 
춘천-철원-화천-양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춘천-철원-화천-양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게리맨더링

게리맨더링

 
전남 순천(28만150명)도 마찬가지다. 순천 1개면(해룡면)이 광양·곡성·구례에 붙어 ‘순천-광양-곡성-구례을’로 묶였다. 해룡면 주민들은 7일 “순천에서 광양 국회의원을 뽑게 됐다”, “우리 표는 전부 사표가 될 것”이라고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반발했다. 반대로 순천 시내 나머지 읍·면·동(23개)으로만 구성된 ‘순천-광양-곡성-구례 갑’ 유권자는 100% 순천시민이다. “선거구명에 왜 광양·곡성·구례가 들어갔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이한 획정안을 그려낸 의원들은 “변동 최소화를 지켰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변동 최소화’ 원칙 역시 정치권 당리당략에 따라 합의한 기준이란 걸 잊은 모습이다. 이달 초 원내교섭단체(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민주통합의원모임) 간 획정안 협상에 참여한 한 의원은 “전국 선거구 수(253곳)가 고정돼 있는데, (특정 지역에서) 하나를 늘리면 (다른 지역에서) 하나를 줄여야 한다. 누가 줄이려고 하겠나”고 했다. 여야 모두 부담스러운 광역지역 선거구 조정이라는  ‘폭탄'을 피하다 보니 읍·면·동 쪼개기라는 편법·꼼수가 동원된 것이다. 
 
4년 새 전국 인구 지형은 변했다. 시·도별(광역지역) 지역구 수를 ‘현행 유지’하겠다는 게 애당초 틀린 전제다. 잘못된 틀 안에서 조정하다 보니 협상이 공전을 거듭했다. 보다 못한 중앙선관위가 총선을 43일 앞둔 지난 3일 자체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관행적으로 국회가 만들어 온 획정 기준(시·도별 의원정수, 인구 상·하한)마저 선관위가 먼저 정한 건데, 이 역시 사상 최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이인영 민주당, 유성엽 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오른쪽부터)가 4일 오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선거구획정안관련 3당 원내대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00304

심재철 미래통합당, 이인영 민주당, 유성엽 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오른쪽부터)가 4일 오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선거구획정안관련 3당 원내대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00304

 
선관위 자체안이 마음에 들지 않자 그제야 여야는 허겁지겁 새 기준에 합의했다. 4일 밤 원내대표 3인 등 협상 실무진이 모여 김세환 획정위원장에게 시·도별 의원정수, 인구 상·하한과 함께 특례조항을 전달했다. 여야 첫 논의(1월 10일) 이후 50일 넘게 끌어온 협상을 단 하루 만에 매듭짓는 장면이었다.
 
전문가들은 선거구 나누기가 기득권 세력, 즉 ‘여야 합의’에 맡겨져 있는 게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생선(획정권)을 고양이(국회의원)에게서 완전히 뺏는 게 해결책”이라는 조언이다. 선거법 전문가로 꼽히는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변호사는 “정치권 이해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획정위라는 중립적 기관을 설치했는데, 형식적으로만 그래놓고 실질적으로는 국회가 마음대로 선거구를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1995년 ‘국회 내부 비상설 회의체’로 처음 만들어진 획정위는 이후 현역의원 위원 배제(2004년), 중앙선관위 이관(2015년) 등을 통해 한 발짝씩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이번 획정 후 선관위 안팎에선 “시·도별 의원정수, 인구 상·하한 기준을 국회가 결정하는 관행을 없앨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원들도 “선거법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서울 재선), “제도 불비”(수도권 초선)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졸속 획정의 피해자는 결국 유권자”(장정숙 의원)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면 이제 국회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 놓을 때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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