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닥친 재택근무 3주차
팀장, 사내메신저에 카톡도 동원
직원들 “넵 넵 하느라 정신 없다”
“필요한 지침만” 실무형 상사 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 종로의 한 대기업 사옥 사무실이 재택근무 실시로 텅 비어 있다. 뉴스1
①안절부절 조급형 ‘메신저 노이로제’
팀장이 단톡방에 수시로 궁금한 내용을 남기는데 문답이 길어지면서 대화창을 조금만 보지 않아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다. 정 과장은 “팀장이 직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확실히 불안해하는 것 같다. 혹시라도 일이 잘 못 되면 자기 책임이니 이해는 한다”면서도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커서 업무 자체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내 3대 대기업 계열사인 A기업은 보안상의 이유로 재택근무 시 업무 소통과 문서 공유 등은 사내 메신저로만 하게 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카카오톡(카톡) 단체방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임원급 리더가 “얼굴을 못 보니 더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며 지시했다. 이후 직원들은 두 가지 메신저를 동시에 보고 동시에 답하고 있다. 때론 양쪽 메신저에 같은 내용을 복사해 올리고 내부 문서까지 카카오톡에 남기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특히 공식 채널인 사내 메신저로 하기 어려운 인신공격성 꾸지람이 크게 늘어 직원들 사이에선 ‘카톡이 깨톡(깨는 용도의 카톡)’이란 소리가 나온다. 김 과장은 “1분마다 카톡이 오가고, (상사가) 같은 업무도 하루에 2~3번씩 반복해서 물어보고 한 마디로 정신이 없다”며 “사무실 출근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②위기에서 빛나는 ‘똑부’형
팀원인 김 부장은 “흔히 리더로는 ‘똑게(똑똑하게 게으른 사람)’가 좋다고 하는데 이렇게 경험해 보지 않은 비상 시국엔 오히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가 더 효율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지시 없이 ‘알아서 잘 해라’고 하는 상사보다는 일을 정리해 주고 경영진에서 내려온 지침을 그때그때 알려주는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재택근무 중인 기업 리더가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깨알같은 피드백(오른쪽 붉은 부분)을 빨간 펜으로 지시한 모습. [사진 독자 제공]](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09/a6fbdf73-ac16-40c1-917d-a238a92d0880.jpg)
재택근무 중인 기업 리더가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깨알같은 피드백(오른쪽 붉은 부분)을 빨간 펜으로 지시한 모습. [사진 독자 제공]
재택근무 상황에서 실무형으로 변신한 리더들도 많다. 국내 정보기술통신(ICT) 기업에 다니는 C 팀장의 경우 평소엔 팀원들을 불러 수시로 구두 보고를 받는 스타일이었지만 재택근무 이후 본인이 많은 일을 직접 처리하고 있다. 그는 “이런 비상 시기엔 무조건 팀원들한테 뭘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팀장이 먼저 업무를 자세히 파악하고 역할과 책임(R&R)을 명확히 해 줘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업무 지시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팀원들에게 재택근무 장·단점을 취합해 불편 사항을 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팀원은 “재택근무 이후 오히려 팀장님이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보고(?)해주니 우리도 알아서 거기에 맞춰 업무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라면 재택근무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③‘도우미’사라지자 당황형
![화상회의와 업무 공유 기능 등을 지원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 화상회의 모습. [사진 마이크로소프트]](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3/09/5f869ba1-8854-4e76-85da-58bdd534c29a.jpg)
화상회의와 업무 공유 기능 등을 지원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 화상회의 모습.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중견그룹 D 차장은 “평소 수기 결제와 대면 보고, 인쇄된 보고서에만 익숙한 부장 이상 임원급들은 직원들이 갑자기 원격근무를 시작하니 디지털 소외자가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원격근무 초반 개인 노트북 PC의 속도가 느려 일 처리에 불편이 있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버전으로 바꿔 업무를 봤다. 그런데 부장은 방법을 몰라 직원들이 부장에게 사용법을 설명하느라 반나절을 쓰기도 했다.
D 차장은 “평상시엔 옆에 똘똘한 부하가 다 직접 도와드리고 설명해줬는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 일일이 전화하거나 짜증을 내고 심지어 일부 직원은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인사 분야 전문가인 김이경 ㈜LG 전무는 “위기 상황에는 리더 개인의 자질보다는 회사 차원의 지침이나 업무환경에 따라 기업이 운영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며 “재택근무하기 좋은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조직 문화를 갖추고 전 구성원을 상대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무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콘퍼런스콜, 화상회의 등 같은 장소에 모이지 않고 진행하는 ‘버츄얼 미팅(Virtual meeting)’이 늘어나고, 일하는 방식의 유연성은 확실히 높아질 것”이라며 “조직 리더도 근태관리가 아닌 성과관리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소아·강기헌 기자 lsa@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