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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분노를 넘어 신뢰로, 혐오를 넘어 연대로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시국이 시국인 만큼 바이러스 창궐을 다룬 영화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야외 활동이 제한되고 방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집에서 영화 보는 시간도 늘었다. 눈길을 끄는 건 줄거리나 시사점이 작금의 사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영화가 적잖다는 점이다. 2002년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28일 후’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한 연구소에서 침팬지가 쇠사슬에 묶인 채 잔인한 폭력 장면이 나오는 여러 대의 TV 화면에 24시간 노출돼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몸속에 ‘분노 바이러스’가 생성됐고, 분노한 침팬지들이 탈출해 인간을 공격하면서 런던 거리는 삽시간에 사람 한 명 없는 유령도시로 변하게 된다.
 

국가 위기에 시민들 헌신 잇따라
증오의 언어 대신 함께 힘 모아야

이 영화가 섬뜩한 건 이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이 힘을 모아 방어기지를 구축하지만, 정작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분노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기만 살겠다는 저급한 욕망과 이기심이었다.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케 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만 못한 인간의 탐욕이 자멸의 길을 재촉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분노의 언어가 넘쳐나고 있다. 국가적 대란의 시기에 수많은 시민들이 자기희생과 헌신·인내·봉사로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있는 와중에도 인터넷에는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전파하는 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분노와 증오는 동전의 앞뒷면이고, 혐오는 증오의 외적 발현이다. 증폭된 혐오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되레 개인과 조직의 이익을 공익과 국익으로 교묘하게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고 배제와 혐오의 언어로 적을 공격하며 그들만의 결속력을 다져 나간다.
 
이를 제어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봉쇄’ 발언 논란으로 대구시민들 마음에 상처를 줬는가 하면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우한 코로나’라는 용어를 공식 석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기자협회가 지역명을 넣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기로 준칙을 정했음에도 말이다. 이래서야 다음달 총선에서 그렇게도 붙잡고 싶어 하는 중도층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중산층·화이트칼라와 30~40대가 이런 용어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생각해 봤는가. ‘대구 코로나’를 절대 쓰면 안 되듯 ‘우한 코로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다행히 일반 시민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기꺼이 힘을 모으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진해서 대구로 달려가고, 광주가 대구를 돕겠다고 나서고, ‘힘내라 대구·경북’ 해시태그가 줄을 잇고, 대구시민들도 묵묵히 도시를 지키며 세계가 놀랄 정도의 민도를 보여주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연대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번의 소중한 경험을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할 때다. 그래야 훗날 우리 후손들이 2020년 바이러스 위기 때 손쉬운 배제보다 어렵고 힘든 연대를 선택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겠는가.
 
마음속에 분노라는 칼을 품고 있으면 상대를 찌르기 전에 자기 심장이 먼저 찔리기 십상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분노하며 원한을 품는 것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영화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도 “진짜 위험은 늘 내부에 있다”고 경고하지 않던가. 위기 극복엔 너와 내가 따로일 수 없다. 분노를 넘어 신뢰로, 혐오를 넘어 연대로 나아가야 또다시 닥칠 바이러스의 공습에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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