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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공포의 기억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에서 거둔 쾌거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코로나19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어느새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우연히 봉 감독이 과거 인터넷상에 남긴 몇 안 되는 영화강의 영상을 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원초적 공포 드러낸 코로나19 확산
정확한 정보 제공, 사회적 공감이 우선

‘살인의 추억’ ‘괴물’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에 대해 그는 창작의 원천을 ‘불안과 공포’라 설명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빈부 격차로 빚어진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대한 탁월한 묘사도 이런 영감에서 출발한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일상에서의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빚은 조바심이 결국 일상의 궤도를 허물어뜨리고 만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다.
 
유명한 예술작품일수록 선한 사람보다는 악인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허다하며, 악행과 공포의 스토리가 더욱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나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갖는 원초적인 공포심 때문”이라 표현했다. (산문집 『읽다』) 인간은 언제라도 남이 나에게 적대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진화해왔으며, 그런 두려움을 잊지 않은 이기적인 유전자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도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원초적인 공포감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실내보다는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악수나 문고리 잡기를 꺼리는 군상의 모습은 이웃과 친구를 잠재적 보균자로 경계하는 극한의 불안과 공포가 빚어낸 희화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실체를 한 꺼풀 뒤집어보면 우리 사회의 자기중심적 편견이 담겨있다. 타인을 향한 두려움은 과도한 경계와 혐오감으로 이어지고, 지나친 위기의식과 증오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곳곳에서의 중국인들에 대한 거부반응이나 국내 확진자들을 죄인 취급하듯 하는 적대적인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는 “질병의 전파와 예방이 마치 사회 개혁의 확산과 흡사한 과정을 겪는다”며 “변화가 가져온 ‘불확실성’을 새로운 ‘정보’로 줄여나가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불안과 공포의 본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관료들의 정교한 메시지 관리를 논외로 치더라도 마스크 재사용 여부 하나만 하더라도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매일 슈퍼 앞에서 국민들을 장사진 치게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으로부터 오히려 ‘역병이 심한 국가’ 취급을 받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이 없다. 국가의 품격과 자격인 ‘국격’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코로나 잡기 궐기대회나 금 모으기 운동 식의 국난 극복 감동 스토리만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허겁지겁, 갈팡질팡의 대증요법 대신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 공포심을 줄일 수 있는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소통 노력이 절실하다. 총선에 미칠 여파를 정치적으로 계산하며 지지율만 온도계 재듯 관심 가질 게 아니다. 신종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인 시스템과 이타적인 공감대를 구축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남은 소를 지킬 수 있지 않나.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걸작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이 창궐한 사회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나는 우리는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고 나서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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