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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 걸린 루스벨트 ‘백신 전쟁’도 사망 10년 뒤 결실

[코로나19 비상] ‘바이러스와 전쟁’은 장기전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SARS-CoV-2가 확산하면서 전 세계가 타격을 입고 있다. 안타까운 희생자가 수없이 발생하는 것도 모자라 의료·방역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이동에 지장이 생기고 경제도 흔들린다. 인류는 어떻게 이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정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국 1900년대 소아마비 대유행
루스벨트 재단 세워 연구개발 지원

파나마운하 공사 황열병으로 중단
역학 조사로 모기 퇴치한 뒤 완공

천연두, 백신 접종으로 1979년 박멸
풍진·광견병·공수병도 거의 사라져

인류가 각종 바이러스 질환을 상대로 벌여온 싸워온 과정을 살펴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인류는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을 동원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고 일부는 굴복시키기도 했다. 결코 쉽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장기전을 치러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아마비다. 1988년 세계보건총회 이후 설립된 ‘세계 소아마비 근절 이니셔티브(GPEI)’에 따르면 이 질환은 소아마비(Polio)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한 뒤 주로 신경계를 공격해 마비를 일으킨다. 소아마비는 고고학 유물에 환자가 기록된 드문 질병이다. 이집트 18왕조(기원전 1403~1365년) 시대의 석판에 한쪽 다리가 확연히 가는 사람이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이 새겨졌다. 누가 봐도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추측할 수 있다. 3400년 전에도 소아마비 바이러스 질환이 적지 않게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인류와 함께 살아왔던 셈이다.
  
이집트 18왕조 시대에도 소아마비 유행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사정은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선 1900년대 소아마비 대유행이 수시로 발생해 16년 한 해에만 2만7000여 명이 감염됐고 6000여 명이 숨졌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의 역대 대통령 소개 코너에 따르면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년, 1932~45년 재임)는 장년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를 겪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법대에서 공부한 그는 뉴욕주 상원의원(1911~13년)과 해군부 차관보(1913~20년)를 지낸 전도양양한 청년 정치인이었다. 38세 때인 1920년 대선에서 민주당 제임스 콕스의 러닝메이트가 돼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 공화당의 워런 하딩과 캘빈 쿨리지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런 루스벨트가 39세 때인 1921년 여름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 장애를 얻었다. 그는 병마는 물론 장애와도 싸웠다. 다리를 조금이라도 쓸 수 있도록 부지런히 수영을 했다. 인고의 세월이 지난 뒤인 192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 목발을 짚고 나타나 박수갈채를 받았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꺾을 수 없었다.
 
루스벨트는 뉴욕주지사(1929~32년)를 거쳐 1932년 미국 대통령이 됐다. 1936년·40년·45년 세 차례 더 당선해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이 됐다. 백악관에 처음 입성할 당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공황(1929~39년)에 따른 실업자 1300만 명과 문을 닫은 은행들이었다. 루스벨트는 테네시강 개발계획을 핵심으로 하는 뉴딜 정책으로 경제를 부흥시켜 대공황을 물리쳤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일제와 나치·파시즘에 대항했다. 하지만, 종전을 앞둔 1945년 4월 12일 자유 세계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그는 대공황과 2차 대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가난과 군국주의·전체주의를 물리친 영웅이 됐다.
 
루스벨트가 남긴 것은 또 있다. 소아마비 백신이다. 그는 1938년 국가 소아마비 재단을 세우고 기금을 모았다. 재단은 1948년 피츠버그 의대의 조너스 소크 교수에게 백신 개발을 맡기고 장기간에 걸쳐 연구·개발을 지원했다. 그동안에도 소아마비는 기승을 부렸다. 미 식품의약처(FDA)에 따르면 1952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5만8000건의 소아마비가 발생해 3145명이 숨지고 2만1269명이 마비 장애를 겪었다. 환자는 대부분 어린이였다. 대중은 소아마비를 ‘전후 최대의 공포’ ‘20세기 흑사병’으로 여겼으며 ‘핵무기 다음가는 위협’으로 간주했다.
 
결국 소크 교수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으며 환자 발생률을 기존의 30% 수준으로 크게 떨어뜨렸다. 루스벨트가 소아마비에 걸린 지 34년, 재단을 설립한 지 17년,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소아마비 백신이 완성됐다. 루스벨트는 과학을 앞세워 장기전을 벌인 결과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승리를 거뒀다.
 
인류가 과학을 활용해 바이러스를 상대로 거둔 또 다른 승리로 황열병과의 싸움이 있다. 황열병은 발열·오한·근육통·두통 증세와 함께 간 손상에 따라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1859~1869년 수에즈 운하를 완성한 프랑스 외교관 겸 기술자인 페르디낭 드레셉스는 1881년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나섰다. 하지만 공사에 동원한 노동자 사이에서 황열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뇌물 스캔들도 터지면서 1889년 공사를 중단했다. 질병이 거대 공사를 포기하게 만든 셈이다.
 
1904년 권리를 인수해 공사를 재개한 미국은 군의관을 동원해 황열병을 막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역학(疫學)을 공부한 군의관 월터 리드는 황열병이 모기를 매개로 전염된다는 쿠바인 카를로스 핀라이의 연구를 바탕으로 파나마 늪지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모기 퇴치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미국은 황열병을 누르고 14년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하기도 전에 역학을 활용한 과학적 연구 끝에 예방법을 찾은 셈이다. 역학의 승리다. 황열병의 원인은 1927년 황열병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미국 미생물학자 막스 타일러는 1937년 황열병 백신을 개발했으며 그 공로로 195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출신이 받은 첫 노벨상이다. 황열병은 한 차례 백신 접종으로 평생 면역을 얻을 수 있지만, 치료제는 아직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해열제 등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이 고작이며, 인체 면역력으로 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설사를 유발하는 노로바이러스의 경우는 치료제는 물론 백신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손 씻기 등 위생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발병했을 경우 대증요법 외에 방법이 없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는 아직 치료제도 백신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로바이러스, 백신·치료제 없어 예방만
 
인류가 천연두를 물리친 과정도 참고해야 한다. 마마로 불리던 천연두는 바이러스는커녕 미생물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부터 우두로 극복해왔다. 기원전 1145년에 숨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발견됐을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미주와 호주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천연두 바이러스와 접촉한 적이 없어 집단면역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럽인에 의한 의도적이거나 우연한 전파를 통해 남미 잉카제국 주민의 60~94%, 미국 매사추세츠 지역 아메리칸 인디언의 90%, 호주·뉴질랜드 원주민의 절반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20세기 들어 개발된 백신을 국제사회에서 대대적으로 접종하면서 1979년 WHO가 박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소의 질환인 우역과 함께 인류가 멸종시킨 드문 바이러스다.
 
풍진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풍진의 경우 국내에서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 오랫동안 고질병으로 통해왔다. 하지만 2001년 전국 동시 예방접종을 하면서 대대적으로 감소했다. 현재는 매년 10건 이하만 발생해 사실상 ‘희소병’이 됐다.
 
동물에겐 광견병을, 사람에겐 공수병을 일으키는 광견병 바이러스도 백신과 치료법 개발로 사라져가고 있다. 국내에선 광견병이 2014년, 공수병이 2005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백신은 개발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가장 유용한 ‘과학 무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이제 에볼라·지카 바이러스와 함께 이번에 우리가 싸우고 있는 코로나19를 일으키는 SARS-CoV-2가 주요 과제로 남았다. 이제 시작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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