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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불수용·연장요청…'키코 배상' 안갯속으로

신한금융그룹. 중앙포토

신한금융그룹. 중앙포토

신한은행이 금융감독원의 키코(KIKO)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금감원 측에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분쟁조정을 권고받은 6개 은행 중 2곳은 불수용 결정, 3곳은 기한연장을 요청하면서 키코 사태 해결은 당분간 안갯속에 갇히게 됐다.
 

신한은행 "키코 배상 결정 연장을" 

신한은행은 6일 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말 금감원이 권고한 키코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신한은행은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관련 안건을 논의하려 했으나 이사 전원의 동의를 얻지 못해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지 못했다"며 "금감원에 유선으로 키코 배상 수락 기한 재연장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키코는 2007~2008년 환헤지를 목적으로 은행들과 수출 중소기업들이 체결한 통화옵션계약이다. 기업들은 환율이 미리 정한 수준(배리어) 아래에서 움직이면 달러를 약정환율에 팔 수 있지만(풋옵션), 이를 벗어나 움직이면 계약 금액의 두 배 이상의 달러를 약정환율에 팔아야(콜옵션) 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원화가치 하락)해 배리어를 넘어선 것이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당시 723개 기업이 환차손으로 약 3조3000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2일 키코 피해기업 가운데 일성하이스코·재영솔루텍·원글로벌미디어·남화통상 등 4개 기업에 대한 분쟁조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에 키코를 판매한 6개 은행이 고객보호의무를 저버리고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150억원), 우리은행(42억원), 산업은행(28억원), 하나은행(18억원), 대구은행(11억원), 씨티은행(6억원) 등에 총 256억원의 배상금 지급을 권고했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키코 사태 분쟁조정 결과. 금융감독원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키코 사태 분쟁조정 결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권고안, 우리은행만 수용 

분조위의 배상 결정에는 강제성이 없다. 피해기업과 은행 양측이 모두 결정을 받아들여야 효력이 생긴다. 은행들은 당초 민법상 소멸시효(10년)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법적 의무 없는 재산 출연에 해당해 배임이 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6일 현재 이들 은행 가운데 금감원의 분쟁조정 권고안을 수용한 곳은 우리은행뿐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일성하이스코(32억원), 재영솔루텍(10억원) 등 피해기업 2곳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모두 마쳤다.
 
씨티은행과 산업은행은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난 5일 금감원에 전했다. 산업은행은 법무법인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씨티은행은 일성하이스코에 대해 회생절차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분조위가 권고한 금액(6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의 미수 채권을 감면해준 사정 등을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씨티은행은 다만 나머지 배상 대상 기업 39곳에 대한 적정 수준의 배상을 자체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은 지난 5일 금감원에 수락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나은행은 추가 사실 확인 및 법률 검토를 통해 이를 신중하게 판단한 뒤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은행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혼란스러운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기한을 조금 더 달라고 요구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은행의 시간 끌기?  

하루 뒤인 이날 신한은행도 기한 연장을 요청하면서 분쟁조정 대상 은행의 절반이 사실상 '시간 끌기'에 나섰다. 하지만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강제력이 없는 금감원으로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금감원이 은행들에 권고안을 강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숙고를 위한 기한 연장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키코 사태 해결은 당분간 안개 속에 갇히게 됐다. 당장 나머지 145개 피해 기업과 은행 간 자율조정 절차 역시 기한 연장 기간만큼 뒤로 미뤄졌다. 은행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자율조정 방식이나 기준 등을 결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 하나은행만이 연합체 참여 의사를 밝혔을 뿐이고, 나머지 은행들은 이를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분쟁조정 권고를 받은 은행들조차 이를 따르지 않거나 시간을 끌고 있는데 앞으로 은행연합체가 구성된들 의견을 모으는 게 가능하겠느냐"라며 "지금은 어느 것 하나도 결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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