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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알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 인터뷰
3년 장좌불와 24명 중 절반 포기
마음공부에 출가 재가 따로 없다
미국인들 마음공부 실천에 충격

충남 공주시 반포면 제석골길에는 학림사 오등선원이 있다. 지난 1일, 그 선방의 출입문이 만 3년 만에 열렸다. 방문을 열고 나온 이들은 12명의 수행자. 얼굴은 초췌했고, 눈은 맑았다. 이들은 2017년 3월 1일에 ‘3년 용맹정진 결사’를 결의하고 오등선원 선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대원 스님은 "수좌들의 물음은 똑같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그걸 알아야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대원 스님은 "수좌들의 물음은 똑같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그걸 알아야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불가(佛家)에서 ‘용맹정진’은 바닥에 눕지 않고 참선하는 것을 뜻한다. 밤에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머리가 닿아서는 안 된다. 설령 잠을 자더라도 방석 위에 앉아서 자야 한다. 그런데 꾸벅꾸벅 졸다가는 어김없이 죽비가 날아든다. 선방에서 왔다갔다하며 정진을 감독하는 입승이 졸고 있는 수좌의 어깨를 죽비로 내려치기 때문이다. 아프진 않지만 ‘착! 착!’하는 죽비 소리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 맞은편에 있는 장군봉(사진의 가운데 봉우리)과 임금봉, 수리봉이다. 용의 머리와 몸통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 맞은편에 있는 장군봉(사진의 가운데 봉우리)과 임금봉, 수리봉이다. 용의 머리와 몸통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찾기 위해 3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 걸까. 지난달 17일 계룡산 장군봉 아래 있는 학림사를 찾아갔다. 눈발이 펄펄 날리는 날이었다. 사찰 바로 옆에 병풍처럼 펼쳐진 장군봉은 용의 머리, 이어진 임금봉과 수리봉은 용의 몸통이었다. 영락 없는 용(龍)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학림사 오등선원의 기운은 남달랐다. 그곳에서 최고어른인 조실 대원(大元ㆍ78) 스님을 만났다. 그에게 ‘마음공부’를 물었다.  
 
3년 장좌불와, 그들은 무엇을 찾는 건가.
 
“수좌들의 물음은 똑같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다. 절집에서는 그걸 ‘이뭣고’라고 부른다. 12명의 수좌들은 하루 18시간씩 좌선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공양(식사)하고, 씻고, 화장실 갈 때 썼다. 24명이 들어왔지만 12명이 중도에서 포기했다. 수좌들은 선방에서 마주 보고 앉는다. 눈을 뜨면 상대방이 앉아 있기에 졸고 싶어도 많이 못 존다.”
 
3년간 눕지 않는 용맹정진 결사를 한 오등선원 선방. 24명이 결사에 들어갔지만 12명이 떨어져 나갔다. 지난 3월1일 회향 때는 12명만 남았다.

3년간 눕지 않는 용맹정진 결사를 한 오등선원 선방. 24명이 결사에 들어갔지만 12명이 떨어져 나갔다. 지난 3월1일 회향 때는 12명만 남았다.

 
눕지 않는 것 자체가 수행의 목적은 아니다. 성과가 있었나.
 
“내가 직접 중간 점검을 했다. 문답을 주고 받으며 공부를 체크했다. 궁극적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마음에 오롯이 새기는 효과는 뚜렷이 있다고 하더라. 그것만 해도 작은 성과는 아니다.”  
 
학림사 오등선원에는 머리 깎은 출가자만 수행하는 게 아니다. 이곳에는 시민선원도 있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전국에서 200~300명의 재가자가 찾아온다. 다들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수행하는 이들이다. 토요일에 오면 1시간 동안 대원 스님의 ‘조주록’ 강연을 듣는다. 그리고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참선을 한다. 새벽 3시에 새벽예불을 한 뒤에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각자 공부한 내용을 토론한다. 이때 대원 스님이 직접 공부를 점검한다.  
 
재가자를 위한 선원이 인상적이다. 언제부터 꾸렸나.  
 
“2002년에 시민선원을 지었다. 그때는 참선을 스님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재가자는 그저 부처님께 기도하고, 기복하는 걸로만 생각하던 때였다.”
 
대원 스님은 "토요일마다 전국에서 참선 공부를 하려는 재가자가 시민선방으로 몰려든다. 200~300명은 족히 된다"고 말했다.

대원 스님은 "토요일마다 전국에서 참선 공부를 하려는 재가자가 시민선방으로 몰려든다. 200~300명은 족히 된다"고 말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974년이었다. 미국의 토마스 알타이저(1927~2018) 박사가 순천 송광사를 찾아왔다. 당시 구산 스님을 비롯해 여러 수좌가 그를 맞았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알타이저 박사는 니체의 철학과 헤겔의 변증법을 계승했다. 박사 학위만 5개였다. 마지막 박사 논문 주제는 ‘신이란 존재는 없다’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인가?’ ” 미국 에모리 대학 교수였던 토마스 알타이저 박사는 니체와 헤겔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론적 무신론’을 주창했던 기독교 신학자다.  
 
알타이저 박사는 뭐라고 답했나.
 
“머뭇거리면서 ‘나는 마음…사람…신…영혼?’이라고 했다. 내가 ‘내가 나를 모르면서 신은 죽었다고 논문을 써댔으니, 당신도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맞다. 나도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에 왔다. 나는 무엇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왔다. 어떡하면 그걸 찾을 수 있나?’라고 물었다.”
 
당시 방에는 ‘해인사 성철-송광사 구산’으로 불리던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도 있었다. 구산 스님도 알타이저 박사와 함께 온 20명의 제자들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인가?” 제자들 중 하나가 답했다. “저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생겼느냐?”“마음이 밝을 때도 있고, 어두울 때도 있습니다” “어두우면 어둡다고 말하고, 밝다면 밝다고 말하는 그 놈은 본래 무엇이냐?”“그걸 모르겠습니다.” 문답은 이렇게 오갔다. 구산 스님이 “그걸 모르고 살면 우리가 봉사다. 죽은 사람이다”고 했더니 알타이저 박사 일행은 다시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구산 스님은 “자기 자신을 향해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걸 궁리해야 한다. 그게 ‘이뭣고’라는 화두다”라고 말했다.  
 
대원 스님은 "마음을 대중을 위해서 써보라. 그럼 대중이 나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내 안에 있는 불성의 마음을 자꾸 쓰다보면, 그 힘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대원 스님은 "마음을 대중을 위해서 써보라. 그럼 대중이 나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내 안에 있는 불성의 마음을 자꾸 쓰다보면, 그 힘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후 대원 스님은 제방 선방을 다니면서 수행했다. 2000년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숭산 스님이 초청했다. 대원 스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퍼드 대학에서 1시간40분 동안 선(禪)을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대학생과 일반 사람들로 강당이 꽉 찼다. “나는 그때 놀랐다. 1974년에 한국을 다녀간 사람들이 주위 사람을 모아서 생활 속의 참선을 하고 있었다. 해보니 어떤가 물었다. 예전에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갖고 집에 가면 불쾌지수가 쌓였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험악했다. 그런데 하루 일과 끝나고 참선 명상을 하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하더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가니까 가족간 분위기도 좋다고 하더라. 내게는 충격이었다.”
 
왜 충격이었나.
 
“우리는 아주 수승한(뛰어난) 마음공부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써먹지 않고 있었다. 절집의 스님들만 그걸 하고 있었다. 부처님 사상은 그게 아니다. 부끄러웠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시민선원을 추진했다. 마침내 2002년에 계룡산 자락에 시민선방 오등선원을 개원했다. 이걸 더 일찍 했어야 하는데 늦었다. 이 때문에 나 자신을 많이 견책했다”
 
 대원 스님은 스승인 고암 스님으로부터 선문답을 주고 받은 뒤 전법게를 받은 이야기를 했다. 고암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세 차례나 역임한 당대의 선지식이었다. 사진 속 인물이 고암 스님이다.

대원 스님은 스승인 고암 스님으로부터 선문답을 주고 받은 뒤 전법게를 받은 이야기를 했다. 고암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세 차례나 역임한 당대의 선지식이었다. 사진 속 인물이 고암 스님이다.

 
대원 스님은 14살 때 경북 상주의 남장사에서 출가했다. 행자 시절에는 고생도 많이 했다. 밥 짓는데 쌀에 돌이 들어갔다고 3000배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여러 선방을 다니면서 참선을 했다. 고암ㆍ향곡ㆍ성철ㆍ경봉ㆍ금오ㆍ동산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과 함께 수행도 했다. 대원 스님은 세 차례나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스승 고암 스님과 주고 받은 문답을 꺼냈다.  
 
“고암 스님께서 ‘뜰 앞의 잣나무다. 조사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대답을 해도 아니라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저 잣나무, 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라. 손으로 잡을 곳이 아무데도 없는 곳에 서서, 한 걸음 나아가라. 그때 당해서 무엇이 너의 진면목이겠느냐?’ 이렇게 다시 물으셨다. 그때 알겠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나.
 
“나는 박장대소했다. 무엇을 알았기에 웃느냐고 하시길래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래도 한 마디 하라고 하셨다. 나는 '백천 가지의 기기묘묘한 말씀을 다 하더라도, 여기에 있어서는 상신실명(몸을 상하고 생명을 잃다)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고암 스님께서 원을 하나 그리시더니 ‘이 안에 들어가도 30방, 나가도 30방이다. 어떡하겠느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깔고 앉았던 좌복(방석)을 머리 위에 이고 이렇게 물었다. ‘이 좌복이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그러자 고암 스님께서 주장자로 때리려고 하셨다. 나는 좌복을 스님께 던지고 나가버렸다.”
 
대원 스님은 "내 안에 있는 부처의 마음을 쓰는 걸 백두산 천지의 물이 계속 흐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원 스님은 "내 안에 있는 부처의 마음을 쓰는 걸 백두산 천지의 물이 계속 흐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참 뒤에 다시 방으로 들어온 그에게 고암 스님은 “눈 밝은 납자는 속이기가 어렵구나”라며 공부를 인가하고 그 자리에서 전법게를 내렸다. 마음이 본래 터져 있음을 깨친다면 안팎의 구분이 사라진다. 마음의 당체가 본래 안팎이 없기 때문이다. 선불교 전통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은 이들이 주고 받는 문답이다. 언뜻 수수께끼처럼 들리지만 선불교의 모든 물음은 하나로 통한다. 다름아닌 ‘나는 누구인가’이다. 대원 스님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 않나. 갈수록 세상은 빨라지고, 사람들은 지칠 거다. 그속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찬가지다.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밖으로 나오자 산사에 눈발이 마구 퍼부었다. 지척의 장군봉도 흐릿하게 보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의 삶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을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 더 또렷해지지 않을까.  
 
계룡산(공주)=글ㆍ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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