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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27)

제1부 독립을 위하여
김덕연은 나의 반론에 대해반론을 제기했다. 그의 이론이『조선공산당의 볼셰비키 화를 위하여』에 쓰여있는 것과 똑같아 나는 그가 어떤 공산주의 클럽에 속해있는 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술 취한 김에 그만 코민테른까지 비판해버렸다.『이론은 실천의 결과에 의하여 검열 평가되어야 한다. 코민테른이 조선공산당을 노동자당이 아니고 소 부르죠아 인텔리정당이리고 해산시켜 버렸는데 그후 7년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는가?』하고 반문했다. 그는 나를 달래려는 듯 낮은 목소리로『박형! 이것은 절대 비밀이오. 아무 데도 이야기 마시오. 지금 당 재건운동이 전개 중일는지 모르오. 멀지 않은 장래에 당이 반드시 재건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나도 박형 이론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코민테른에 따르지 않으면 당이 재건되지 않소. 우리조선에도 우수한 지도자가 많이 있어요』하는 것이었다.『누구요?』하고 나는 되물었다.『몇 사람 있는데 박헌영이란 이름은 기억해 두시오』하였다. 나는 그때 박헌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자기도 박헌영의 경력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박은 1925년 조선공산당의 창당멤버로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하여 책임 비서가 되었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자기 똥을 먹고 거짓 미치광이 깃을 하여 보석되자 소련으로 탈출했다가 국내에 되돌아와 체포되고도 전향하지 않은 채 불굴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보성전문학교에 다닐 때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보성전문에는 상당한 공산당이론가인 최용달 교수(해방 후 장안 파 조선공산당)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모든 것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특히 불굴의 투사 박헌영이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불굴의 투사」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향선배인 박낙종·하필원 등 유명한 공산주의자들은 할 수 없이 일시 굴복하여 휴식상태에 있고 여운형도 마찬가지상태에 있었다. 불굴의 투사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나의 선배들은 나에게 아무도 공산주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김덕연이 처음으로 조선공산당 재건움직임과 박헌영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조선공산당 재건조직에 곧 참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마르크스 서적을 탐독하는 중이어서 이론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처음『조선공산당의 볼셰비키 화를 위하여』를 읽을 때는 전부가 다 옳다고 감동했는데 그후 마르크스의 저작을 여러 권 읽음에 따라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러시아에 적용한 것이 레닌주의다. 그런데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이 소련 공산당을 계승, 이미 존재하고 있던 조선공산당은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해체해버리고 새로 스탈린의 당을 조선에 조직하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주장이었다.
중국에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일본에는 일본의 실정에 맞는 공산당이 있어야 하는데 각국 공산당을 살펴보면 소위「볼셰비키 화」한다고 각국의 역사와 사회발전 단계에 알맞은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우경기회주의자라고 처단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에 있어서도 소련파와 토착화가 십 수년간 싸우다가 토착민족파인 모택동 파가 장정도중 준의에서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겨우 이겼다. 스탈린의 충고대로 승리한 공산당은 세계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살인적인 고문을 체험했기 때문에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
체포될 경우 죽기 아니면 투항인데 둘 다 싫었다.
그래서 김덕연과 만나면 이론문제만 토론했지 조직문제에 관해서는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김덕연과 나는 서로호감을 가지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주 접촉이 계속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이론에 심취하자 나의 역사와 사물에 대한 인식도 근본적으로 변화해갔다. 이때까지는 조선독립운동은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이 국내에 있는 우리를 지도하고 또 국내의 민중은 그들의 지도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그 정반대였다. 조선독립운동은 조선국내의 인민대중이 해야하고 국내의 인민대중이 주체였다. 국내의 인민대중 속에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그리고 독립투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을 수 있고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조선독립투쟁의 중심은 조선국내며 그 주체세력은 국내 인민대중이다. 그 인민대중의 핵심은 노동자·농민·진보적 지식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세력의 조직이 조선공산당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상해임시정부가 우리의 독립을 해주며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이 우리의 독립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 것은 완전한 환상이라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게되니 상해임시정부라는 것은 조그마한 망명자 집단에 불과하며 만주에서 싸운다는 김일성 장군(현 북한 김일성이 아닌 동명이인의 항일투사)도 일개 만주교민의 한 파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까지는 만주의 김일성 장군이 백마를 타고 조선에 쳐들어와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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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