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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공원과 도서관 많은 곳이 살기 좋은 도시"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건축사 교수와 유현준 교수가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5층 중정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건물의 중간 층을 과감하게 비운 디자인이 돋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건축사 교수와 유현준 교수가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5층 중정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건물의 중간 층을 과감하게 비운 디자인이 돋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아트리움. 버그돌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복합문화공간처럼 퍼블릭 공간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오피스 건물"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아트리움. 버그돌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복합문화공간처럼 퍼블릭 공간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오피스 건물"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사 교수이자 전 MoMA 건축·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2004~2017)인 배리 버그돌(Barry Bergdoll·65)이 최근 화성시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로 지난 10년간 예닐곱 차례 한국을 방문한 그는 미국 건축계에서 '한국통'으로 불리는 드문 인물 중 한 명이다. 지난해 9월부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그는 명실공히 국제 건축계의 파워 인사로 꼽힌다.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교수, 유현준 홍익대 교수 대담
"혁신적 아이디어가 공동체에 기쁨 주고 지역사회 기여"
퍼블릭 스페이스 '개념' 장착한 건축물이 삶의 질 높인다

 그가 공식일정에 앞서 서울에서 찾은 곳은 경복궁과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한국의 전통 건축과 2017년에 완성된 대규모 오피스 빌딩인 두 건축물을 둘러보는 여정에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함께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버그돌 교수가 보고 싶은 건물로 꼽았고, 경복궁 경회루는 유현준 교수가 추천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여정에 본지가 동행했다.
 

퍼블릭 공간 '개념' 갖춘 오피스빌딩

먼저 찾은 곳은 영국 출신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66)가 설계한 지하 7층, 지상 22층 규모의 아모레퍼시픽 사옥이었다. 유 교수는 2018년 출간한 그의 저서『어디서 살 것인가』(을유문화사)에서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옥"으로 꼽은 바 있다. 묵직한 정육면체 형태의 이 건물의 중간중간 층 사이에는 한강·용산공원·남산 등을 향해 일종의 창 역할을 하는 큰 규모의 보이드(Void) 공간이 있다. 일반 사옥 빌딩과 달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1~3층의 확 트인 아트리움 공간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5층과 11층, 17층에는 5~6개 층을 비워내고 조성한 세 개의 정원(중정)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유 교수는 이 사옥을 가리켜 "마당이 있는 한옥을 3차원의 오피스 사옥으로 잘 해석한 공간 구조"라고 평한 바 있다. 
 
버그돌 교수는 "이 건물은 아마도 치퍼필드가 설계한 것 중 가장 관대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비율의 열린 공간을 가지고 있는 건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퍼블릭 공간이 워낙 커서 오피스 건물이라기보다는 다목적의 문화 공간처럼 보인다"고 했다. 
 
유 교수는 "전통적인 서양 건축과 달리 이 건물엔 메인 파사드(입면)가 없고, 각 면에 큰 문이 동등하게 사방으로 나 있어 일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다"며 "여기엔 후에 이 건물이 인근의 용산공원으로 이어지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를 담겨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멋진 빌딩 속 정원, 특히 5층 중정을 일반인은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유 교수는 "5층의 중정을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게 열어 놓았더라면 훨씬 더 강력한 디자인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와 건물이 하나가 되려면···

말 그대로 사옥은 한 기업의 소유 건물이지만 조직원의 창의성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소통 방식 등 기업 문화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회사의 미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오로지 밀도만을 높이기 위해 숨 막히게 사무실로 채운 사옥은 감옥과 유사한 학교 디자인과 다를 게 없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원들, 그 건물을 매일 바라보고 오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배려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퍼블릭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장착한 사옥이 더 많이 필요하다.   
 
버그돌 교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피스 빌딩으로 케빈 로슈(Kevin Roche·1922~2019)가 설계한 뉴욕의 포드 재단 빌딩(Ford Foundation Building·1969년 준공)을 꼽았다. 작은 연못과 수목원 등의 퍼블릭 공간을 품고 있는 사무 건물이다. 
 
 

"포드 재단 빌딩엔 12층 규모의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사무실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아트리움은 바깥 거리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그 안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돼 있죠. 그리고 이 정원이 두 길 사이의 지름길이기도 해서 사람들은 이곳은 자연스럽게 드나듭니다." (배리 버그돌)

 
버그돌 교수는 "건축가 로쉬는 이 건물을 만들 때, 이 디자인으로도 기존의 전통적인 설계안 못잖게 충분한 사무실 공간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재단에 설명했다"며 "이 빌딩은 언뜻 보기엔 엄청난 공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탁월한 디자인이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적인 건축'이란? 

경복궁 경회루를 함께 찾은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교수와 유현준 홍익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복궁 경회루를 함께 찾은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교수와 유현준 홍익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사람은 아모레 퍼시픽 사옥에 이어 경복궁 경회루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경회루는 조선 후기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어진 곳으로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다. 
 
유 교수는 경회루를 가리켜 "한국 전통건축 중 2층으로 지어진 몇 안 되는 건축물"이라며 "그중에서도 필로티로 만들어진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둥구조라서 주변의 경치가 잘 보이고, 밖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경회루 2층에 올라서니 낮은 기와지붕들이 마치 그림처럼 눈 아래로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버그돌 교수가 물었다." 경회루가 특별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유 교수는 "경회루가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을 가진 것은 맞지만 경회루를 그 이유만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한옥이 훌륭한 것은 그 시대의 재료, 기술적 한계에서 만들어 낸 최선의 답이기 때문"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건축이란 현재의 한계와 제약에 문제에 대응해 적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적용하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현재 한국사회 밀도, 사회적 문제, 기술, 그리고 예산 등의 요소들이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서 "현대의 디자인은 현대 문제의 해결책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당신이 살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

두 사람에게 각자 좋아하는 도시를 꼽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버그돌 교수는 파리와 런던을, 유 교수는 로마와 뉴욕을 꼽았다. 버그돌 교수는 파리와 런던 등의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로 "공원이 어디에나 널려 있고, 상업적인 거리와 주택가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한편 유 교수는 "로마는 고대에서부터 르네상스, 심지어 현대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와 건축의 결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뉴요커들은 비록 작은 집에 살아도 공간 소비의 측면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공원과 광장, 미술관, 도서관 등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재미난 공간들을 거의 무료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하게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들은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있어야 하고, 서로 연결돼야 합니다.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시설이 바로 공원과 도서관이죠.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멀리 있지만 매우 큰 10개  공원과 도서관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50개의 작은 도서관과 공원입니다." (유현준)

 
마지막으로 버그돌 교수는 오래 전에 조성됐지만 주목할 만한 도시로 조지아주의 사바나를 꼽았다. 미국 최초의 계획도시다. 그는 "사바나에는 다섯 블록마다 한 블록씩 정원이 있다"면서 "도시 안에 22개의 작은 공원이 골고루 분포돼 있어 몇 블록만 걸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들이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이에 유 교수는 "정말 멋진 디자인이다. 저는 잘 만들어진 건축물과 도시(하드웨어)가 그 안의 소프트웨어(삶)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고 말하자 버그돌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이 빌딩을 만들고, 그 빌딩들이 사람을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는 윈스턴 처칠의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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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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