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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중국만 빼고…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마음 속에 성역과 금기(禁忌)를 갖고 있으면 행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나랏일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같다. 세월호 참사,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참모들이 감히 대통령 관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걸 보면 말이다. 쏟아질 질책이 두려웠던가. 그들은 결국 ‘세월호 7시간’ 미스테리의 공범이 됐고, 지워지지 않을 역사 속 오점으로 남게됐다.
 

중국 눈치보기 급급, 방역 실패
한국은 되레 역병국가 취급돼
‘운명 공동체’ 망상서 벗어나야

역사책에 기록될 또 하나의 사건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정부의 무능과 방역 실패가 초래한 재앙이다. “머지않아 종식될 것” “세계의 모범사례”라는 자화자찬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한국은 확진자 수 세계 2위의 코로나 국가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제한하는 나라가 37곳이다. 코로나 피해국에서 순식간에 가해국으로 역전됐다. ‘구명조끼 입고 그대로 있으라’는 황당한 지시를 따랐다가 화를 당한 세월호 희생자와 다를 게 뭔가.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중국만 빼고’다. 대통령은 입으론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한 조치” “전례없는 강력한 대응”을 거론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중국 봉쇄 조치는 내리지 않고 있다. 잠가야 할 빗장은 열어둔 채 대구·경북(TK), 신천지가 진앙지라도 되는 양 ‘강력 봉쇄’ ‘전수 조사’를 입에 올린다. ‘우한 폐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면서 보도 자료엔 버젓이 ‘대구 코로나19’를 올리는 정부다.
 
봉쇄를 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치 않다.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 사태의 원인”(박능후 복지장관), “중국의 영향은 크지 않다”(박원순 서울시장)고 주장할 뿐이다.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열쇠가 있다고 본다. 한·중 운명 공동체론은 집권층 내부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역사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의 성장이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될 것이란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다르다”며 “양국은 일방의 번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운명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한국을 ‘소국’으로 폄하하며 “중국몽과 함께할 것”이라고도 했다.
 
운명 공동체 인식은 친중 반미 역사관과 뿌리가 같다. 이런 이분법적 세계관·역사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작고한 이영희 교수다.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과 신중국의 탄생을 찬양한 반면 미국은 제국주의 속성을 들어 비판한, 그의 저작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등은 19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문 대통령도 “대학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이영희 선생이었다”고 밝혔다. 자서전 『운명』에서다. “미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상대편은 무찔러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버리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겨주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베트남전에서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교수는 훗날, 당시 자료의 빈약함 등으로 문화대혁명을 미화한 부분의 오류를 인정했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 내부의 친중·반미의 도그마는 바뀌지 않은 것같다. 이 정부들어 유별난 대중국 저자세와 눈치보기로 사달이 난게 한두번이 아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3불 입장표명 강요, 한한령(限韓令), 대통령 방중때의 혼밥 등 외교결례, 한국 취재진에 대한 중국 경호원 폭행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코로나 사태 와중의 도를 넘는 중국 눈치보기로 국민들은 또 한번 모멸과 치욕감을 느끼고 있다. 환구시보엔 “상황이 가장 엄중한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은 한국의 역병이 중국으로 넘어오는 걸 막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글이 게재됐다. 코로나를 퍼뜨린 중국이 오히려 한국을 역병국가 취급한 것이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애당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는 과학과 실용의 논리로 접근했어야 했다. 그런데 시진핑 방한이나 총선 같은 정치, 이념적 논리로 풀어가려다 철퇴를 맞은 셈이다. 이제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용도 폐기된 낡은 이념의 환상에 사로잡혀 민주 대 반민주, 친미 아니면 친중의 이분법에 가두고 있는 얼치기 진보의 이념 편향이 정상적인 판단을 방해하고 있다. 정치적 수사(修辭)는 될지언정 국익을 지키려 다투어야 하는 국가간 관계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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