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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수상작

장원

자작나무의 섬* 
-강영임
 
주위를 둘러봐도 숨구멍이 다 막혔다
들숨날숨 들고나야 초봄에 잎이 돋지
사할린 꽁꽁 언 바다 생각까지 봉하고
고향이 어디인지 조국이 어디인지
징용 왔다 눈물조차 얼어붙은 동토 끝
무국적
떠도는 바다
제 온몸을
염한다
  
*사할린을 이이누인 말로 표현 
 
◆강영임
강영임

강영임

2018년 제주시조지상 백일장  우수상.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차상

휴지
-이종현
 
버려지는 몫을 위해
침묵을 그러안고
흔적을 기다리다
무심하게 훔쳐 낸다
툭 던져
몸 누인 곳에
자화상 펼쳐보다
 

차하

터미널
-최형만
 
이곳은 감쪽같이 사라지는 곳이다
붐비던 이야기가 하나둘 떠나갈 때
상처도 막차를 타고 바닥으로 향한다
 
잠 못 든 시간 속에 서성인 사람들은
구겨진 마음에도 갈 길을 서두는데
해질녘 저문 하늘의 허물 같은 붉은 빛
 
허공을 날아가는 새들의 몸짓처럼
펄럭인 바람 따라 계절도 가고 있다
이우는 손짓 너머로 푸른 생이 저문다
 

이달의 심사평  

인디언 호피 족은 2월을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은 코로나19의 걱정으로 차있다. 곧 이 사태가 지나가고 세상이 정화되어 다시 환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월 장원작을 올린다. 장원은 사할린 강제 징용자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강영임 씨의 ‘자작나무의 섬’이다. ‘눈물조차 얼어붙은 동토 끝’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징용자들의 아픔을 잘 담아냈다. 둘째 수 중장 앞구와 뒷구의 주고받음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긴 하나 무거운 주제를 잘 갈무리했다.
 
차상은 휴지의 속성에 화자 자신을 겹쳐 놓은 이종현 씨의 ‘휴지’다. 어떤 수사법도 없이 단아한 리듬으로 직조한 깔끔한 단시조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들을 봐도 오랜 시간 시조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여 신뢰가 간다. 다만 언어의 밀도를 높이는 데 더 고심하였으면 한다.
 
차하는 최형만 씨의 ‘터미널’이다. 터미널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화자는 그곳을 ‘상처’조차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곳’, 그러다 ‘생이 저’무는 곳으로 보고 있다. 완벽한 정형의 틀에 깊고도 쓸쓸한 이미지를 잘 담아놓았다. 그러나 선택된 시어들이 다소 낡아있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치열한 경쟁작 중 끝까지 놓지 못한 응모자들은 정상미, 김나경 씨였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 최영효, 강현덕 (심사평 : 강현덕)
 

초대시조

남산모루 들깨 꽃-동두천 
-정용국
 
큰 이모 사시던 남산모루 옛 집터엔
루시킴 몸내 같은 들깨 꽃 한창이다
문간방 세 들어 살던 스물세 살 아가씨
 
장 구경 나가자며 내 손을 꼭 붙잡고
팥죽을 사주면서 환하게도 웃던 얼굴
고향에 돈을 부치곤 돌아서서 울었지
 
콜로라도 비행기는 무사히 탄 것일까
들깨 꽃 향기에는 소문도 멍울 지네
초콜릿 쥐어 주던 그 손 아직도 촉촉한데
 
◆정용국
정용국

정용국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 시집 『난 네가 참 좋다』 외 2권. 비평집 『시조의 아킬레스건과 맞서다』.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위원장.

 
 
 
 
 
남산모루는 동두천에 있는 지명이다. 전쟁이후 한동안 주둔했던 미군부대가 옮겨간 이후 동두천은 지금 환경 생태도시로 재탄생하고 있다. 서서히 그 인식이 옅어져 가고 있긴 하지만 동두천은 미군부대 주둔지라는 이미지가 강렬한 도시였다. 이 작품은 1연, 2연, 3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교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옛 집터’와 ‘들깨 꽃 향기’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부제 ‘동두천’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 지역 역사의 한 부분을 함의한다.   
 
동두천의 남산모루는 화자의 뇌리에 새겨진 아름답고 슬픈 연민의 대상이다. ‘문간방’은 큰 이모와 루시킴의 관계를 설정한다. 화자는 아마도 루시킴보다 나이가 적은 학생이지 않았을까? 루시킴은 고향에 있는 그리운 동생이 생각났을 지도 모른다. 혼자서 장구경 가기가 멋쩍었던 루시킴은 화자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부대가 떠나고 들깨 꽃 향기 가득한 그 자리는 나이 지긋한 화자에게 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이다.  
 
‘고향에 돈을 부치고 돌아서서 울었’던 루시킴은 그 시대의 상징이다. 어디 루시킴 뿐이었을까.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힘든 삶에 지칠 때면 돌아서서 울었던 우리들의 누나들이여! 그런 누나들의 얼굴에도 주름이 지고 이제 그 누나들도 추억을 회상하며 사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때 루시킴은 분명 콜로라도 비행기를 탔을 것이고, 지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멋진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손주들의 재롱을 즐기며 행복하게 늙어가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두자.
 
김삼환 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 편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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