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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의 퍼스펙티브] 협치 위한 ‘국민발안 개헌’은 시대적 요구

분열·대립에서 협치로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4년 전 총선에서 국민은 협치를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도 협치를 통한 상생의 정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대화와 협상은 실종됐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정치적인 고소와 고발이 난무했다. 싸움꾼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의 정치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가? 50%가 넘는 국회의원을 물갈이했지만, 정치가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국민 분열과 정치권의 극한 대립, 나라 존립 위태로워져
대의제의 결점 보완할 직접민주주의 제도적 도입 시급
대표성 없는 광장정치나 국민청원에 의존하는 건 위험
정쟁 지속때 국민이 국회 통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해야

17세기 영국 정치철학자 제임스 해링턴은 “좋은 사람이 좋은 법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역설했다. 흄과 칸트, 포퍼와 롤스가 뒤를 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나쁜 제도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도 나쁜 정치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국회는 똑같은 싸움판이 될 것이다. 이에 협치가 가능하도록 정치제도를 바꾸는 헌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다.
 
협치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거론된다.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되면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하거나 정쟁 등으로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경우에 전체 국민이 표결로 국회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국회에서 다수파는 소수파를 포용해서 협치를 하도록 압력을 받게 된다. 대통령이 국회의 여당을 장악해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도 통하기 어렵게 된다.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수년 전부터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와 우려도 적지 않다. 직접민주주의가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장의 집회를 직접민주주의로 보고 대의제를 보완한다고 말했다. 광장 집회를 직접민주주의로 보는 것은 심각한 사실 왜곡에 해당한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상징되는 광장 집회는 정치 실패의 병리 현상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며 직접민주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되면 광장 정치는 확 줄어들 것이다. 원전 문제나 교육 문제 등에 대한 공론화가 직접 민주주의로 둔갑한다. 공론화 결정은 국민 전체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선정된 ‘국민대표’의 결정에 불과하므로 또 다른 대의제에 불과하다. 청와대의 국민청원도 일부 국민이 국가기관에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직접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광장정치나 국민청원은 대표성이 없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적절한 지적이다. 하지만 최장집 교수가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광장 정치나 국민청원 등을 직접민주주의로 보고,직접민주주의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다. 최 교수는 의회 중심의 민주정치를 강조한 나머지 직접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학자에 속한다. 그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양립 불가능한 택일 관계로 본다.
 
의회정치를 강조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자동차의 엔진을 중요시한 나머지 브레이크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현대적 직접민주주의의 역사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최 교수는 직접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의 통치체제를 기본으로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광장에 시민이 모여 국사를 논의하는 원시적인 집회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이며 현대적인 직접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려면 협치를 강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배우 이시영 등이 사전 투표를 한 뒤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인증샷. [사진 인스타그램·트위터]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는 프랑스의 천재적인 학자이며 혁명가인 콩도르세가 구상한 정치 발명품이다. 콩도르세는 1792년에 지롱드 헌법의 초안자로 지명됐다. 그는 의회가 법률제정권을 갖는 의회 중심주의를 채택하면서도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면 국민의 자유가 위협을 받게 된다고 보았다. 국민은 의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한 국민 검열의 수단으로 거부권(국민투표권)을 가져야 하며 또한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의회를 전제로 하지 않는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도를 전제로 해서 그 결점을 보완하여 민의에 충실한 의회를 만들려고 한다. 대의제에 직접민주주의를 가미한 정치제도를 준 직접민주주의(halbdirekte Demokratie)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둘로 갈라져 있다. 조국 사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두고 여권의 국민과 야권의 국민이 대립한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분열된 국민이 다시 정치를 분열시키는 악순환이다. 국민을 통합해야 할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이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제대로 설계된 직접민주주의는 일부의 국민이 제기한 국정 현안을 깊이 있는 토론으로 숙성시키고 전체 국민이 표결로 결정하여 해결하는 국민통합장치다. 정치권의 협치를 강제하는 시스템이 된다. 최근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서 시민사회단체와 여야의 국회의원들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발안 개헌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맥락을 같이한다.
 
키워드
국민발안(國民發案·initiative)
일정 수의 국민이 헌법 개정안이나 법률안 등을 의회에 발의할 수 있는 제도. 국민 제안·국민 창안이라고도 한다. 이 제도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1792년 프랑스의 혁명헌법 제정 과정에서 처음 창안됐다. 우리나라는 제5차 개정헌법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만명 이상의 찬성으로 헌법 개정의 제안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으나, 현행 헌법에서는 채택하고 있지 않다.
스위스는 국민발안권 도입으로 대화의 정치 정착
스위스는 정치가 경제 발전과 국민 행복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나라에 속한다. 스위스는 권력자에 대한 불신을 제도화하여 철저한 권력 분립으로 승자독식 대신에 권력 공유를 택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는 대화와 협상의 정치를 일상화하는 협치 강제장치(Konkordanzzwang)가 된다.
 
스위스도 건국 초기에는 대의제 국가로 자유당이 70년간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권력을 독식했다. 정치가 경직됐다. 1891년에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발안권이 도입되어 정치의 경직성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1918년에는 국민발안으로 비례대표제가 채택됐다. 그 후 어느 정당도 의회의 30%를 넘지 못하는 다당제 국가가 되었다. 의회의 대표성은 강화됐지만, 정국 불안의 위험도 커졌다. 그래도 스위스의 정치가 안정되고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 것은 직접민주주의 덕분이다.
 
만약 의회의 다수파가 일방적으로 법률안을 통과시키면 찬성하지 않는 국민이 5만명의 서명을 얻어 국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고,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법률안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임의적 국민투표). 의회 다수파가 힘으로 몰아붙여 법률안을 의결해도 국민투표에 의해 거부당할 수 있으므로 의회의 소수파와 협력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된다. 또한 의회가 국민이 원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으면 10만명의 국민이 서명하여 헌법 개정안을 발안하여 국민 표결로 결정한다(국민발안). 의회에서는 국민발안이 제기되기 전에 국민 의사에 부응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해 정당들이 협력하도록 압박을 받는다.
 
스위스의 경제학자인 브루노 프라이 교수는 직접민주제를 많이 실시할수록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을 논증했다.  
 
베른대학의 아드리안 파터 교수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직접민주제를 많이 실시하는 지방일수록 경제 성장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직접민주제에 대해 스위스 국민은 1949년에는 50.7%만 찬성하였으나 오늘날은 80%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90년대 이후 스위스식 직접민주주의는 38개국으로 퍼졌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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