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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잊었는데 애국심 생겼다"···뭉클했던 우한교민과 합숙 2주

지난달 31일 자정부터 이달 14일 자정까지 꽉 채운 2주.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단절하는 ‘격리 수용’ 기간이었다. 전세기로 국내 수송해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에 수용된 우한 교민 700명 얘기다. 우리 국민의 한 사람인 이들이 안전하게 지내다 국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진천에서 도운 이들이 정부합동지원단 소속 공무원 29명이다. 의문과 우려에서 시작해 사명감과 뿌듯함으로 마무리한 지원단 소속 박동명 행정안전부 주무관의 2주 합숙 생활기를 들어봤다.

 

갑작스러운 통보

“우한 교민을 아산ㆍ진천에 격리 수용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남일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급작스레 차출 통보를 받았다. 행안부 공무원은 국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으레 차출되곤 한다. 26개월 배기 아들을 둔 아내가 붙잡았다.

 

“왜 하필 당신인지…. 아들도 어린데 꼭 가야 하나요?”

 
솔직히 찜찜했다. 전염병이 한창인 우한에서 온 교민들과 2주 동안 갇힌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니…. 태풍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검역 현장 지원 업무도 해봤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보다 가족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은 짐부터 챙기고 있었다.

 

“애가 어리다고 배려해 주는 상황이 아니라서…. 맡은 일이라 가야만 해.”

 

실감

교민보다 하루 먼저인 30일 인재개발원에 입소했다. 개발원 정문에 통제선을 그렸다. 교민이 묵을 방 청소를 하고, 시설에 문제는 없는지 점검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31일 교민 173명이 처음 입소하기 시작했다. 방호복을 입고 엘리베이터에서 객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스크를 쓴 채 캐리어를 끌고 온 교민들은 말 한마디 없었다. 가족끼리도 닿지 않으려 했다. 어떤 교민은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겠다고 고집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이런 거구나. 2주 동안 교민과 같이 먹을 도시락을 처음 받아들자 격리 생활이 실감 났다.

 

갇힌다는 것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세살 배기 아들을 위해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방호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박동경 행정안전부 주무관. [행안부]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세살 배기 아들을 위해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방호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박동경 행정안전부 주무관. [행안부]

교민과 직접 접촉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의사소통은 방문 앞 게시판에 붙인 쪽지로 가능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마다 돌면서 확인해보면 메모지마다 민원이 한 가득이었다. 좁은 방에 온종일 갇혀 있으려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주로 먹을 것, 마실 것을 달라는 민원이 많았다. 강제로 금연하는 어르신을 위해 금연용품과 패치를 지급했다.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넣어주기도 했다.

 
격리 생활이 익숙해진 걸까. 하루 70건 되던 민원이 일주일이 지나자 20건으로 줄었다. 임신부가 입덧이 심해 앰뷸런스로 실려 가고, 부친상을 당한 교민이 긴급 외출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순탄했다. 부친상을 겪은 교민은 발인 날인 15일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곧바로 상가로 향했다.

 

방호복의 무게

가장 고역인 방호복은 처음 입어봤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말 그대로 ‘온몸을 가리는’ 옷이었다. 입는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후드 모자에 마스크ㆍ고글까지 쓰고 나면 광대뼈 부분 일부를 빼고는 꽉 막혔다. 식사 시간마다 입고 벗고를 반복해야 했다.

 
도시락과 과일ㆍ떡 등 지원 물품이 박스째 들어오면 직원 29명이 하나하나 분류했다. 그리고는 하루 세 번 도시락이 든 수레를 끌고 2~6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방문 앞마다 도시락을 내려놨다. 처음엔 한 번에 두 시간씩 걸리던 일이 격리 생활이 끝날 때쯤엔 4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배달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건 그대로였다.

 

부치지 못한 답장

진천에 격리 수용한 우한 교민이 퇴소하며 박 주무관에게 남긴 쪽지. [행안부]

진천에 격리 수용한 우한 교민이 퇴소하며 박 주무관에게 남긴 쪽지. [행안부]

고비마다 감동의 순간도 있었다. 도시락 수레를 끌고 방문을 지날 때마다 아들과 같은 세 살 배기가 또박또박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래, 밥 맛있게 먹고 힘내”라고 답할 때마다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떠올랐다. 방문 앞에는 매일 “아이가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퇴소 날 교민이 남긴 편지가 수십장 쏟아졌다. 대부분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어려운 민원을 대하느라 고생하셨다”는 얘기도 많았다. 가장 뭉클했던 건 “오랫동안 떠나 나라를 잊고 살았는데 애국심이 생겨났다”는 내용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지냈기에 얼굴도 알 수 없고, 답장도 부치지 못했지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제가 좀 더 신경 써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처음 진천 인재개발원에 들어설 때만 해도 주변이 어수선했다. 주민 반대 시위로 입구에 트랙터까지 동원됐다. 공무원이지만 ‘이렇게까지 갈등을 겪으면서 꼭 교민을 데려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주를 함께 지내는 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잘못해서 격리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교민이 될 수 있다’

 
진천을 떠날 때쯤엔 공무원으로서, 특히 행정안전부 공무원으로서 사명감을 갖게 됐다. 한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떠올렸던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 이젠 좀 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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