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뿔난 민원인 달래고 차비 빌려주고…주민센터의 ‘친절왕’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28)

 
봄이 올 즈음이면 시골 사람의 발걸음이 잦은 곳 중 한 곳이 주민센터다. 따뜻한 미소로 국민을 아우르던 주민센터 분위기가 요즘은 냉랭하다. 모두 하얀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더 그렇다. 나는 마을 회의에서 건의된 회의록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마스크 안에 숨겨진 친절의 미소를 읽는다.
 
남편과 설악산을 한 달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치유센터 같은 곳에 장기 숙박을 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들러 며칠씩 함께 어울렸다. 그때 삼십 대 젊은 청년이 같이 머물렀는데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했다. 간암 판정을 받아 마음 치유 겸 강원도 여행을 왔단다. 나라 살림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그 청년은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완성하느라 밤낮없이 무리했더니 몸이 망가졌다고 한다.
 
함께 여행하며 공무원 삶의 숨겨진 이면도 이해하게 됐다. 가까운 주민센터 같은 곳을 가면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노는 것 같아(죄송하다) 참 편한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그 청년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청년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하고 있기를 기도한다.
 
가까운 주민센터 같은 곳을 가면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노는 것 같아 참 편한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한 청년과 함께 여행하며 공무를 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면도 이해하게 됐다. [사진 위키백과]

가까운 주민센터 같은 곳을 가면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노는 것 같아 참 편한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한 청년과 함께 여행하며 공무를 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면도 이해하게 됐다. [사진 위키백과]

 
나는 계약직으로 시골 면사무소에 3년을 근무한 적이 있다. 가끔 동네 어르신이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이런저런 상담할 일이나 서류 발급을  부탁했다. “어르신요, 이건 직접 가서 상담해야 확실하다고요. 같이 가세요”라고 하면 “그 양반들과는 대화가 안 통해”라고 손을 저으며 대신 부탁하곤 했다. 친절한 마음과 봉사 정신으로 나랏일을 한다는 사관공서지만, 나 역시도 왠지 어렵고 편안히 대화는 하기 힘든 곳이다.
 
어느 날 아랫마을 어르신이 농로보수에 관한 일을 알아봐 달라며 새벽부터 집으로 찾아왔다. 출근해 그 부서의 담당자를 찾아 상담했다. 갓 공무원이 되어 온 20대의 젊은 주사에게 상담하니 “그건 당장 안 됩니다”하고 말을 딱 잘랐다. 아니, 자른다기보다는 정답을 말한다. 멋쩍고 무안했다. 나이든 어른이 힘든 문제를 안고, 긴 시골길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와서는 이렇게 간단명료한 대답을 듣고 돌아서면 얼마나 헛헛하고 무안하겠는가 싶었다.
 
그 젊은 공무원의 상사가 무안을 감추고 있는 내게 눈치껏 슬쩍 물어본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어쩌고저쩌고, 다시 재방송한다. “거 참, 맞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무슨 방법이 있을까 더 생각해 봅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정이 아니란 걸 잘 알지만, 말 한마디라도 편안하게 상담할 여유를 주는 그분에게서 공무원의 자세를 보았다. 그날도 무언가로 화가 난 한 어르신이 젊은 주사와 대화 중에 막무가내 책상을 치고 고성을 지르며 ‘무조건’을 외쳤다. 그 상사가 나와 따뜻한 미소로 달랜다.
 
“어르신요, 우선 추운데 몸 좀 녹여서 이야기합시다요. 여기 좀 앉아서 쉬다가.” 그러면서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어르신요, 차비 안 갖고 오셨지요? 내 만원 빌려 드릴 테니 다음에 갖다 주시소. 차도 한잔하고요. 조심해서 가세요.”
 
돌아갈 길을 걱정하는 어른의 마음도 눈으로 읽는다. 문밖까지 따라 나가 배웅한다. 종일 떠들 것 같은 그 어른도 그렇게 조용히 돌아갔다. 사람의 마음은 참 묘하다. 그냥, 누군가가 내 억울한 심정을 들어주고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존경심을 갖게 된 그분은 지금 시골 동네의 면장이 됐다.
 
우리 동네가 다시 농사철이 시작되니 딱히 바쁠 것도 없지만, 왠지 어수선하다. 삶에 지친 국민의 민원을 아우르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쉬운 일 같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앉아 있는 사람이 서서 있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가 아니던가. 드디어 내 대기 번호표가 불린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