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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빅피처] 봉준호 감독의 쾌거와 아시아주의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봉준호 감독과 같은 차원과 범주에 속하는 놀라운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다. 맹활약으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준 손흥민·방탄소년단(BTS)·김연아·박태환·차범근 같은 인물들이다.
 

아시아 사람이라는 정체성 있어
봉 감독의 성과 중·일서도 기뻐해
브렉시트에도 지역주의 매력 여전
내셔널·글로벌리즘 사이 균형 필요

한국인이 기염(氣焰)을 내뿜을 때 중국인·일본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민족 차원의 권력 정치나 갈등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중국인·일본인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기뻐한다. 그들은 오로지 손흥민의 축구, BTS의 음악을 감상할 뿐이다. 한중·한일 갈등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일부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크고 작은 앙금이 있다. 그래서 ‘한국은 싫지만··· 인정한다. 솔직히 부럽다’고 한다. 또 감정을 극복하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축하한다’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 ‘아시아 정체성’은 상대적으로 좀 약한 것 같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의 쾌거에 우리는 관심이 덜한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 이룬 성과는 ‘···을 이룩한 최초의 한국 영화’로서 기념비적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최초의 아시아 영화’로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봉 감독의 이번 성과에 대해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많은 중국인·일본인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같은 아시아 사람, 같은 아시아 출신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분명히 있다. 희미하건 강하건. 정체성은 정치성을 낳는다. 예컨대 ‘유럽 정체성(European identity)’은 유럽연합(EU)이라는 정치체(polity)를 낳았다.
 
유럽주의를 낳은 유럽 정체성의 원천은 그리스로마 문명, 기독교 문명, 민주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 계몽주의와 같은 것들이다. 유럽주의는 유럽연합(EU)의 탄생에 기여했다. 아시아주의나 동아시아주의 또한 아시아연합, 동아시아연합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 수는 없다.
 
빅피처 2/15

빅피처 2/15

모든 정책이나 운동의 판단 기준은 시급성·중요성·현실성이다. 아시아주의는 시급성·중요성·현실성 면에서 다른 어젠다에 밀린다. 예컨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자리나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이 훨씬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주의를 적어도 당분간 무시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아시아주의라는 지역주의(regionalism) 중간 단계를 무시하고 글로벌리즘(globalism)에 주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기생충’이 공감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또한 ‘기생충’이 아시아적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적·보편적이기 때문이다. BBC 서울 특파원인 로라 비커는 11일 자 “기생충: 오스카 승리는 한국 영화에 무슨 의미인가”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계급전쟁(class warfare)에 대한 것이다. 부자와 빈자라는 보편적인 테마에 관한 것이다. 보편적인 테마이기 때문에 이 한국 이야기는 세계 곳곳의 청중들에게 공명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지역주의가 주춤하고 있다. 얼핏 보면 유럽 회의주의(Euroscepticism)가 대세처럼 보인다. 아시아주의를 토대로 한 아시아연합 구상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아시아회의주의’에 빠질 형국이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이미 영국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재가입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우리가 아시아주의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아시아 정체성이 희미하나마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아시아주의 가능성과 향방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2월에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CSIS)가 발간한 ‘아시아주의와 보편주의(Asianism and Universalism)’는 아시아주의를 “아시아국가들이 아시아적 문화적·정치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 혹은 전제”라고 정의하며 아시아주의가 ‘민주적인 규범의 보편성’과 충돌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미국 입장에서 아시아주의는 중국을 연상시킨다. 권위주의와 친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모르는 척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주의 운운하다가는 미·중 갈등을 격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조용한 아시아주의’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 아시아주의다. 보편주의와 잘 어울리는 아시아주의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는 주장은 지금도 현실성이 있을까. ‘아시아의 세기’는 어쩌면 희미해진 프로젝트다. 중국의 ‘중국몽’ 구상 때문에 상당히 ‘때 묻은’ 미래 비전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주의가 필요하다’고 외치겠다. 아시아주의는 유럽주의와 상당히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유럽은 ‘유럽의 세기’에, 유럽이 한참 잘 나갈 때 군사적으로 치고받고 싸웠다. ‘아시아의 세기’에 우리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인간 활동 영역에 K를 접두사로 붙이는 게 유행이다. K팝, K푸드, K패션… K드라마, K무비… K아시아주의는 어떨까. K아시아주의는 K내셔널리즘, K글로벌리즘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것이다. K아시아주의는 또한 신채호 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아시아주의적 담론에서 영감을 얻을 것이다. 특히 만주족도 우리 민족이라고 설파한 박은식 선생의 『몽배금태조』을 심각하게 읽을 것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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