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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백남준 진가 알아본 정기용, 손수 장본 미식가

예술가의 한끼

정기용과 프랑스 화상 장 푸르니에. 파리 장 푸르니에 갤러리, 1995년. [사진 임영균]

정기용과 프랑스 화상 장 푸르니에. 파리 장 푸르니에 갤러리, 1995년. [사진 임영균]

감성을 가치의 우선으로 여기는 미술계에는 미식가가 많다. 미술인들은 열이면 열, 최고의 미식가로 정기용(1932~)을 꼽는다. 미식가 이전에 그는 최고의 갤러리스트이기도 하다.
 

작가와 컬렉터 잇는 갤러리스트
김종영 조각품도 첫 본격 수집
현대미술·고미술에 두루 정통

경동시장서 작품 찾듯 시금치 골라
인천 출신답게 미식가 DNA 자랑
검약·호사 오가는 소확행 실천자

어느덧 이 땅에도 근대적 의미의 화랑의 역사가 출발한 지 꽤 됐다. 파리에 입체파를 키운 불세출의 화상(갤러리스트) 칸바일러(1884~1979)가 있었다면 이 땅에는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명동화랑의 김문호, 단색화 등 현대미술을 국내 미술의 주류로 부각시킨 현대화랑의 박명자. 도널드 저드를 유치한 인공화랑의 황현욱, 모범적인 작품 기증을 실행한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등 미술생태계를 풍성하고 기름지게 만든 화상들이 적지 않다.
  
1984년 원화랑서 백남준 국내 첫선
 
백남준(가운데)과 함께한 정기용(왼쪽). 오른쪽은 현대화랑 박명자.

백남준(가운데)과 함께한 정기용(왼쪽). 오른쪽은 현대화랑 박명자.

여기에 정기용이란 존재가 당연히 선두를 장식해야 하지만 그의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은 미술계에서 의외로 적다. 정기용과 그의 원화랑을 안다고 한다면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미술계 내부의 깊은 사정까지 정통한 전문가라고 봐야 한다. 분명한 건, 칸바일러에게 피카소가 있었다면 정기용에게는 김환기, 백남준, 조각가 김종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기용은 김환기의 부인인 김향안의 신임을 얻어 뉴욕에 있는 김환기의 많은 작품을 서울에 소개했고 필경에는 부암동 환기미술관의 개관에 큰 힘까지 보태었다. 백남준과는 생일이 하루 빠른 동갑내기다. 1983년 파리의 화가 김창렬의 아파트에서 백남준, 정기용, 박명자, 화가 정상화 등이 모였다. 84년 정초에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 등과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백남준이 호소했다. 정기용이 세 사람의 판화를 다량 사 주어 자금이 일정부분이 해소됐다. 84년 2월 백남준을 비롯한 이들의 판화 3인전이 원화랑에서 열렸다. 백남준의 미술작품이 국내에 전시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전적인 교양이 몸에 밴 현대조각가 김종영의 진가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는 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컬렉션한 것도 정기용이 처음이다. 정기용은 작품을 자주 팔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뛰어난 역량의 개성적인 작품을 남들보다 빨리 컬렉션하여 진득하게 묵혀 두는 걸 선호하기에 그를 화상이 아닌 컬렉터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왼쪽 건물 2층이 정기용의 인사동 원화랑 자리. [사진 황인]

왼쪽 건물 2층이 정기용의 인사동 원화랑 자리. [사진 황인]

인사동 사거리에서 낙원상가로 빠지는 길 오른쪽 2층의 원화랑은 거인의 화랑치고는 너무나 협소했다. 전시공간은 10평을 겨우 넘길 정도였다. 국내외의 저명한 미술가들이 이 작은 공간에서 자신의 전시를 갖기를 희망했다. 장 푸르니에 화랑은 파리의 68학생운동 즈음에 미술운동 쉬포르 쉬르파스를 이끌었다. 화상 장 푸르니에(1922~2006)와 쉬포르 쉬르파스의 화가 클로드 비알라(1936~), 피에르 뷔라글리오(1939~)는 정기용과 호흡이 척척 맞았다. 넘치는 표현을 자제하고 자그마한 아름다움의 발견에 감사하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닮았다. 서울과 파리, 님므를 오가며 우정을 나누었다.
 
비알라는 남프랑스 님므의 투우박물관 관장도 겸했다. 서울을 방문하면 정기용과 함께 장안평 골동품 상가로 가서 워낭, 코뚜레 등을 사서는 프랑스로 가져갔다. 정기용은 특이하게도 고미술과 현대미술 모두에 전문적 지식과 안목을 가진 국내 유일의 화상이었다. 고교생 시절부터 고미술 수집에 관하여 전문적 식견을 키워 왔다. 서울대 불문과에서 서구의 교양을 익혔다. 김환기가 백자의 취향 속에서 세계 보편적 미감을 일구어 나갔듯, 정기용도 골동의 낡은 시간 속에 숨어 있는 인류의 보편적 미감을 건져 내어 국제성을 지닌 현대미술로 시공간을 확대했다.
 
원화랑 근처의 골목에는 아침에 나타났다가 저녁이면 사라지는 이동이발관이 있었다. 이 골목이발관의 단골이자 애호가인 정기용이 하얀 이발 가운을 쓴 채 얌전하게 나무 의자에 앉아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띠는 모습은 인사동의 풍경소품이 됐다.
 
정기용은 평생 자가용과 인연이 멀었다. 한때 잠시 자동차에 기사를 둔 적도 있었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결국 포기했다. 양복저고리 속에 버스표를 잘 접어 넣고는 한 장씩 잘라 내어서 쓰는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지금도 버스와 지하철이 그의 이동수단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길 위에 펼쳐진 변화무쌍한 세상을 구경하며 날마다 바뀌는 공기를 만끽할 줄 아는 천성에는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가 딱 어울렸다.
 
인천 출신답게 그는 생래적인 미식가였다. 인천을 대표하는 미식가로 『먹는 재미 사는 재미』(1989)의 저자인 의학박사 신태범(1912~2001)이 있다. 청년 정기용의 결혼식 주례는 신태범이 맡았다. 신태범, 미술평론가 이경성 등과 함께 정기용은 인천 미식문화의 유전자를 충실하게 공유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일찍부터 인천 남자에게는 손수 장을 보러 다니는 문화가 있었다. 정기용은 가성비가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청량리 경동시장을 자주 찾았다. 박수근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좌판을 펴고 나타난 할머니 행상에게서도 용케 훌륭한 식재료를 구해 낸다. 시금치 한 단을 사더라도 발품을 팔아 경동시장의 수많은 가게 중에서도 최상의 물건을 적절한 가격으로 구하는 걸 보람으로 삼는다. 그에게는 좋은 그림 하나를 발견하는 일과 좋은 시금치 한 단을 구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구순 앞둔 지금은 칠레산 와인 즐겨
 
정기용과 예술인들. 오른쪽부터 심문섭·박서보·정기용·도진규·이우환·김창렬·박명자·김서봉. [사진 현대화랑]

정기용과 예술인들. 오른쪽부터 심문섭·박서보·정기용·도진규·이우환·김창렬·박명자·김서봉. [사진 현대화랑]

국내에 소믈리에라는 말이 생소하던 80년대에 이미 와인에 관해선 거의 국내 최고의 지식과 미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가의 최고급 와인을 마실 때도 있지만 기막힌 안목으로 만원대 칠레산 중저가 와인에서도 명품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사람들을 모아 한 시간이나 차를 타고 의정부 도축장 부근의 식당에 가서 서울 도심보다 싼 가격의 등심, 간처녑, 특수부위에 고급와인을 마시는 호기를 부릴 때도 있었지만 정기용의 미식은 만한전석의 스타일은 아니다. 소박한 백반집에서 의외의 알찬 반찬 하나를 발견하는 걸 더 좋아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기내식에도 감사한 표정으로 와인 한 잔, 커피 한 잔까지 천천히 음미하며 즐긴다. 남기는 건 없다. 어쩌다 설탕봉지 하나라도 남으면 챙겨서 파리의 숙소로 가져가 활용한다. 편향된 호사를 과시하는 일은 결코 없다. 적은 돈과 성실한 노력으로 신기한 것과 맛있는 것을 보고 즐길 줄 아는 소확행의 실천자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검약과 호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초월을 향했다.
 
절약이 몸에 밴 생활이지만 그림을 살 때는 통이 컸다. 그렇게 산 아파트 몇 채 가격의 작품들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의 과묵한 체질이 언제 어디에 무얼 기증했는지를 모르게 했다.
 
현대미술의 국내 소개만 해도 바쁠 터인데 왜 고미술까지 그리 열심히 연구하는지에 대해 후학이 물었다. 정기용 왈, “이게 옛날 옛적 골동품으로 보이지만 당대에는 최첨단의 현대미술이었어.” 인류의 끈질긴 욕망인 미술의 정체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이라는 극단의 두 지점을 관통하는 기나긴 시간의 축 위에서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은 그 시간의 축마저 허물고 은거에 들어갔다. 가끔 산책을 겸해 칠레산 와인을 사러 나간다. 소파에 앉아 젊은 날, 자신과 함께했던 작가들의 몇 개 남은 작품을 보는 게 낙이다. 허물어진 시간의 축이 뷔라글리오의 작품 속 푸른색 유리를 통과하자, 미세한 가루로 부서져 드디어 맑고 투명한 허공이 됐다. 그의 노경이 꼭 이랬다.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문학·무용·음악 등 다른 장르의 문화인들과도 교유를 확장해 나갔다. 골목기행과 홍대 앞 게릴라 문화를 즐기며 가성비가 높은 중저가 음식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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