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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이 난상토론’ 펼치는 인포랩, 최강자 구글의 요람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구글 탄생 비화

그래픽=전유리 jeon.yuri1@joins.com

그래픽=전유리 jeon.yuri1@joins.com

디지털 대전환의 진앙인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데이터와 AI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차상균 서울대 교수는 새로 시작한 플랫폼 연구를 기반으로 ‘무모하게’ 실리콘밸리에 창업을 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SAP 덕분에 유럽으로까지 디지털 여행을 하게 된다. 이후 중국의 초청을 받아 오가며 미국, 유럽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한다. 그가 누비고 다닌 디지털 세계를 걸리버의 시각으로 전한다. 
 

스탠퍼드 대학원생 페이지·브린
1998년 창의성·용기로 도전장

연구의 미래 임팩트 중시한 학풍
위더홀드·얼만 교수는 선견지명

개방·다양성 존중하는 문화 풍토
의식 대전환, 포용 리더십 배우길

디지털 플랫폼이 개인의 일상은 물론 모든 산업과 경제, 사회 패러다임까지 바꾸는 대전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삼위일체가 이 디지털 플랫폼을 이룬다.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처리하고, 인간의 지적활동의 산물인 데이터에서 AI가 사람의 행동을 학습해 모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지털 대전환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앞서가느냐의 문제가 돼 버렸다. 또한 규모와 속도, 타이밍의 게임이다. 미국이 구글·아마존·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대기업과 새로 생겨나는 스타트업, 혁신적 대학이 어우러진 실리콘밸리 생태계 중심으로 이 대전환을 이끌고 있다.
  
혁신 대학, 창의·창업 열정 증폭시켜
 
스탠퍼드에 전시돼 있는 래리 페이지가 만든 최초의 구글 스토리지 서버. 상용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 차상균]

스탠퍼드에 전시돼 있는 래리 페이지가 만든 최초의 구글 스토리지 서버. 상용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 차상균]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에서 구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가총액 1조 달러 이상이다. 최고의 인재 풀과 원천 기술,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 덕분이다. 그러면 이 구글은 어떻게 태어나 우리의 미래를 지배할 기업이 되었을까? 역사는 1998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었던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주목한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을 여는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젊은 창업자들의 창의성과 열정을 증폭한 혁신 대학의 축적된 에너지를 주목해 보고자 한다.
 
“너희들 창업한다면서?” “기술이전본부(OTL)와 협의는 잘 됐니?” 98년 8월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 스탠퍼드대의 인포랩(Info Lab) 주례 미팅에 참석한 후배들의 대화였다. 구글은 이렇게 스탠퍼드 대학원생 래리와 세르게이에 의해 시작되고 있었다. 인포랩은 필자의 지도교수인 지오 위더홀드와 제프 얼만 교수가 만들었다. 위더홀드 교수는 76년 만 40세에 늦깎기로 UCSF에서 메디컬 데이터베이스에서의 지식 발견(머신 러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스탠퍼드대 교수가 된 탁월한 통찰력을 갖춘 학자다. 반면 얼만 교수는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머신 러닝 등 컴퓨터과학의 다방면에서 뛰어난 이론적 업적을 이룬 대가다. 92년 위더홀드 교수의 제자 헥터 가르시아-몰리나 교수가 프린스턴대에서 옮겨 오고 현 스탠퍼드 공대 학장 제니퍼 위덤 교수가 93년 IBM에서 오면서 그룹이 확장됐다.
 
혁신은 개방과 다양성에서 싹튼다. 위더홀드 교수는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기업의 연구자들이 모여 경계 없이 토론하는 인포랩 세미나를 만들었다. 스탠퍼드 방문 교수로서 이 과목을 일 년 동안 맡은 적이 있는 필자는 당시 기술 혁신의 흐름을 생생하게 파악하게 됐고 이 경험은 필자의 실리콘밸리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인포랩에는 추종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었다. 위더홀드 교수는 일찌감치 미래를 내다보고 데이터베이스와 AI를 융합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머신 러닝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또 하드웨어의 발전이 소프트웨어에 미치는 영향을 내다보고 값비싼 서버를 개인용 PC로 갖춰 놓고 미래의 데이터 기반 지능 서비스 시대를 준비했다. 무엇보다 대학원생들에겐 지도교수와 논의해 ‘와일드’한 연구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필자도 자연어 질의 응답 시스템을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구현하는 연구 주제를 택했다.
 
92년 위더홀드 교수는 미 국방부 연구비지원기관 DARPA에 지능정보통합 책임자로 파견을 가게 된다. 위더홀드 교수는 당시 초창기의 WWW에 있는 텍스트, 이미지를 비롯한 비정형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검색하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연구재단(NSF),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디지털 라이브러리 이니셔티브(DLI)를 만들게 된다. 산업계가 기업에서 늘어나는 정형 데이터베이스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때에 비정형 데이터와 비전통적 분산 인프라를 가정한 DLI 연구 방향은 신선한 파격이었다.
 
래리 페이지(左), 세르게이 브린(右)

래리 페이지(左), 세르게이 브린(右)

스탠퍼드를 비롯한 6개 대학의 참여가 결정되고 스탠퍼드에서는 인포랩의 가르시아-몰리나 교수와 자연어처리 대가로서 ‘휴먼 컴퓨터 상호작용(HCI)’으로 연구 방향을 바꾼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가 공동책임자를 맡았다. 두 사람은 각각 세르게이와 래리의 지도교수였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웹페이지 크롤링 시스템을 개발하고 검색 결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페이지 랭크(Page Rank) 알고리즘을 만들어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스탠퍼드대 내부 웹페이지가 분석 대상이었다. 이후 대상을 확대하려고 하자 컴퓨터 용량이 문제가 됐다. 가르시아-몰리나 교수로부터 부족한 컴퓨터를 사기 위한 예산을 승인받은 래리는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 용량을 갖추기 위해 학교 인근의 전자매장에서 부품을 직접 사서 컴퓨터를 조립하고 껍데기를 레고 블록으로 둘러싸게 된다.
 
주어진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웹페이지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래리와 세르게이는 값싼 컴퓨터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하나의 컴퓨터처럼 보이게 하는 인프라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상용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작이다. 당시 시장을 선도하던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비싼 서버와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의 조합과 비교해 봐도 이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98년 9월 래리와 세르게이는 창업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체리튼 교수를 찾아간다. 81년 스탠퍼드대에 부임한 체리튼 교수는 분산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새로운 컴퓨팅 환경에서 개발해 실험적으로 연구하는 컴퓨터 과학자였다. 당시 대학원생으로 같은 층에 실험실을 두고 있던 필자도 체리튼 교수 세미나에 종종 참석했다. 이때 배운 분산시스템의 근본이 후에 필자의 실험적 연구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더 많은 논문을 낸 조교수가 동일 분야에 있었지만 스탠퍼드대는 논문보다 실험적 연구로 미래에 더 큰 임팩트를 보일 가능성이 있는 체리튼 교수에게 테뉴어를 주었다. 십년 후 역사는 스탠퍼드가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게 된다.
  
체리튼·벡톨샤임도 구글 창업에 한몫
 
95년 초 체리튼 교수는 선마이크로 시스템을 창업했던 앤디 벡톨샤임 박사와 함께 혁신적인 기가비트 이서네트 기술로 그래나이트시스템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18개월 만인 96년 9월 시스코에 2억2000만 달러에 인수된다.
 
“베이비를 가졌으면 잘 키워야 해.” “펀딩이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니야. 회사를 잘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어.” 체리튼 교수는 이렇게 조언하고 벡톨샤임 박사를 소개한다. 80년대 초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서 새로운 네트워크 컴퓨터를 연구 개발해 선마이크로 시스템을 창업한 벡톨샤임 박사는 두 대학원생의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와 세르게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연구 열정, 실력,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구글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DLI를 만드는 데 앞장선 위더홀드 교수의 선견지명, 래리와 세르게이를 품어 키운 스탠퍼드대학과 지도교수, 개방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안 가 본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포랩 문화, 논문 업적보다 연구의 미래 임팩트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다리는 학풍 등 스탠퍼드대에 오랫동안 축적된 성공 에너지가 없었다면 그 씨앗이 쉽게 잉태되고 키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 혁신의 역사를 우리나라와 아시아에서 반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스탠퍼드 박사 졸업자들은 대학과 대기업으로 진출했지만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스타트업을 꿈꾸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됐다.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는 의식의 대전환과 이를 이끌어 나갈 리더십이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 실험실을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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