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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45억 돈냄새에 계약 날아갔다···마스크 200만장 눈물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다(마스크 생산업체 대표).”

[내러티브 리포트]

 
재난은 아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의 기회다. 매정하지만 현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공포가 휘몰아친 지금은 마스크에서 돈 냄새를 맡은 기업인들의 물밑 거래가 한창이다. 싼값에 사들인 마스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비싸게, 뭉텅이로 파는 게 그들에겐 지상 과제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인 가운데 중앙일보에 한 통의 제보가 도착했다. 유통업체 대표 김모씨와 마스크 생산업체 대표 임모씨 사이에서 마스크 200만장 공급 계약 파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이다. 사건을 뜯어보니 전염병이란 재난 상황에서 마스크 계약을 둘러싸고 빚어낸 인간의 욕심, 갑을 관계를 둘러싼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세계, 법이 지켜줄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탄식이 여지없이 묻어났다. 당사자 취재와 입수한 녹취록, 동영상을 바탕으로 최근 보름간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냈다.
 

김씨, 돈 냄새를 맡다

김씨는 흔히 말하는 ‘도매업자’다. 주로 한국 업체에서 스타킹부터 모자까지 각종 생활용품을 떼서 중국 거래처에 팔아 왔다. 김씨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3일 TV를 보다 눈이 번쩍 띄었다. 중국 곳곳에서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화면 가득 마스크를 쓴 인파가 등장했다. 머지않은 시일 내 마스크 대란을 직감했다. 설 연휴를 포기하고 마스크를 댈 수 있는 공장을 찾아 나섰다.
 
경기도·강원도 일대를 뒤져 수소문한 끝에 찾은 마스크 공장 5곳은 이미 중국에 물량을 넘기기로 한 뒤였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경기도 포천에서 임씨가 마스크를 만드는데 거기 한 번 연락해보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임씨에게 연락한 뒤 연휴 중인 28일 공장에 들렀다.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스크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스크가 돈다발로 보였다. 임씨와 30일 계약하기로 하고 공장을 나섰다.
 

현금 3억1200만원을 구하라

연휴가 끝난 직후 신종 코로나 뉴스가 쏟아졌다. 김씨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30일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계약서부터 썼다. 이미 구두로 합의한 내용이기에 일사천리였다.
 
‘임씨는 김씨에게 마스크 1개당 312원에 200만개를 공급한다. 2월 12일까지 100만개, 16일까지 100만개를 납품한다. 김씨는 계약과 동시에 임씨에게 대금의 50%를, 납품을 완료했을 때 나머지 50%를 지급한다. 계약을 어길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 대금은 총 6억2400만원. 50%인 3억1200만원은 이날 임씨가 요구하는 대로 현금으로 건넸다. 1억원은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지인에게 급히 빌렸다. 
 

임씨, 더 진한 돈 냄새를 맡다

임씨의 공장에서 갓 생산한 마스크. [김씨 제공]

임씨의 공장에서 갓 생산한 마스크. [김씨 제공]

임씨는 뉴스에서 연일 ‘마스크 대란’ 기사가 쏟아질 때마다 찜찜했다. 건너 소개받았다는 도매업자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비싼 값을 치러줄 테니 마스크를 넘길 수 없느냐”는 제안이었다. 아차 싶었다. ‘내가 괜히 섣불리 계약했나….’ 1장당 900원에 사겠다는 중국인 도매상까지 나왔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3일 뒤인 지난달 2일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건을 못 댈 거 같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

김씨는 곧바로 임씨가 있는 마스크 창고로 달려갔다. “대체 무슨 문제냐”고 따져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중국인 도매상 2명이 돈다발이 든 대형 가방을 들고 임씨 뒤를 서성였다. 마스크 1장에 900원, 500만장을 45억원에 사겠다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김씨는 통사정했고, 임씨는 단호했다.
 

“만약 사장님이 계약을 못 하겠다 했으면 다른 공장을 찾았을 겁니다. 이미 중국 바이어들과 얘기가 다 돼 있는데 계약을 깨면 우린 어떡합니까(김씨).”

 

“계약을 깬 법적 책임을 지겠습니다. 6억2400만원 위약금을 물더라도 제 입장에선 30억 정도 순 마진이 남습니다. 1억~2억이면 몰라도 30억입니다. 제가 사업하면서 이렇게까지 큰돈을 벌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임씨).”

 

“너무합니다. 저희도 중국 거래처에 배상을 해줘야 합니다. 상도(商道)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김씨).”

 

“제 이득이 크기에 상도를 버리기로 한 겁니다. 저도 고민했지만, 욕심이 너무 많이 나서 떨칠 수가 없습니다. 눈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계약서에 있는 내용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신다면 소송을 걸어 주십시오(임씨).”

 
벽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결국 임씨는 김씨가 보는 앞에서 중국 상인과 500만장 공급 계약을 맺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다들 각자의 욕심을 좇는구나’.
 

씁쓸한 진행형

임씨의 마지막 통보는 “900원에 가져갈 수 없다면 계약을 깰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현재로썬 돈이 없다. 제발 소송을 해달라”며 위약금마저 못 내겠다고 한다. 나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달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법은 누굴 지켜주나. 변호사에게 상담부터 받았다. 하지만 임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더라도 계약서에 따른 위약금 전부를 받는 것 외에 거래처 단절 같은 2차 피해까지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는 무엇일까. 마스크 수급안정조치를 하고, 매점매석(買占賣惜·사재기)을 단속한다더니 장사치끼리 거래는 손댈 수 없는 걸까. 김씨는 지난 8일 임씨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했다. 오늘도 식약처에 전화를 걸었다. “조사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가 사기로 한 마스크 200만장은 조만간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향할 것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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