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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포기 A씨 여성" 판사들 이 판단 뒤엔 24년 논쟁 있었다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숙명여대 합격을 포기한 A씨는 법적으로 완벽한 여성입니다."
 

대법원 "성별 판단, 생물학적 요소가 전부 아니야"

한 현직 여성 판사와 전직 여성 검사의 법적 판단이다. 이 문장에는 지난 24년간 대법관과 하급심 판사, 검사들이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성별과 권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던 모든 논쟁이 함축돼있다. 
 

판사들의 24년 논쟁 

대법원은 지난 1996년과 2006년, 2009년, 2011년에, 하급심 법원은 2013년과 2017년에 성전환자에 대한 유의미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은 시대에 따라 성전환자에게 포용적으로 바뀌었다. 201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성기 제거 수술을 하지 않은 여성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까지 허가했다. 
 
하지만 A씨의 숙대 입학을 반대하는 일부 페미니즘 단체들은 "한국에서의 성별 변경은 판사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법원의 성별 변경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판단은 정말 자의적인 것일까. 중앙일보가 지난 24년간 이뤄진 법원의 성전환 논쟁을 살펴봤다. 
 
성전환자 관련 대법원 주요 판결의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성전환자 관련 대법원 주요 판결의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996년 대법관과 2020년 페미니즘 

1996년 대법원은 성전환자에 대한 첫번째 판결을 내린다. 정귀호 대법관 등 당시 4명의 소부 남성 대법관은 "성전환자 여성은 강간의 객체인 부녀(婦女)가 될 수 없다"며 성전환 여성을 강간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여성에 해당하는지는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 요소로 하여 사회생활에서의 주관적, 개인적 성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성 결정에서 생물학적 요소를 사회적 요소보다 중시한 것이다. 
 
이는 현재 일부 페미니즘 단체들이 여대 입학조건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이들은 숙명여대에 입학하려 한 A씨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어도 남성의 XY염색체를 가졌으니 여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24년 전 주장과 논리가 유사하다. 
 

생물학적 구분을 넘은 2006년 

하지만 10년 뒤인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에 대한 기존 판례를 뒤집는 파격적 결정을 내린다. 호적상 여성으로 기재된 남성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한 것이다. 하급심의 불허 결정을 뒤집는 파기환송이라 여파가 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6년 6월 22일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신청 사건에 대한 공판을 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右)이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내라는 결정문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6년 6월 22일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신청 사건에 대한 공판을 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右)이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내라는 결정문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다수의견은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소수의견에 섰던 손지열, 박재윤 대법관은 "성전환자의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성 변경에 대한 입법 조치가 우선"이란 의견을 냈다. 
 
이 판결이 내려진 3년 뒤인 2009년, 대법원 소부는 강간 피해자인 여성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로 인정하며 1996년 판결을 뒤집었다. 한 여성 판사는 "형법상으로 성전환자가 완벽한 여성임을 인정받은 판결"이라 말했다. 국회는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13년, 형법에서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개정한다. 해당 판결들을 분석한 논문을 펴낸 황미정 판사(36·연수원 40기)는 "1996년과 2006년 판결 사이에 성전환증과 관련한 사회적, 의료적, 학문적 연구들이 이어지고 성소수자의 보호운동이 시작되었다"며 판결의 변화 속에 달라진 시대상을 언급했다.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지난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지난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계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의 한계를 제시하며 권리의 한계를 설시하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은 이미 결혼해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여성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허가하지 않았다. 이미 결혼한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인식까지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법원은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 관계의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지 않는 한"이란 성전환자의 성별 전환의 조건을 제시한다.
 
2011년 이후 대법원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의미 있는 판단을 내린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하급심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전향적 판결이 내려지며 상급심까지 올라간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서부지방법원은 성기 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 성전환자(여성→남성)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고, 201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성기 수술을 하지 않은 여성 성전환자(남성→여성)의 성별 정정도 허가해줬다. 검찰 출신인 오선희(47·연수원 37기) 변호사는 "이제 법원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만을 절대적 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숙대 입학을 포기한 A씨가 롤모델이라 밝힌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의 모습.

숙대 입학을 포기한 A씨가 롤모델이라 밝힌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의 모습.

다시 시작된 논쟁  

성전환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들의 권리에 일정한 한계를 두고 수용하는 것으로 일단락된 상태다. 재경지법의 또다른 여성 판사는 "기존 법리를 바탕으로 하는 법원의 속성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며 "그런 법원에서도 성전환자를 사회규범적 여성으로 완전히 받아들인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최근 성전환 수술 뒤 재입대 의사를 밝힌 변희수 하사와 숙대 입학을 포기한 성전환자 A씨 논란 이후 성전환자에 대한 일부 페미니즘 단체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이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 위원장이자 성소수자인 김조광수 감독은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페미니즘 단체들이 페미니즘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진 않는다"면서도 "성별의 기준을 염색체 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비춰봐도 대단히 협소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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