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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일 익힌 술 증류한 71.2도 ‘귀주’…“뱃속에 꽃이 활짝”

[이택희의 맛따라기]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삼해주

은 3560g으로 만든 솥에 소줏고리를 걸고 전통방식으로 내린 삼해소주를 병에 받는 김택상 명인. 김경빈 기자

은 3560g으로 만든 솥에 소줏고리를 걸고 전통방식으로 내린 삼해소주를 병에 받는 김택상 명인. 김경빈 기자

71.2도. 증류주 도수다. 우리나라 술이다. 지난해 1월 31일 공방에서 이 술을 빚는 분이 따라줘서 맛을 봤다. 입에서는 향긋하고 알싸하던 술이 목을 넘어가서는 폭포수인 듯 아득한 곳에 꽂히면서 술기운이 안개처럼 피어났다. 시음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찾아왔던 한 유럽 사람은 “꽃봉오리가 뱃속에 들어가더니 꽃이 활짝 피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대 이은 기능보유자 김택상 소주장
음력 정초부터 돼지날 세 차례 담가
36일마다 덧술 두 차례, 4월에 걸러

저온서 오래 발효해 순하고 깊은 맛
고려 때 애주가 이규보 시에도 등장

쌀로 빚은 삼해주 약주를 증류한 ‘삼해귀주’라는 소주다. 국내 소주 가운데 도수가 가장 높다. 도수와 비교하면 맛은 순하고 깊다. 구수한 누룩 향이 올라오고, 쓴맛이 스쳐 가면 뒷맛은 달다.
 
이 술을 빚는 김택상(69) 소주장은 “취하도록 마시는 술이 아니다. 일반 술을 마시고 입가심으로 한두 잔, 아니면 잠들기 전에 한 잔을 조금씩 나눠 마시는 게 좋다. 안주는 맵짠 음식보다 순한 걸 먹어야 술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권했다.
 
그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주 기능보유자(소주장) 겸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제69호이다. 1993년 지정받은 어머니 이동복(93) 여사가 연로해 2017년 기능보유자 대를 이었다.
  
옛날식 대로 삼해주 첫술 담그기 행사
 
멥쌀가루 죽에 누룩을 섞고 치대는 밑술 작업. 김경빈 기자

멥쌀가루 죽에 누룩을 섞고 치대는 밑술 작업. 김경빈 기자

여러 기록을 보면 삼해주는 음력 정월 첫 돼지날(亥日) 첫술을 담그고 다음(또는 다음달) 돼지날 덧술을, 그 다음(또는 다음달) 돼지날 두 번째 덧술을 담근 후 그 다음(또는 다음달) 돼지날에 술을 뜨는 삼양주다. 돼지날은 12일마다 돌아오고, 매달 첫 돼지날은 36일마다 돌아오므로 짧게는 36일, 길게는 108일이 걸린다.
 
고려 시대 ‘국(麴)선생전’을 쓴 애주가 이규보(1168~1241)의 시에도 나오는 삼해주는 조선 시대 여러 조리서에 기록돼 있고 전국 곳곳에서 담갔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가느다란 명맥을 잇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소주장·약주장으로 나뉘어 지정돼 있다.
 
저온·장기 발효를 특징으로 하는 삼해주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요즘에는 연중 아무 때나 담그지만, 예전에는 음력 정월부터 4월 사이에만 담갔다. 옛날 법식에 따라 삼해주 첫술 담그기 행사가 올해 음력 정월 첫 돼지날인 지난 2일(음력 1월 9일 을해) 서울 종로구 원서동 ‘삼해소주가’에서 열렸다. 김 명인에게 삼해주를 배우려는 ‘삼해주 아카데미’ 수강생 20명이 함께 했다.
 
71도 넘는 ‘귀주’를 옹기 술춘에 담아 숙성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71도 넘는 ‘귀주’를 옹기 술춘에 담아 숙성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 술은 3월 9일(음력 2월 15일 신해) 1차 덧술, 4월 14일(음력 3월 22일 정해) 2차 덧술을 담그고 5월 20일(음 4월 28일 계해) 맑은술을 뜰 예정이다. 1월 27일 담근 밑술부터 114일이 걸리는 것이다. 맑은술을 아람빅 동(銅)증류기를 이용해 상압식으로 증류해야 삼해소주가 완성된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온도는 영상 10도로 맞춘다. 그 술을 빚는 과정에서 돼지날보다 중요한 것은 술이 익는 정도다. 매일 항아리 속을 살피고 맛을 보면서 술이 절정에 이를 때를 기다린다. 단계별로 평균 30~36일 걸린다. 김 명인은 “이번에는 정해진 날짜를 꼭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돼지날을 맞추는 것이 예삿일은 아님을 방증하는 독백으로 들렸다.
 
사흘에 걸쳐 공방에 찾아가 밑술·첫술을 담그기, 소주 증류 시연을 간접 체험하고 시음도 했다.
 
시음 예약 후 찾아온 미국인 커플이 삼해주를 마셔 보고 있다. 김경빈 기자

시음 예약 후 찾아온 미국인 커플이 삼해주를 마셔 보고 있다. 김경빈 기자

▶밑술 담그기(1월 27일)=밑술은 주모(酒母·술 어미)를 만드는 과정이다. 누룩 속 효모를 증식해 술 발효 촉진제를 만드는 것이다. 첫술 한 항아리(60L)에 쓸 밑술에는 멥쌀가루 2.5kg, 누룩 2㎏, 물 8.75L가 들어간다. 체에 밭친 쌀가루를 끓는 물에 조금씩 뿌리면서 죽을 쒀 25도쯤으로 식히고 누룩(송학곡자 수입밀누룩 ‘소율곡’)을 섞어 치댄다. 오래 치대면 죽과 누룩이 섞이면서 손의 온도가 더해져 당화 반응이 일어나고 걸쭉하게 된다. 묵을 쑬 때처럼 손에 묻은 반죽이 뚝뚝 떨어지지 않고 줄줄 흘러내릴 만큼 묽어지면 항아리에 담고 베 보자기로 주둥이를 봉한다. 영상 15~20도에서 6~7일 두면 밑술이 된다. 물은 수돗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첫술 담그기(2월 2일)=술 한 항아리(60L)를 담글 때 멥쌀 고두밥 8㎏, 누룩 2㎏, 밑술 5L, 물 15L가 들어간다. 고두밥은 네 번 씻어 5시간 불린 쌀을 망사 자루에 담아 주둥이를 묶고 찜기에 올려 40분 찐다.  
  
“재 증류때 첨가하는 삼해주 비율은 비밀”
 
밑술 맛을 보는 김 명인과 김현종 대표. 김경빈 기자

밑술 맛을 보는 김 명인과 김현종 대표. 김경빈 기자

예전에는 밑술을 거르지 않고 첫술에 섞었는데 요즘은 걸러서 쓴다. 올해 첫술에는 거르지 않고 섞었다. 누룩은 쌀 무게의 25%로 하되 약간 가감할 수 있다. 예전엔 50%까지 넣었다 한다. 고두밥이 식으면 누룩·밑술과 물 5L를 섞고, 손으로 주무르듯 누르듯 하면서 30분가량 치대서 항아리에 담는다. 물 10L를 더 붓고 보자기로 항아리를 봉한 다음 발효실로 옮긴다. 이후 두 차례 덧술은 고두밥을 찹쌀로 짓는 것 말고는 나머지 재료 양과 방법은 첫술과 같다.
 
▶소주 내리기 시연(1월 28일)=삼해소주 애호가가 선물한 은 3560g(약 950돈)으로 제작한 은 솥을 가스버너에 올리고 삼해주 약주 1.5L를 부었다. 김 명인이 손수 솥에 옹기 소줏고리를 올리고 솥과 소줏고리 사이, 소줏고리 상부와 냉각수 확 사이에 시룻번(밀가루 반죽)을 둘렀다. 알코올 증기가 새면 화재 위험이 있어서 빈틈없이 막아야 한다. 냉각수 확에는 얼음을 담았다.
 
삼해주 약주(왼쪽 끝)와 소주들. 김경빈 기자

삼해주 약주(왼쪽 끝)와 소주들. 김경빈 기자

가열한 지 9~10분이 지나자 소줏고리 귀때에서 소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에틸알코올이 끓는 온도는 78.3도여서 물보다 먼저 기화되고, 그 알코올 증기를 냉각수로 이슬처럼 맺히게 해 받아내는 게 발효주로 소주를 증류하는 원리다. 200ml쯤 받아 도수를 재 보니 50.5도쯤 나왔다. 삼해소주는 증류주에 물을 섞지 않고 45도로 맞춘다.
 
그러면 71.2도 ‘귀주’는 어떻게 만들까. 김 명인에게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비밀이 있다”고 했다. 두 번 증류하느냐, 무얼 첨가하느냐고 거듭 묻자 핵심비밀만 빼고 공개했다. “중간에 뭐가 들어간다. 1차 증류한 원액에 삼해주 가운데 한 가지를 더 넣어 2차 증류한다. 섞는 비율이 비밀이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나와 김현종(53) 삼해소주 대표뿐이다. 10~20년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너무 쉽게 알면 매력도 없지 않으냐”라며 더 이상의 질문은 막았다. 이 방법은 물려받은 게 아니고 김 명인이 2016년 완성했다고 한다.
 
기사를 쓰는 동안 지인이 1년 묵은 삼해귀주를 함께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이 술이 묵으면 맛이 더 좋아지는 걸 아는 지라 ‘오늘 술자리는 귀주대첩’이라고 답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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